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미워하기 위해 바지런히 움직인다
언제부턴가 라디오 대신 팟캐스트와 유튜브 토크 콘텐츠를 듣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건, 거리를 걸을 때건, 달리기 할 때건 세상의 소음과 단절되고 싶을 때 도파민 터지는 sns 대신 남들의 수다에 귀를 기울인다.
그날의 주제는 ‘개소리’였다. 게스트들은 돌아가면서 각자 자신이 들었던 개소리에 관한 에피소드를 풀어놓았다.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을 쓴 장류진 작가가 들은 개소리 에피소드를 듣고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육성으로 그 말을 내뱉었다.
새로 소설집을 발표하고 예약 판매가 시작되자 여느 때처럼 온라인 서점을 둘러보는 중이었다고 한다. 예약 판매 페이지가 열리자마자 0.0이었던 별점이 1.0이 된 걸 보고 무슨 일인가 싶어서 자세히 들여다봤다. 본격 판매가 시작되지도 않은 바카라에 별점 1.0을 달아 놓은 후기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했다.
읽어 봤는데 너무 별로다.
얘는 이제 <일의 기쁨과 슬픔> 같은 거 못 쓰는 애다.
댓글을 보고 속상한 마음에 며칠 잠을 못 이루던 작가는 얼마 후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침대에 누운 채 다시 예약 판매 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작가가 괴로워하던 사이 대댓글이 불어나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개소리죠? 아직 판매도 안 했는데 어떻게 읽고 이런 댓글을 달 수 있나요? 혹시 타임머신 타고 미래에서 오셨나요? 든든한 지원군들의 팩폭을 보고 울컥했고, 다음날 들어갔더니 부끄러웠는지 평점 1.0점 후기는 사라졌다고 했다. 이 일은 가슴에 큰 상처로 남았다. 그리고 작가는 이 상황을 ‘부지런한 악의‘로 정의했다.
부지런한 악의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부지런한 악의를 자주 마주친다. 실제로 가거나 직접 먹어 보지도 않고 식당이나 업체에 악성 리뷰를 달거나 별점 테러하기. 중고 거래 앱에서 지금 바로 출발한다고 찜해놓고 약속을 펑크 내거나 잠수 타기.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사람이 서둘러 뛰어오는 걸 알면서도 기어이 닫힘 버튼 누르기. 헐레벌떡 뛰어와 첫 번째 댓글에 악플 달고 까는 분위기 조성하기 등 평범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내뿜는 악의를 곳곳에서 만난다. 그들은 누군가 공들여 만든 결과물을 손가락 하나로 무너뜨린다.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인간이라는 종에 함께 묶여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진다.
악의를 내뿜는 사람들은 왜 이토록 부지런할까? 뒤집어 생각하면 선의는 왜 이렇게 게으를까? 싶다. 흔히 사람은 열 명을 만나면 두 명은 나를 좋아하고, 여섯 명은 무관심하고 두 명은 나를 싫어한다고 한다. 이런 2:6:2법칙에 따르면 무슨 일이든 여섯 명은 대개 무관심하고, 두 명은 호의적이지만 그들은 대개 적극적이지는 않다. 무관심 혹은 긍정적으로 보는 여덟 명이 악의를 품은 두 명의 부지런함을 뛰어넘기는 힘들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봐도 불쾌할 댓글 하나를 달기 위해 로그인하고, 별점 하나를 남기기 위해 페이지를 찾아가고, 누군가를 흠집 내기 위해 시간을 쓴다. 굳이 찾아가 악의를 발산하는데 성실하고 부지런히 에너지를 쏟는다.
그날 장류진 작가를 붙잡아 준 건 악플 하나보다 "이게 무슨 개소리냐"라며 대신 화를 내준 이들이었다. 흔한 말이지만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도 사람이지만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도 사람이었다. 악의가 부지런한 세상일수록 선의도 조금 더 부지런해야 한다.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친절 덕분에 하루가 행복했어요.", "정말 맛있었어요.“ 몇 초면 남길 수 있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고비를 넘기게 하는 힘이 된다. 험담과 비난으로 누군가를 끌어내리는 데 애쓰기보다 좋았던 걸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부지런한 악의를 이기는 건 거창한 정의가 아니라 조금 더 부지런한 선의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