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달리기는 일종의 <발을 씻자>가 아닐까?

찌든 걱정과 마음의 얼룩을 지우는 무적의 세제, 달리기

by호사


<발을 씻자>로 발만 씻는 사람이 있을까? 풋 샴푸 <발을 씻자>가 처음 출시됐을 때, 평생 비누로 대충 발을 씻던 나는 발도 이렇게 세제를 구분해서 씻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출시 회사로서도 어느 정도 팔릴 가능성을 보고 큰돈을 들여 기획, 생산했을 테니 말이다. 솔직히 과연 이게 얼마나 팔릴까 싶었다. 그럭저럭 팔리던 풋 샴푸가 대전환기를 맞은 건 SNS에 올라온 폭발적인 간증 때문이었다. 기름때 벗기기, 핏자국 제거, 주방이나 욕실 청소, 운동화 세탁은 물론 심지어 해충 퇴치까지 다양한 용도로 효과를 봤다는 사람들의 극찬이 이어졌다.


연구원들에게 인간의 발은 대체 어떤 존재였던 걸까? 이토록 다양한 오염과 문제를 풋샴푸로 해결할 수 있다니 웃기고 또 신기했다. 그래서 난도 높은 오염이 생겼을 때, 다른 세제보다 먼저 풋 샴푸로 들이대 본다. 그럼 대부분 쉽고 빠르게 해결된다. 이 풋 샴푸 하나 가지고 있으면 무슨 일이 생겨도 해결될 거 같은 근거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며칠 전, 리넨 바지에 묻은 갈비찜 국물을 지우기 위해 늘 그랬던 것처럼 애벌 세탁을 위해 풋 샴푸를 뿌리면서 생각했다.


‘이거 진짜 만능템이네. 근데 나한테 이런 만능템이 하나 더 있잖아?’


속이 더부룩할 때, 괴로울 때, 생각이 많을 때, 잠이 안 올 때, 기분이 가라앉을 때, 누군가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이 머릿속에 맴돌 때,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등 살다 보면 몸과 마음의 크고 작은 얼룩이나 생활 기스가 생긴다. 어떤 모양이든, 어떤 색깔이든 나를 너저분하게 만드는 오염을 싹 지워주고, 흠집이 난 부분을 메꿔주는 나의 만능템은 ‘달리기’다.


걷기도 좋지만 임팩트가 약하고, 등산은 가야 하는 마음을 먹는 것은 물론 시간을 빼는 일이 번거롭다. 반면 달리기는 운동화를 신고 집 밖을 나서기만 하면 어떻게든 뛴다. 차곡차곡 마일리지를 쌓듯 한 달 계획한 거리를 뛰고 나면 게임 퀘스트를 깬 용사가 된 것처럼 짜릿한 희열이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지켜보는 사람도 없으니 나약한 자신과 타협하려고 할 때도 물론 있다.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느리든, 걷뛰를 하든 뛰고 다면 내가 꽤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잘 뛰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작고 귀여운 기록이지만 안 뛴 것보다는 뭐라도 나으니까‘ 라며 자기 합리화를 한다.


걱정이 많은 사람에게 걱정은 독이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하염없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진다. 그럴 때 제일 좋은 방법은 몸을 움직이는 거다. 하기 싫은 이유 40만 8천 개 정도 쉽게 댈 수 있지만 깡그리 무시하고 일단 몸을 움직이면 희한하게 걱정했던 게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몸이 문제의 근원에서 멀리 도망쳐 온 것처럼 거리감이 생긴다.


뛰기 전과 뛴 후 문제 자체가 해결되는 일은 없다. 하지만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은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도 생긴다. 이런 식으로 고민과 걱정을 별거 아닌 걸로 치부해 버리면 신기하게 실제로 별거 아닌 게 된다. 역시 인생은 기세고, 끊임없는 자기 설득이다. 그래서 뛰는 걸음걸음마다 오늘도 나에게 최면을 건다. 괜찮다고, 별거 아니라고, 어떻게든 해결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