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 작가노동 선언, 작가노조 준비위원회 지음, 오월의 봄, 2025
오롯이 전업작가들의 먹고살 궁리, 그 방법론에 대한 바카라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전업으로 글을 쓰고자 한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바카라이다.
서로 연대하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수긍하는 아주 일반적이고 정상인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왜 지금 이 상황이 되었는지를 되짚어 보고,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열어보려는 시도인 것이다.
한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짧은 인터뷰를 인스타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흥행에 성공하고 생활에 대한, 아니 생계에 대한 불안이 없으니 자부심으로 '나 이렇게 잘 쓰며 잘 살고 있다'라 말할 것이라고 순간적으로 기대했다.
그는 집필에 대한 압박, 미래에 대한 불안, 가장으로서의 경제적 공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밤낮으로 글을 짜내고 쓰고 고치고 마감 기일에 시달리며 산다고 했다.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이 글을 쓰는 일이니 하고 싶은 것은 먼 길에 묻어 두었겠구나 생각했다. 짠함과 두려움의 그늘을 감지하며 뭐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전업 작가를 실감했고 그건 노동이었다.
평범한 삶을 산다는 것과 글쓰기를 전업으로 한다는 말은 동행이 불가능한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여유와 치유와 어떤 개인적인 이유, 혹은 누구나 써서 발행하는 시대에 '전업' 작가라는 무게가 심각하게 다가왔다.
바카라의 뒤 겉표지에 쓰인 '우리 같이 작가노조 합시다'라는 문구는 다정하게 들리지 않았고, 급박하고 긴장이 가득한 내가 모르는 세계의 문이 열리는 것 같았다.
소설을 쓰는 사람, 시를 쓰는 사람, 번역을 하는 사람, 작가를 하고 싶은 사람, 여러 권 바카라을 출간한 사람, 근근이 글을 쓰며 최저 생계를 잇는 사람, 글 쓰며 생활이 가능해졌다고 스스로 자조하며 사는 사람들의 날것의 경험, 현실, 심정이 담긴 바카라이다.
나 또한 영한번역을 하며 황당한 경험을 겪은 적이 있다. A4 한 페이지 당 번역료를 요청 후 서로 구두계약을 하고 번역해야 할 자료를 열었을 때, 그 한 페이지에는 여백도 줄 나눔도 없었고 자간이과 장평이 최소화되어 있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조직의 갑질은 상상이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계약이 가능한 한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번역 초기의 '순전한' 나의 실수라고 생각했다. 오래전 일이지만 그때 작가노조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된다.
21명의 작가들의 실제 경험을 읽으며 절로 한탄이 나왔다. 거대 기업 등 자본을 쥔 자들의 고약한 습성들이 작가에게 주는 모멸감이 관습이 된 것 같은 두려움을 읽었다. 원고료는 구걸해 받은 것이 아니다. 정당한 보수다. 원고료 칸이 비어있는 계약서를 내미는 업체의 저의는 무엇인가.
전업이든 부업이든 글쓰기에 대한 보수는 대체로 정해져 있지만, 정식 계약서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은, 작가들 스스로도 용인하고 비겁하게 넘어간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정식으로 정해진 원고료 이하로 글을 써주겠다는 사람들이 있는 한, 성실한 전업작가들이 정당하게 설 자리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 고민들과 불안의 상황들을 바카라을 통해 읽으며 원고료를 받는 작가로서의 미래를 가늠해 보게 된다.
2차 저작에 대한 출판사의 일방적인 횡포 또한 여전한 것 같았다. 거기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정당한 계약서 조항들을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작가들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들에 대한 가시화가 작가노조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특히 인세, 저작권료에 대한 부분은 작가에게 너무 불합리하다. 최근 전자출판과 맞물려 출판사와의 인세 조정이 이루어지기도 한다는 긍정적인 소식도 있다. 더 나아가 도서관 대여나 중고서점을 통한 판매에도 인세나 저작권료 지급이 되어야 한다는 작가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글 쓰는 일보다 강의 등 다른 연계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숫자들을 본다. 어느 정도 원고료를 받는지, 얼마만큼의 인세를 받는지, 어느 정도가 적정일지, 그리고 앞으로 작가를 직업으로 할 사람들에게 주는 현실적인 조언들이 빼곡하다.
작가들의 현실을 읽으며 가슴이 탔다. 하지만 홀로 오랜 시간의 외로움을 털고 같이 모여 생각하고 실천하는 장, 작가노조라는 세상을 응원한다. 작가노동의 가격에 대해, 시인의 연봉에 대해, 평론만으로도 밥을 먹고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해, 공동의 울타리에서 가능한 사람다운 생활에 대해 작가들이 모여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내가 딛고 있는 세상에서 비겁하거나 비루하지 않게 살고 싶은 갈증이기도 하다.
바카라을 모두 읽고 다시 구절들을 새기며 우려하는 바도 크다. '투쟁'이라는 말의 무게가 주는 슬롯적 반감에 대처하는 일, 글 쓰는 것이 노동일 수 있느냐는 반론에 어떻게 맞설 수 있을지에 대해, 저비용 고효율에 몰두한 시대에 '전업'작가가 가능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
적자생존이라는 비인간적인 자본주의의 시장경제논리에서, 작가뿐 아니라 최저 생계비로 허덕이는 많은 비정규직의 현실에도 관심을 보이며 공생하는, 인본의 가치를 넓히는 세상을 꿈꾼다.
▣ 작가노조 - http://authorlabo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