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계절 오월. 집에 틀어박혀 있기에는 심히 아까운 날들이었다. 3일간의 연휴 동안 꽃밭을 누비고 다녔다. 손주들의 꽃 같은 웃음이 번지던 첫날에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굳게 지켜주신다고 믿는 조상님 묘소에 모였다. 20여 명의 가족들이 모여 제례를 마치고 음식을 나누어 먹고는 웃음꽃으로 가득했던 산소를 말끔하게 정비했다.
스치는 풍경마다 만발한 꽃들이 손짓하고 푸른 잎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고즈넉한 시골 마을의 담장마다 탐스러운 장미 송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 폭의 그림처럼 쏟아지는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꽃잎은 겨우내 건조했던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멀리서도 꺾이지 않는 쥐똥나무의 향기로움에 취해 하루해가 저물었다.
다음날은 남편이 음식을 준비하느라 애쓴 나를 위해 숨겨 놓은 보석 같은 곳으로 데려갔다. 계절마다 다른 꽃들이 피어나는 이곳은 입구부터 버진로드가 펼쳐지며 환영의 별들이 온몸을 흔들었다.
충남 아산에 있는 피나클랜드 수목원은 애견 동반도 가능하며 낮에는 꽃축제, 밤에는 별빛축제로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곳이다. 가족 나들이와 데이트 코스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지만, 경사가 있어 휠체어나 유모차를 미는 분들은 적지 않은 땀을 흘려야 할 것 같다. 따가운 햇볕에도 푸른 숲으로 들어서면 뽀송해지는 기분이다. 음악회와 마술 공연,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곳도 있었다.
2006년 7월에 개관한 이곳은 거제 외도 보타니아를 설립한 이창호 님이 아산만 방조제 매립을 위해 채석장으로 사용되던 곳을 자녀들과 함께 가꾸어 만든 수목원이라고 한다. 외도처럼 원래의 자연환경을 활용하여 만들어졌기에, 신경써서 심어놓은 꽃들 말고는 자연 친화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천천히 돌아보아도 한 시간 반이면 넉넉하니, 내년 사월에 꼭 다시 찾기로 하고 일정을 마쳤다.
꽃구경에 한이 맺힌 것도 아니건만 다음 날에도 다시 길을 나섰다. '오! 해피 장미 빛축제'가 열리고 있는 경기도 오산 고인돌공원으로 향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갖가지 장미꽃을 도민 모두가 즐기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특히 이곳은 '고인돌공원'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고인돌들이 보존되어 있어 아이들과 함께 역사 산바카라을 즐기기에도 유익한 장소다. 이곳에도 음악회와 마술 공연이 펼쳐지고 먹거리가 풍성했다. 동심으로 돌아간 듯 아이스크림과 츄러스도 사 먹고, 활짝 핀 장미꽃 앞에서 한껏 폼을 잡고 사진도 남겼다. 지역 주민을 위해 열리는 축제인 만큼 무료입장이었으며, 유럽 정원을 연상시키는 분수대와 그늘막 또한 온통 장밋빛이라 무척 이색적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산 고인돌공원을 찾기 전에 사위에게 부탁해 놓았던 에버랜드 티켓이 당첨되었다는 소식이 왔다. 어지럼증으로 놀이기구와는 담을 쌓고 지낸 터라 십여 년 만에 찾은 놀이공원이었다. 묵직한 표값이 조금 아깝긴 해도, 동물원을 거쳐 회전목마를 타고 장미원을 거니는 소소한 코스만으로도 내게는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이번 축제의 테마는 '에버랜드 로로티'다. 총 720품종, 300만 송이의 장미가 전시되어 장미를 사랑하는 사막여우 로로티와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어디를 가나 먹거리는 빠질 수 없다. 몇 시간을 오르락내리락했으니 고파진 배를 채우기로 했다. '가든테라스'라는 음식점에서 음료와 베이비폭립&포테이토, 순살 치킨샐러드를 주문했다. 돌아다니는 중간에도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오후 2시에 진행되는 카니발 판타지 퍼레이드를 보며 울려 퍼지는 음악에 맞추어 신나게 몸도 흔들었다.
아, 이제 그만 돌아다니고 싶다. 봄꽃 구경하다 몸살이 날 것만 같다. 그동안 꽃구경에 취해 글도 못 쓰고 실컷 놀았다. 이제 정신 차리고 글을 써야 하는데, 이미 노는 재미에 빠져 좀처럼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하지만, 모르는 인파 속에서 보낸 시간도 꽤 괜찮은 날들이었다. 가장 젊은 날의 사랑스러웠던 오월을 보내고 유월을 맞으며 나의 인생 노트에 장밋빛 추억을 선물했다. 그 추억만큼이나 나의 이 여름도 찬란하기를 조심스럽게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