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람은 자기가 덜 힘든 자리를 찾아 앉는다
창가 자리로 드릴까요? 복도 쪽으로 드릴까요?
지금처럼 온라인 웹 체크인이 성행하지 않던 시절, 비행기 티켓 발권 카운터에 가면 직원은 꼭 물었다. 그걸 왜 물어볼까? 의아했다. 다들 창가석을 좋아하는 거 아닌가? 출장길에 함께 했던 동료가 자신은 복도 쪽이 좋다며 내게 창가 자리를 권했을 때, 창가 자리 좋아하는 나를 위해 양보하는 줄 알고 청혼할 뻔했다. 사람들은 다 창가 좌석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내가 창가 좌석을 좋아하니까. 복도석은 창가석을 놓친 사람들에게 주어진 어쩔 수 없는 선택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에는 창가석 보다 복도석을 선호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저 기호의 문제일 뿐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우월한 자리는 아니었다.
어쩌다 비행기를 타던 시절 내 선택은 무조건 창가석이었다. 일-집-일-집만 반복하는 쳇바퀴 돌리는 햄스터 같은 일상에 ’비행기 타기‘는 특별한 이벤트였다. 단돈 몇십만 원에 21세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는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웬만한 고층 빌딩만 한 비행기가 추진력을 받아 땅을 박차고 떠오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건물들이 손톱만 해진다. 생크림같이 새하얗고 몽글몽글한 구름 속을 유영하듯 날고 있으면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강력한 엔진과 거대한 날개의 힘으로 난다는 건 알지만 뼛속까지 문과의 머리로 비행기의 원리는 여전히 이해되진 않는다. 그러니 과학자들에게 감사한 마음만 잔뜩 품고 그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현대 과학의 결정체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창가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낯선 나라로 떠나곤 했다.
무조건 창가석을 사수했던 나도 언젠가부터 복도석을 선택하는 일이 잦아졌다. 일로, 여행으로 밥 먹듯 비행기를 타기 시작하면서 바뀌었다. 1~2시간 내외의 단거리 비행은 어디든 상관없었다. 4시간 이상 중장거리 비행일 경우 옴짝달싹할 수 없는 창가 좌석은 고문 그 자체였다. 창밖을 보며 설레는 건 길어야 30분, 나머지 시간은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선택지에 퍼스트석이나 비즈니스석 따위는 없는 이코노미석 붙박이 인생에게 허락된 공간은 엉덩이 두 짝 겨우 붙일만한 작은 좌석이었다. 거기서 밥을 먹고, 바카라을 보고, 영화를 보고, 졸다가 스트레칭을 해봐도 시공간이 뒤틀린 그곳에서는 비행시간 내내 숨이 막혔다.
행복한 30분을 위해 나머지 10시간을 괴로움에 몸부림칠 수 없었다. 복도석이 주는 편안함을 알고 나서야 그 좌석을 고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한적한 틈을 타 다리라도 복도 쪽으로 뻗고, 옆 사람 눈치 안 보고 복도 쪽으로 상체 스트레칭도 할 수 있고,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참지 않고 내킬 때 갈 수 있는 복도 좌석이 창가석 보다 좋아졌다. 역시 사람은 겪어 봐야 안다.
사람을 이해하는 일도 비슷하다. 내가 당연히 좋은 거라고 생각한 걸 누군가는 불편해하고, 나는 왜 저걸 선택하지 싶었던 걸 누군가는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살다 보면 내 기준이 보편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누군가는 지옥철에 시달리더라도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안정적인 온라인 게임을 원하고, 누군가는 월급이 조금 불안정해도 자기 시간이 많은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 똑같이 북적이는 명동에 가도 누군가는 기가 빨리고 다른 누군가는 에너지를 얻는다. 나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 같던 선택이 그 사람에게는 오래 고민 끝에 찾아낸 최선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한다. '당연히 이게 더 좋은 거 아닌가?' 마치 창가 좌석이 모두에게 최고의 자리라고 믿었던 나처럼. 그때는 이해되지 않던 선택들이 이제는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결과만 보고 판단했다면 이제는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사정도 함께 떠올리게 됐다. 선택 하나에도 그 사람의 몸 상태나 성격 같은 게 조금씩 보인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순간만 보고 단정한 건 아닐까? 자꾸 되묻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누군가도 좋아할 거라고 쉽게 믿지 않으려고 한다. 비행기 좌석 하나에도 이렇게 다른 이유와 취향이 숨어 있는데 사람의 생각과 선택은 얼마나 복잡한가. 이제 누군가 내 생각과 다른 선택을 해도 예전처럼 의아하지 않다. 그 사람은 심사숙고 끝에 그 사람에게 맞는 걸 고른 것뿐이다. 그렇게 창가든 복도든, 결국 사람은 자기가 덜 힘든 자리를 찾아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