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부동 체중계 앞에서 매일 멘탈이 털리는 당신에게
회원님, 요즘 왜 이렇게 핼쑥해 보이죠?
아침 요가 수업을 마치고 나온 내게 데스크 선생님이 물었다. 오랫동안 안 본 사이도 아니고 일주일에 3번은 얼굴을 보는 사람인데 이런 말을 하니 뭔가 당황스러웠다. 어제는 점심, 저녁을 든든하게 먹고 튀기듯 구운 홈메이드 감자전에 수박, 참외, 두유, 달걀 두 개까지 평소보다 더 든든하게 먹었는데? 의아했다. 요가 센터를 나와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을 보니 진짜 볼이 홀쭉했다. 걸어서 10분. 집으로 오는 내내 핼쑥함의 정체가 뭘까 추리했다. 대문 앞에서 그냥 아침이라 몸이 덜 풀린 상태에서 힘을 써서 지쳐서 그런가? 혹시나 싶어 집으로 뛰어들어가 체중계에 올랐다.
어엌! 앞자리가 바뀌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숫자에 광대가 춤을 췄다. 한겨울이나 한여름에만 등산을 쉴 뿐 그 외의 계절에는 한 달에 1~2번 산에 가고, 요가와 달리기를 꾸준히 한 덕인가? 가공식품을 멀리한 덕분인가? 이유야 알 게 뭐야 내가 지금 신나는데.
꽤 오랫동안 정체기였다. 본격적인 달리기를 시작한 후 3개월 만에 3kg 정도 빠졌던 몸무게는 1년 가까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박제된 듯 내려가지 않는 체중계의 숫자를 보고 저질 몸뚱이가 원망스러웠다. 30대 후반부터 노화의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는지 원래 양보다 적게 먹는데도 살이 점점 불었다. 낯선 몸에 당황했다. 40대에 먼저 도달했던 주변 언니들이 그랬다. 나이 들수록 덜 먹는데도 살이 이곳저곳에 붙는다고. 젊을 때는 밥 한 끼만 먹어도 2~3kg 빠지던 몸의 대사율이 떨어지면서 급속도로 살이 찐다고.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해도 몸무게가 꿈쩍을 안 하니 미쳐버리겠다고. 이런 말은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30대 초반까지 계속 저체중이었고, S 사이즈를 벗어난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언니들의 말대로 노화의 저주에 예외는 없었다. 체중계 숫자를 바꾸고, 옷 사이즈를 바꾸었다. 늘어난 군살들을 손에 쥐고서야 언니들의 말씀이 다 맞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몸의 효율이 떨어진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건 식단 조절과 운동이었다. 약을 먹기에는 의심 많은 성격이었고, 평생 먹기에는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의심은 많고 지갑은 얇은 내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내 인생에 '숨차는 운동'이란 없을 줄 알았는데, 40대가 되자 살기 위해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나섰다. 예쁜 몸매를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건강하게 원하는 몸으로 살려고 운동을 시작했다. 달리고, 찢고, 오르고, 구기고. 안 하던 운동을 하니 근육통이 생기고, 또 식욕이 늘었다. 라면의 유혹, 과자의 꼬임에 눈을 질끈 감고 고단백 두유와 삶은 달걀로 ‘가짜 허기’라는 잡귀를 물리친다.
그런데도 기대만큼 빠르게 체중은 줄지 않았다. 대부분은 괴롭고 가끔, 어쩌다 반짝 즐거운 날이 찾아왔다. 어느 날은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지만 그렇다고 딱히 대안도 없으니 일단 러닝화를 신고 나와 걷는다. 신기하게 걷다 보면 뛰고 싶어진다. 그렇게 1년여를 보내고 나니 목표했던 숫자와 만났다.
정체기는 별로인 나를 견디는 시간이었다. 기대만큼 결과를 못 내는 나, 노력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는 나, 끊기 없는 나, 군살 많은 나, 체력 약한 나, 나약한 나, 쉽게 유혹에 넘어가는 나, 예민한 나, 짜증 내는 나, 까탈스러운 내가 매일 생각이라는 방의 문을 벌컥벌컥 연다. 나이를 먹었으면 좀 진득하고 담대했으면 좋겠는데 사십 줄의 나는 내가 매일 별로다.
그런데 어쩌겠나 이런 나를 데리고 살 사람은 나뿐이고 또 이 정체기에서 나를 꺼내줄 사람도 나뿐인데. 폭우가 와도 요가하러 가고, 눈이 와도 눈을 맞으며 쉬엄쉬엄 뛴다. 여행 가서도 뛰고, 요가 특강도 참여한다. 어떤 날이든 3일 이상 연속으로 쉰 적은 없었다. 가끔 거울을 보며 뭔가 군살이 빠진 거 같은데?라고 정신 승리이자 주문을 걸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두 손을 다 놔버리고 싶을 테니까.
이렇게 정체기를 뚫는 방법은 단 하나다. Keep Going! 멈추지 말고 나아가는 것뿐. 아무리 험한 산이라도 한 걸음씩 오르다 보면 언젠가는 정상에서 땀범벅 인증샷을 찍을 수 있는 것처럼 꾸준히 하는 게 정체기 탈출의 유일한 해결바카라이다.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의 정체기는 체중계 위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글도, 일도, 통장도, 관계도 그랬다. 아무리 애써도 달라지는 게 없는 것 같은 시간, 그래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매일 찾아오는 괴로움을 견디는 사람만이 정체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단한 재능도, 엄청난 결심도 아니었다. 찜통더위라 기록은 엉망이었지만 그냥 뛰었다. 그렇게 멈추지 않고 버틴 여름이 지나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뭐든 조금씩 좋아졌다. 그래서 그냥 한다. 정체기에 멈추는 사람이 아니라 정체기를 건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