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를 응원하지?

의심이 습관이 된 어른에게 날아온 하이 파이브

by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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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km.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정한 한 달에 달려야 할 거리다. 월간 마일리지를 채우기 위해 5월 마지막 날은 11km를 달려야 했다. 하루 종일 땅을 달구던 해가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 7시 무렵부터 뛰기 시작해 어느새 캄캄해진 중랑천을 달리는 중이었다. 가족이나 반려견과 산바카라하는 사람, 주말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지 잔뜩 피곤한 얼굴로 걷는 사람,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도 뛰고 있었다.


한 4km 정도 남은 때였을까? 중고생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들 대여섯이 반대편에서 껄렁한 걸음으로 우르르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제2의 교복 같은 위아래 까마귀 룩을 입은 아이들이었다. 축구라도 했는지 한 명이 축구공을 들고 있었고, 어둠 속에서 새카맣게 그을린 아이들의 얼굴 사이로 형광등이라도 물고 있는 듯 하얀 치아만 보였다. 길은 좁고 사람이 많으니 저 친구들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 멀리서부터 몸을 한껏 웅크리고 우측으로 붙어 가는데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뭐 신나는 일이 있나? 하긴 저 때는 찌그러진 캔만 봐도 너 닮았다며 놀리고 낄낄거리는 게 일상이니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속으로 조용히 나도 저 또래 시절은 어땠나 추억에 잠기려는 찰나. 아이들이 지른 환호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향한 거라는 걸 알게 됐다. 거리가 좁혀지자, 그중 한 아이는 손을 뻗어 하이 파이브까지 요청했다. 순간 뇌에 일시 정지 버튼이 눌렸다.

뭐지? 이 상황?


상황 파악을 마치기 전, 부지런한 다리는 이미 아이들 곁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얼떨결에 하이 파이브를 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 고마움의 쌍따봉을 날렸다. 내 반응에 아이들의 환호는 더 커졌고, 응원해 준 아이들을 지나쳐 가면서 나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런 거리 응원단은 마라톤 대회 때나 있는 줄 알았다. 대회도 아니고 주말 저녁 동네 개천을 달리는 생판 모르는 사람을 향한 응원이라니... 어색한 상황이긴 했다. 흐뭇한 마음 반, 얘들이 나를 놀리나 하는 의심의 마음 반이었다. 땀에 찌들어 헤벌쭉 웃는 모습이 사진 찍혀 SNS에 ‘장난으로 환호성 질러줬는데 좋다고 웃는 늙크크 ㅋㅋ>이런 제목으로 박제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솔직히 내게 요즘 청소년 이미지가 좋은 건 아니었다. 뉴스나 SNS에서도 그렇고, 가끔이지만 현실에서 만나는 요즘 친구들은 내게는 버거웠다. 메소포타미아의 담벼락 낙서에도, 이집트 동굴에도 적혀 있을 만큼 기성세대에게 ‘요즘 애들’은 언제나 ‘버릇없는 존재들’이다. 나 역시 완연한 꼰대 나이라 요즘 친구들의 긍정적인 모습보다 그렇지 않은 모습을 더 크게 기억하고 있었다.


응원의 저의가 뭘까? 찜찜한 마음으로 남은 4km를 마무리할 무렵, 내가 가졌던 생각이 편견이었음을 깨닫는 장면을 목격했다. 달리기를 마치고 날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호흡을 정리하며 너털너털 걸어가는데 중랑천 반대편에서 ‘까마귀 응원소년단’이 보였다. 다정하게 뛰는 커플에게도, 슬로우 러닝하는 모녀에게도 나에게 응원을 보냈던 것처럼 환호와 박수를 쳐줬다. 그리고 아빠 손을 붙잡고 달리는 유치원생 꼬마에게도 환호를 보내고 단풍잎 같은 작은 아이의 손에 하이 파이브를 했다. 아이의 모습이 귀여워 소년들은 단체로 까르르 뒤로 넘어갔다. 내게 보낸 응원은 작고 만만해 보이는 중년 여성을 놀리는 환호가 아니었다. 응원소년단은 마음도 에너지도 넉넉한 아이들이었다. 그저 그 시간 거리를 달리는 모두를 향해 뜨거운 환호와 응원의 하이 파이브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순간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미안해졌다. 잠시지만 응원의 목적을 의심했던 순간이 부끄러웠다. 목표했던 225km를 채운 밤, 기록보다 오래 남은 건 까마귀 응원소년단의 시끌벅적한 환호와 하이 파이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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