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의 맛

첫 시도는 겨우 첫 숟갈일 뿐

by호사


오전부터 내리는 비를 뚫고 요가 센터에 도착했다. 출석 체크를 하려는데 데스크 앞이 분주하다. 새로 온 회원의 가입을 돕는 데스크 선생님의 설명을 한다. 곁에는 그 모습을 뿌듯한 눈길로 바라보는 낯익은 회원님이 보였다. 얘기를 주워 들어 보니 아마 그분의 전도(?)로 친구분이 새로 요가를 시작하려나 보다. 체험 수업도 안 하고 바로 6개월 수업료는 물론 즉석에서 매트까지 구매하는 걸 보니 실행력이 대단한 분인가 보다. (가난뱅이에 쫄보인 나는 체험 수업을 3번이나 했다. 혹시 내가 요가랑 안 맞는데 덜컥 결제했다가 안 가고 돈만 날릴까 싶어서.)


여러 시간대를 옮겨 오래 다니다 보니 시간대별로 오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오전은 고인물 대잔치다. 9시, 10시 오전 타임은 시간 구애를 안 받는 직종의 사람들이나 가족들을 온라인 게임과 학교로 보낸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오는 중장년 여성이 많다. 요가 경력 2~3년 차는 명함도 못 내밀 오래 수련한 분들이 붙박이장처럼 자리 잡고 있다. 나야 프리랜서니까 시간 날 때 아침이고 저녁이고 가지만 오전에 오는 분들은 거의 고정석이다. 반면 저녁 7시 타임은 퇴근하고 온 골골거리는 20~30대 남녀가 주를 이루고, 9시 타임은 7시 수업의 분주함을 피해 조용히 수련하려는 숙련자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오전 수업 신입의 등장은 요가 고인 물에 조약돌 하나를 퐁당 던지는 것처럼 은은한 파장이 생긴다. 데스크 선생님께 신입 회원이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수업 담당 선생님은 수업 전, 신입에게 당부한다.


”여기 계시는 분 중에는 오래 수련하신 분들이 많아서 똑같이 따라 하시려고 하면 힘들 거예요. 오늘은 첫날이니까 무리하지 마시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시면 됩니다. 제가 중간중간 봐드릴게요.“


5년 전, 쫄보였던 나의 요가 첫날 들었던 말이다. 하지만 신입의 귀에는 딱히 들어오지 않는 말이다. 처음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하다. 보기에는 평범한 동작인데 설마 못 따라갈까 싶다. 조금만 하면 따라잡을 수 있겠지 싶은 안일한 마음으로 수업에 임한다. 신입의 오만한 생각은 수업 시작 5분 만에 뭔가 단단히 잘못됐음을 느낀다. 좌우 방향 헷갈리기는 기본,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에 당황한다. 남들은 척척 해내는데 나만 못하는 거 같아 요가 매트 밑으로 숨고 싶어진다. 매트 안에서만 움직였을 뿐인데 헉헉거리며 숨을 거칠게 내쉬며 생각한다.

”내 몸이 이 정도 쓰레기라고?“


아니나 다를까 고요한 숨소리만 가득한 공간에 그 신입 회원의 낮은 신음이 귀에 들어왔다. 고개를 슬쩍 들어 거울로 그 회원을 보니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선생님이 가르쳐준 3단계 난이도 중 가장 쉬운 버전을 하는데도 5초 카운트도 버티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아 신경질적인 손길로 땀을 닦았다. 익숙하다는 듯 선생님은 좀 더 쉬운 자세로 다시 해보자고 권하지만 이미 신입 회원의 짜증은 폭발 직전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슬쩍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가 들킬까 조용히 거두고 다시 내 수련에 집중했다.

굽히고, 늘리고, 조이고를 반복하니 어느새 땀에 흠뻑 젖은 채 수업이 끝났다. 매트를 정리하는데 신입 회원이 있던 쪽이 북적인다. 수업해 준 선생님, 데스크 선생님, 요가로 인도한 친구까지 셋이 합세해 요가 매트 위에 널브러진 신규 회원을 달래느라 시끌벅적하다. 첫날이라 힘든 거고 안 하던 몸이 적응하기는 보통 세 번 정도 더 해봐야 한다. 오늘은 안 쓰던 근육을 써서 100% 근육통이 올 거니 집에 가면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푹 자야 한다. 오전 수업에는 숙련자들이 많아 난도가 높으니 기초 요가나 힐링 요가 같은 쉬운 수업도 들어 보셔라. 온갖 달콤한 말로 신입의 들썩이는 마음을 잡기 위해 애쓴다.

집으로 돌아간 신입 회원은 오늘 요가 첫 시도를 어떤 맛으로 기억할까? 몸에는 좋다지만 입에는 쓰고 괴로운 한약 맛? 개운해서 또 먹고 싶은 알싸한 매운 낙지볶음 맛? 시원하고 달콤한 찜질방 식혜맛? 어떤 맛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세 번은 맛보라고 권하고 싶다. 5년이 넘게 요가를 해도 매번 새로운 맛을 느끼는 사람이 보기에 첫 시도의 맛은 요가의 전부가 아니다. 백분의 일, 천분의 일도 안된다. 한 번도 똑같았던 적이 없다. 그날의 날씨, 시퀀스, 회원 구성, 기분, 자리 매번 달라진다. 그러니 오늘 수업의 맛은 오늘 딱 한 번뿐이다.


신입 회원이 오래전부터 요가에 관심은 있었는데 이제야 시작한 건지, 친구의 꼬임에 충동적으로 시작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거 하나는 분명하다. 오늘의 시도가 어떤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어줄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 모든 게 그렇듯 시작이 제일 어렵다. 오늘의 시도는 겨우 첫 숟갈이었을 뿐 진짜 요가의 맛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첫 숟갈만 먹고 맛집인지 판단할 수 없듯, 요가도 몇 번은 더 맛봐야 그제야 제맛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