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지금 운다고 뭐가 달라지니?

그때는 미웠고, 지금은 고마운 독사 선생님의 한마디

by호사


고3 때 담임 선생님은 은테 안경을 쓴 날렵한 체구의 40대 남성이었다. 영어를 담당했던 선생님은 매사 시니컬하고 묘하게 부정적이었다. 친구끼리는 선생님이 매일 극도로 예민한 사춘기 소녀들 사이에서 진절머리가 나 성격이 그렇게 뾰족해진 게 아닐까 추측했다. 눈매가 유독 매서웠던 선생님은 그 어떤 학생에게도 딱히 곁을 주지 않는 분이었다.


4월 모의고사를 마치고 결과가 나왔을 때, 번호순으로 돌아가며 진로 상담을 했다. 내 차례가 됐을 때 난 어두운 표정으로 교무실 문을 열었다. 당시, 예상치 못한 일이 우리 가족을 덮쳤었다. 고3 수험생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일이었다. 심상치 않은 내 표정을 본 선생님은 무슨 일인지 물었다. 잠시 주저했던 나는 결국 털어놓고 말았다.


“엄마가 암 진단을 받아서 곧 수술하게 됐고, 세 살 아래 동생이 학교에서 사고를 쳐서 어쩌고 저쩌고... 뿌엥~”


주바카라맞게 눈물이 터졌다. 깜빡이도 켜지 않고 밀고 들어온 인생 최초의 고난이었다. 하필 그것도 고3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진로 상담을 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터트린 나를 은테 안경 너머로 힐끔 쳐다본 선생님이 말했다.


“근데 이렇게 계속 운다고 달라지는 게 있니? 지금 네가 운다고 엄마가 수술을 안 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동생이 친 사고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아. 그만 울고 할 거 하자. 이번 네 모의고사 성적이 어땠더라?”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선생님은 손으로 내게 휴지를 건넸다. 하지만 선생님의 시선이 닿은 곳은 울고 있던 내가 아니라 모의고사 성적표였다. ‘내가 미쳤었지...’ 속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독사’라는 별명이 붙은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를 기대했던 1분 전의 내가 죽도록 미웠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자 신기하게도 눈물은 쏙 들어갔다. 그제야 현실이 보였다.


듣고 보니 선생님 말씀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당시 MBTI가 흔하지 않은 시절이라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대문자 T형 인간이었다. 선생님의 ‘팩트 폭격’은 다정한 위로를 기대했던 특대형 F 인간에게는 일종의 ‘딱밤’이었다. 운다고 당장 해결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일단 눈물을 닦고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늘 부족했던 과목을 어떻게 보완할 건지 구체적인 계획을 짜주셨다. 그날 이후 나는 울음을 닦고 해야 할 일을 했다. 다행히도 엄마는 오진이라 수술할 필요가 없게 됐고, 동생 일도 큰 문제없이 마무리됐다. 이후의 수험 생활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무덤덤하고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어느새 그때 선생님의 나이가 된 제자는 지금도 일이 꼬이거나 마음이 무너질 때면 그 ‘독사 선생님’의 말을 떠올린다. 내가 지금 이렇게 속상해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나? 대개는 없다. 그렇다고 울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울어도 된다. 충분히 울고 눈물을 닦은 다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그때 선생님이 건넨 건 무조건 슬픔을 참으라는 말이 아니었다. 감정에 잡아먹혀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을 놓치지 말라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