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간 양말을 그냥 못 넘기는 사람

나를 찌르던 단점이 장점이 될 수 있을까?

by호사

사우나 같던 한낮의 열기가 조금 수그러든 토요일 오후였다. 에어컨 바람 말고 자연산 바람이 필요해 카페 자리를 정리하고 슬렁슬렁 선유도 공원을 향해 걸었다. 오랜만에 온 선유도 공원은 초록초록한 기운이 가득했다. 수국부터 장미까지 각종 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여름의 순간’을 박제한 듯 보였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잠시 쉬려고 벤치에 앉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로움에 두런두런 수다를 떠는데 친구의 발등에 시선이 꽂혔다.


“괜찮아? 양말... 돌아갔는데 안 불편해?”


벤치에 앉으니, 발등이 드러나는 단화를 신은 친구의 발이 눈에 들어왔다. 발뒤꿈치로 가야 할 부분이 발등으로 와 있었다. 처음에는 디자인 자체가 발등 위에 주름이 잡히는 양말인가 싶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솔기 접합 부분이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디자인이 아니라 잘못 신은 거였다. 집에서 나올 때 서두르느라 애초에 양말 위아래를 바꿔 신은 건지, 아니면 걷다 보니 양말이 돌아간 건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뭔가 불편하게 느껴질 거 같아 말해줬는데 친구는 돌아갔는지도 몰랐을 만큼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친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양말을 정리해 바르게 신었다.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 돌아간 양말을 나는 왜 보기만 했는데도 불편했을까? 시작은 상상이었다. '내가 저 양말을 신고 있다면?'이라고 생각하면서 생기지도 않은 가상의 불편이 감지된다.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는 그게 거슬려 자꾸만 시선이 갔다. 그리고 결국 참지 못하고 말해 버렸다. 양말이 돌아간 거 같은데 불편하지 않냐고. 당사자는 물론 주변 친구들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간 양말로 향했다.

양말 상태를 본 모두가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당사자는 주섬주섬 양말을 돌려 신었다. 같이 앉은 친구 중 누군가는 내가 관찰력이 좋은 거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섬세해서 그런 게 보인 거라고 했다. 다른 누군가는 몇 시간째 같이 있어도 둔감한 자신은 보지 못했는데 예민한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게 있는지 그걸 보는 눈이 신기하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작은 불편도 참을 수 없게 됐다. 합성 섬유로 만든 니트의 까슬거림, 목을 과하게 조이는 터틀넥, 압박 강도가 심한 레깅스,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라벨 발볼이 좁은 운동화 등등 감각이 예민해지는 옷은 그 상태 그대로 나와 함께 갈 수 없다. 니트 안에 자극 없는 면 소재의 얇은 이너를 입고 그 위에 니트를 덧입는다. 조이는 터틀넥이나 레깅스는 물리력을 동원해 늘리거나 아예 버린다. 주렁주렁한 라벨은 사자마자 떼버리거나 애초에 살 때부터 불편한 디자인이나 과한 장식이 들어간 거라면 장바구니에 넣지 않는다. 하나가 거슬리면 온 신경이 쓰여 하루를 망치는 인간이 찾은 생존 방식이다.

남들은 그냥 넘기는 걸 나는 왜 그냥 넘기지 못할까? 민감한 감각이 싫었다. 느끼는 대로 다 표현하면 민감해 보일까 봐, 유난스러워 보일까 봐 아닌 척, 괜찮은 척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가난이나 기침처럼 민감함은 숨길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는 장면에서 나는 오래 멈춘다. 그 습성은 글을 쓰기 시작한 뒤 재능이 되었다.

돌아간 양말 하나. 청귤 에이드가 담긴 컵 표면에 맺힌 물방울 하나. 택시에서 오간 기사님과의 짧은 대화 하나가 글감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지만, 내게는 한 편의 글이 되는 순간들이다. 불편을 잘 느끼는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정확히는 작은 차이를 잘 느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예민함의 바늘이 자신을 찌르면 상처가 되고, 세상을 향하면 이야기가 된다. 평생 나를 괴롭히던 예민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돌아간 양말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글감을 발견하는 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