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진 것들의 쓸모에 대하여
집에서 만두를 만들어 본 사람은 안다. 아무리 잘 빚고 단단히 여며도 터진 만두는 탄생한다. 공장에서 나오는 시판 만두는 그런 일이 드물지만 개복치 집 만두가 터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우리 집 만두는 시작부터 고된 노동이다. 직접 만든 밀가루 반죽을 숙성시키고, 만두소를 만들고, 피를 밀어 소를 채워 넣는다. 엉덩이에 땀이 차도록 앉아 몇 시간을 공들여 빚은 만두가 찜통에서 무사히 살아남기를 바랄 뿐이다.
피 테두리도 야무지게 닫았고, 찜기에 올릴 때도 만지면 부서질까 불면 날아갈까 조심스럽게 넣었는데 만두 10개를 찌면 1~2개의 부상병은 발생한다. 옆구리가 터져 시뻘건 김치만두 속을 흘리고 있는 부상병 만두를 마주하면 내 속도 어김없이 터진다. 지난한 집 만두 빚기 대장정에 들인 돈과 시간, 노력을 생각하면 인간적, 아니 만두적으로 걔들이 그렇게 연약하게 터지면 안 된다며 찜통 앞에서 절규하게 된다. 부상 입은 만두는 1차 제거 대상이다. 상처를 수습해 제일 먼저 뱃속으로 보내준다. 터진 만두에서 흘러나온 만두소가 다른 만두에 물들기 전에 따로 빼내 영원한 안식을 선물한다. 그게 터진 만두에게 해 줄 수 있는 예우였다.
얼마 전, 발견 즉시 빨리 처리해야 하는 실패한 존재라고 여겼던 터진 만두의 가치를 다시 보게 만든 계기가 있다. 여느 때처럼, 냉동고 장기 입주자를 점검하는 중이었다. 여름이 오기 전, 김장김치 처리를 위해 만든 집 만두 한 무더기가 나왔다. 처음 찔 때 터진 만두를 골라내 먼저 먹었는데도 몇몇 터진 만두가 남았었나 보다. 메뉴를 고민하다 비도 오고 하니 만두전골로 정했다.
인터넷에서 적당한 레시피를 찾다가 생각지도 못한 터진 만두 활용법이 있었다. 전골을 끓일 때 국물에 만두 한두 개를 터트려 넣으면 고기, 두부, 채소 등 만두소의 감칠맛이 우러나와 국물 맛이 조금 더 깊어진다고 했다. 또 밀가루로 만든 만두피가 풀어지면서 전분 성분이 국물에 녹아 나와 국물이 살짝 걸쭉해진다고 했다. 강경 맑은 국물파에게는 해서는 안 될 극악무도한 짓이지만 풍부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팁이었다. 레시피대로 만두전골에 만두를 두 개 터트려 넣었다. 깔끔한 비주얼을 포기한 대신 만두소가 풀어져 풍미가 좋아졌고, 건더기와 국물이 잘 어우러졌다.
’터진 만두 = 실패한 존재’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빨리 없애 버리고 싶었다. 내 실패를 누군가에게 들켜서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힐까 봐. 하지만 터진 만두에게도 다 쓸모가 있었다. 비록 온전한 만두로 사랑받지는 못했지만, 심청이가 인당수에 뛰어든 것처럼 그 상처 난 몸뚱이를 냄비 속에 던졌다. 육수 맛을 풍부하게 만들고, 냄비 안의 모두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터진 만두는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터진 만두는 만두가 실패했다는 뜻이 아니다. 속이 너무 많았거나, 찜통의 열을 견디지 못했을 뿐이다. 사람의 멘탈도 비슷하다. 멘탈이 터졌다는 건 나약해서가 아니라 뇌가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의 한계를 넘었다는 신호다. 아무리 잘 빚어도 터지는 만두처럼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터지는 멘탈을 부여잡고 하늘을 원망하곤 했다. 누가 알까 봐 멘탈 안 터진 척 해도 숨길 수가 없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멘탈 케어에 실패한 내가 싫고 미웠다.
터진 만두가 만두전골의 풍미를 끌어올리는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걸 보면서 내 터진 멘탈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터진 만두가 전골 국물의 풍미를 깊게 만들듯 터진 멘탈도 삶에 맛을 더하는 게 아닐까. 상처가 없었다면 몰랐을 마음들이 있고, 무너지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길들이 있다. 그래서 이제는 멘탈이 터질 때마다 얼른 치워 버리려 하지 않는다. 전골 육수에 우러난 터진 만두의 흔적을 음미하듯 터진 멘탈의 흔적도 천천히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