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딱 감고, 나에게 집중
일주일간의 여름휴가가 끝나고 오랜만에 요가 센터로 가는 길. 휴가 기간 동안 꼼짝도 안 했으니 오늘 요가를 하고 나면 또 며칠이나 근육통에 시달려야 할까? 쉴 때 혼자라도 인터넷 동영상 보면서 수련 좀 할걸... 매년 똑같이 후회하고 다짐하지만 변한 게 없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 느끼며 걷고 있었다. 빵집 모퉁이만 돌면 요가센터인 상황. 멀리 한 남자가 보였다. 요가센터 건물 앞에 핑크색 매트를 손에 쥔 한 남자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180cm 넘는 큰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 스포츠머리 스타일로 짧게 깎은 50대 후반 혹은 60대 초반 남성. 아무리 봐도 요가와 접점은 없어 보이는 아저씨였다.
매트를 깜빡하고 집에 놓고 온 딸이나 아내의 심부름일까? 상상력이 모터를 달았다. 남자는 요가 센터의 간판을 확인하려는 듯 고개를 들어 건물을 바라보다 결심이 섰다는 듯 저벅저벅 건물로 들어갔다. 그 건물에 요가 매트를 쓰는 곳은 하나뿐. 우리의 목적지가 같다는 생각이 들자 내향인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지금 이 속도로 가면 저 낯선 사람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탈 거 같아서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내향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남자와 마주쳤다.
눈치 없는 엘리베이터는 꼭대기 층에서 느긋하게 내려오는 중이었다. 어쩔 수 없이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같은 층에 내렸다. 남자가 내려 두리번거리는 사이 후다닥 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데스크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짧은 근황 토크를 하는 사이 남자가 쭈뼛쭈뼛 문을 열었다. 남자를 확인한 데스크 선생님은 반갑게 인사를 했다. 남자는 딸이나 아내의 심부름을 온 게 아니라 본인이 요가하러 온 거였다.
앞 타임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주고받는 말을 들어 보니 아마 남자는 휴가 시작 직전 회원권을 결제했고, 오늘 처음 수업을 듣는 신입이었다. 고인물에게 신입 회원은 늘 관심 대상이다. 처음 요가를 하던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나만 못하는 것 같은 괴로움’을 잘 견디고 오래 다녔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서다.
그런데 이분은 일부러 관심을 가지려 노력하지 않아도 주위의 시선을 모으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몸은 꽤 뻣뻣했고 균형도 쉽게 흔들렸다. 근육이 딴딴하게 뭉쳐 조금만 동작이 깊어지면 으윽, 헉, 아이고 같은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회원들의 시선이 모였다. 신입 회원이라 더 섬세하고 다정하게 핸즈온(Hands-on, 신체 접촉을 통한 정렬 교정 및 보조)을 하는데도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낮은 비명은 잦아들지 않았다.
“옆에 분들은 다 잘하시는데 저만 이렇게 못하네요.”
남자는 시무룩했다. 요가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처음에 다 겪는 고민을 남자는 입 밖으로 꺼냈다. 이런 상황을 수없이 봐왔던 선생님은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처음 요가하시면 옆에 사람들이 다 잘하는 것처럼 보여요.
이럴 때는 눈을 딱 감고 자기 자세에만 집중하세요.”
늘 비교하며 산다. 누군가 수십만 원짜리 향수를 다이소에서 방향제 사듯 턱턱 샀다는 자랑을 듣고, 주식이 대박 터져서 어디에 집을 샀다는 뉴스를 보면 하염없이 움츠려진다. 혼자 있을 때는 이 여름에 에어컨 빵빵하게 튼 집에서 수박 물고 스마트폰으로 스크롤 올리는 게 한없이 행복하다. 그러다가도 남들의 결과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연약한 행복은 와장창 깨진다. 남들은 다 잘 나가는데 나만 우주최고 못난이가 된 거 같아서.
어느새 8월. 이룬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이 또 나이만 먹는 거 같아서 진 빠지고 울적한 여름이었다. 남들이 잘하든 말든 눈을 딱 감고 자기 자세에만 집중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입추를 넘긴 밤바람처럼 새삼스럽게 와닿았다. 남의 자세를 훔쳐보느라 정작 내 자세를 놓치고 있었다. 그럴 때는 다시 눈을 감고 내 자세로 돌아오면 된다.
수업이 끝나자 남자는 격투기를 끝낸 선수처럼 매트 위에 그대로 널브러졌다. 하긴 오늘은 남과 싸운 게 아니라 자기 몸과 한바탕 씨름한 셈이니까. 남자는 날뛰던 숨을 고르고 자리를 정리하고 나와 데스크 선생님께 손에 땀이 많은 자신에게 맞는 요가 매트를 추천받았다. 첫 수업에 옆 사람만 보였던 남자는 앞으로도 자신보다 잘하는 사람들을 계속 마주할 것이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비교하고 싶어질 때마다 숨을 크게 한 번 쉬고 눈을 감고 최면을 걸 듯 조용히 말한다.
“눈 딱 감고, 나에게 집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