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란 체력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밥값만큼 나온 택시비

by호사


무더위가 시작될 조짐이 보이자 마음이 급해졌다. 더워지면 꼼짝 못 하고 집콕해야 하니 급히 일정을 조정했다. KTX와 숙소만 예약하고 무작정 떠난 부모님과의 3박 4일 부산 여행 둘째 날이었다. 관광객이 들이닥치기 전 아침 8시부터 한산한 해동용궁사를 누렸다. 이후 택시 타고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연화리 해녀촌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창밖 해변 풍경에 감탄하며 수다를 떨던 우리 가족을 룸미러로 슬쩍 본 기사님이 조심스레 대화에 끼었다.


“가족 여행 중이신가 봐요. 부럽네요. 부모님 건강하실 때 여행 많이 다니세요.

저는 그러지 못해서 후회가 많이 되더라고요.”


언니 또래쯤으로 보였던 기사님이 우리 가족을 촉촉한 시선으로 본 이유가 있었다. 기사님의 부모님은 연세가 아흔에 가까웠다. 평범한 온라인 게임인이었던 기사님이 몸이 편찮으신 부모님 간병을 하면서 온라인 게임 생활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았다. 오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비교적 시간 조절이 자유로운 택시 일을 시작한 지 1년. 택시를 몰지만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부모님과의 여행은 꿈도 못 꾸는 처지가 됐다고 했다. 먹고살기 바빠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는 꼼짝도 못 했는데 이제 좀 여유가 생기니 부모님 건강이 여의치 않았다. 택시 일을 하면서 가장 부러운 게 우리처럼 가족 여행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를 연화리 해녀촌에 내려준 기사님은 마지막까지 부모님 건강하실 때 많이 다니시라며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먹먹한 가슴을 안고 부모님을 모시고 해녀촌으로 향했다. 미리 봐둬 이름이 친근한 어느 식당으로 들어가 모둠 해물 한 상과 전복죽 그리고 지역 소주를 하나 시켰다. 해산물을 좋아하시는 엄마는 상이 넘칠 만큼 가득 채워진 해물 차림을 보기만 했는데도 신나 보였다. 내륙에 살면 이런 상차림을 보는 게 흔치 않다. 요즘 SNS에 핫한 곳에 딸내미가 데려왔다고 있는 생색 없는 생색을 다 내며 소주를 따라 드렸다. 낮술 아니 아침술이라 그런가 소주를 즐겨 먹지 않는 내 입에도 술이 미끄러지듯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아빠께 빈속에 술 마시지 말고, 전복죽부터 드시라는 엄마와 나의 잔소리가 오갔다. 엄마는 해산물을, 아빠는 전복죽과 소주를 달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행복하면서도 짠한 마음에 울컥했다.

예전만큼의 총기도, 기력도 없는 두 분을 모시고 다니는 일은 쉽지 않다. 20~30분 정도는 걸어도 걸음만 느리지 잘 따라오시던 부모님은 이제 5분 걸으면 3분은 앉아 쉬어야 했다. 오후 3시 전에는 숙소에 들어와 에너지를 충전해야 저녁에 잠깐 나가서 야경이라도 볼 수 있다. 이마저도 허리가 아픈 아빠는 엄마와 둘이 다녀오라며 침대에 뻗으셨다. 떨어진 소화력 때문에 산해진미도 몇 수저 만에 배가 찼다며 숟가락을 놓으셨다.

이번 여행 정산을 해보니 택시비가 식사비만큼 나왔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으면 저녁은 패스했고, 부산역에서 숙소인 해운대까지 갈 때 지하철을 탄 걸 빼면 대부분 택시로 이동했다. 평소 택시비가 길에 돈을 버리는 거 같아 특별한 일이 아니면 택시를 타진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과의 여행에서 오래된 배터리처럼 금세 방전되는 부모님의 체력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택시였다.


평생 장사하느라 주말도 휴일도 없이 사셨던 부모님이었다. 가족 생계에 대한 바카라임과 의무감에 찌든 얼굴 말고 여행지에서 소년처럼, 소녀처럼 웃는 두 분을 보기 위해 쓰는 돈과 시간은 아깝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동안, 늘 가슴 한쪽에 평생 이런 풍경, 이런 경험, 이런 산해진미를 모르고 사셨을 두 분에 대한 마음의 짐이 있었다.


쌩쌩한 젊은 날을 온통 일터에 묶여 있던 대가는 부모님의 관절과 척추에 고스란히 남았다. 그만큼 우리가 함께 떠나는 여행의 풍경도 많이 변했다. 매번 보름이 넘던 장거리 장기 해외여행은 이제 단거리 단기 국내 여행으로 간소해졌다. 늘 이번이 마지막 여행 같다고 말씀하시는 부모님의 약해진 체력을 고려해 서서히 일정을 줄여간 결과였다. 이제는 여기저기 새로운 걸 찾아 분주히 돌아다니기보다 내 마음 같지 않은 두 분의 허리와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 코스를 고른다. 직접 몸을 움직이는 체험 대신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해변 열차 창밖을 바라보고, 마사지샵이나 족욕 카페에서 쉬어가는 식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나는 그 택시 기사님처럼 후회하게 될까? 할 만큼 다 해서 후회 없다고 여길까? 있는 힘껏 다 해주고도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부모님을 보고 자랐으니 해준 것보다 못 해준 걸 끌어안고 후회할 게 뻔했다.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고집을 피우시거나,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체력 때문에 짜증을 부릴 때 벌컥벌컥 화가 올라온다. 그래도 앞으로 이런 상황이 몇 번이나 더 남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굽은 부모님의 등을 눈으로 쓰다듬는다. 택시 기사님의 말처럼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덜 후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