[좋아하는 일]
방법론을 가르친다고 해서 항상 공식에 기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공식이 있다 해도 그 응용 사이를 채우는 철학은 가르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또한 그 철학이 앞에 앉은 학생들에게 현재성이 있는가 미래와 연결될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은 강의실을 채우는 온도와 밀접하다.
어제의 지식으로 오늘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그들의 미래를 빼앗는 것이라는, 교육계에 전해지는 오랜 명언이 아니더라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는 항상 예민하고 긴장감 넘치는 주제다. 찰나에 바래지는 지식과 정보가 넘치는 시대다. 바카라 한 권이 교재로 쓰인다는 건 이미 몇 년 전 현상들의 모음일 수도 있다.
AI가 강의실을 점령하려 하고 코로나 팬데믹의 그늘이 여전하다. 군중으로써의 방어에 익숙하고 개별적인 눈 맞춤에 대한 두려움을 읽는다. 첫 시간의 막막함을 설문 답지가 채워지며 분주한 학생들 손가락 속도에 기댄다. 각각 다른, 때론 특이할 그들 마음과 이유와 목적을 안전하게 나눌 수 있는 좋은 질문을 고민해야 한다.
놀라운 것은, 온라인 설문은 빛의 속도로 AI를 이용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거다. AI의 응답은 패턴이 있다. 매우 호의적이고 교수자의 동기부여까지 고려한 간결하고 전문적인 응답을 읽으며 그 학생의 마음 가짐을 오해(?)한 적이 있다.
쓰는 단어와 표현의 흐름은 개인의 지문과 같다. 응용언어학의 한 분야로 다루는 법언어학(Forensic Linguistics)은 글을 분석하고 심리와 독특한 글의 스타일 등을 다룬다. 매우 흥미롭다.
손글씨로 받는 100여 단어 정도의 설문 응답으로도 많은 심리 정보를 읽어낼 수 있다. 이 과목'은'과 이 과목'도'는 전후 맥락에 따라 글의 의미와 학생의 학습에 대한 태도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손글씨의 문제라면 정말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글씨체를 가진 학생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거다. 수업 후 잠시 불러 어떤 표현인지 읽어 달라고 하면 그 글을 쓴 학생 자신도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서로 당황할 때가 있다. 핵심은 이거예요. 학생이 전해준다고 해서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핵심 곁에 붙은 부속물들도 작지만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나는 언어 외적 구성과 내적 의미에 모두 흥미가 있기 때문에 이 미진함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온라인 응답은 AI가 버티고 있고 오프라인 손글씨는 해독해야 할 기호화에 당황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실시간 피드백을 좋아한다. 이것이 가능한 환경은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장단이 있다. 어떤 피드백이라도 과목이 가진 목적성에 따라 가능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학생들의 언어적 표현이 보여주는 슬롯 문화적 차이, 세대 차이에 놀라기도 한다.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영어에 자신이 있으므로 A+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이 과목을 신청한다'는 류의 응답이 종종 있다. 화면을 학생들에게 공개하기 전에 민첩하게 숨기기 버튼을 누른다. 묘한 도발감에 이 응답에 대한 피드백을 마음으로 준비하게 되는 짧은 순간 또한 즐거움 중 하나다.
지금now-여기here의 현재로부터 그 시작을 선포하는 의식으로서 설문을 공개하고 피드백하는 일, 학기 중에 일어나는 여러 감동이나 당황, 또는 도발의 순간들을 거치고, 결정된 성적에 대한 밀당 심리를 읽으며 나와는 다른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의 과거 현재를 느끼며 미래를 바라보게 된다.
나도 방학이다, 얼마간. 모든 관절의 긴장을 풀고 침대에 대大자로 누워 하늘멍을 때리는 그 얼마간을 미치도록 즐기고 싶다. 그리고 나면 다소곳이 바카라상 앞에 다시 경건해질 것이다. 읽고 생각하고 쓰고 쥐어뜯으며.
이번 방학 계획표는 오래전 초등학교 때 만들었던 것처럼 동그란 원을 그린 다음에, 달라질 날별 주별 달별 그리고 전체를 따로따로 담아 벽에 걸어둘 것이다.
마음에 산을 담아 그 숲과 나무, 그리고 나무에 사는 곤충과 새와 작은 벌레도 바라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