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작은 선택이 만드는 결과에 대하여
“이제 여기는 못 오겠다.”
집 근처 오래 영업했던 정육 식당이 문을 닫고 한동안 임대 문의 종이가 붙었다. 한 6개월쯤 지났을까? 뚝딱뚝딱 내부 공사를 하더니 돼지갈빗집이 시끌벅적하게 문을 열었다. 동네에 새로 생겼으니 탐사차 들렀다. 질 좋은 고기, 24시간 영업, 활기차고 친절한 직원들, 가성비 좋은 메뉴로 아빠에게 합격 목걸이를 받은 그 가게는 우리 가족의 단골 식당이 됐다. 집에서 도보 5분 거리라는 위치는 차 때문에 누군가는 반주를 포기해야 하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다는 점이 강력한 메리트였다. 가족 생일 파티나 기념일 식사도 하고, 종종 간단히 점심 특선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그렇게 오픈한 지 6개월쯤 됐나? 첫 식사의 감동은 갈 때마다 깎였다. 영업시간은 줄었고, 고기 신선도는 떨어졌고, 2,000원이던 주류 가격도 올랐다. 셀프 반찬 코너의 콩나물 파무침의 콩나물 대가리는 노란색이 아니라 허옇게 빛이 바랬고, 잘라 둔 지 오래됐는지 편마늘은 비쩍 말랐다. 감자샐러드, 게장 등 반찬은 하나둘 물컹한 장아찌류로 바뀌었다. 얼마 전, 아쉬움 가득한 식사를 마친 아빠는 폭탄선언을 했다. 부하들을 거느린 장군처럼 가족들, 지인들을 데려와 돼지갈비를 먹이기 좋아했던 아빠는 더는 이 식당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오픈빨 인기가 떨어진 걸까? 물가가 너무 올라서였을까? 아니면 사장님의 초심이 흐려진 걸까? 아마 어느 하나만 꼽기 어려울 정도로 복합적인 이유일 거다. 남는 게 없어 이익이 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는지 그 조정의 여파로 손님들의 만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공들여 시작한 단골 식당의 탄생과 종말을 이렇게 빨리 마주하게 될 줄 일개 손님인 나는 물론 사장님도 몰랐을 거다. 처음의 마음, 처음의 컨디션, 처음의 기개를 지키는 일은 역시 어렵다. 저녁 장사로 한창 바쁠 시간인데도 빈 테이블이 더 많은 그 돼지갈빗집을 지나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이 떠올랐다.
“내 결말을 결정할 사람은 누구인가?”
그 돼지갈빗집의 결말을 결정한 사람은 누구일까? 손님? 직원? 물건 대주는 도매상? 아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사장님이다. 가게의 위치선정, 영업시간, 단가, 상차림, 하다못해 에어컨 온도까지 사장님의 손길이 닿아야 정리된다. 이 가게의 짧은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슬픈 결말로 향해가는 사장님의 선택이 아쉬웠다.
생각을 곱씹다 보니 누군가도 돼지갈빗집을 바라보는 나처럼 내 인생을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탓하는 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다. 일이 안 풀리는 이유를 경기 탓으로 돌리고, 글이 안 써지는 이유를 도둑맞은 집중력 탓으로 돌리고, 몸이 예전 같지 않은 이유를 나이 탓으로 돌린다. 그렇게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쏙 빠져나가면 당장은 마음이 편하겠지만 그 평온함은 곧 후회로 돌아온다.
내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지는 결국 내 선택이다. 내 삶의 결말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안 풀리는 글도 꾸역꾸역 마침표를 찍을지, 하기 싫은 마음을 꾹꾹 누르고 일단 밖으로 나갈지, 유혹을 물리치고 처음 마음먹은 기준을 끝까지 지켜낼지. 오늘의 작은 선택들이 쌓여 내가 맞이할 마지막 장면을 만든다. 몸이 무너지고, 마음이 흐트러져 핑계를 대고 싶을 때마다 나를 일으켜줄 뾰족한 질문 하나를 나에게 던진다.
내 결말을 결정할 사람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