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오늘도 귀여움으로 버틴다
언제부터 기승전소품샵의 시대가 된 걸까? 여행지를 추천하는 영상에도, 친구들과의 약속에도 소품샵 방문은 필수 코스가 됐다. 밥 먹고 카페 가듯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소품샵으로 향한다. 캐릭터 용품부터 문구, 사무, 주방, 패션, 뷰티 등 다채로운 물건들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단순히 아기자기한 물건을 사고파는 곳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현지’ 감성이 듬뿍 담긴 기념품 덕분에 그 자체로 지역홍보관처럼 느껴진다. 또 감각 있는 주인장이 심혈을 기울여 세계 각지에서 모은 개성 넘치는 상품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편집샵이기도 하고, 때로는 작가들이 공들인 작품을 만나는 전시관이기도 하다.
작품을 감상한다는 마음으로 매번 소품샵에 들어서지만 진득하게 구경하지 못하고 탈출을 감행한다. 물욕이 넘쳐흐르던 20대 시절에야 이런 곳들에 가면 눈이 돌아갔지만 서서히 흥미를 잃었다. 사람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짐만 들고 살아야 한다는 걸 배웠던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외국인 노동자로 살던 시절 호텔을 집 삼아 살았다. 한 달에 2~3번 출장이나 휴가차 한국에 들어가면 펼쳐 놓았던 짐을 싸서 호텔 방을 빼야 했다. (아마도 예산 문제 때문이었겠지?) 돌아올 때까지 내 짐은 호텔 내 물품 보관소에 맡겨야 했다. 그러니 짐을 최대한 줄여 28인치 캐리어와 보조 가방 하나에 들어갈 정도만 가지고 8개월을 살았다. 그 시간은 일종의 미니멀리즘 라이프 체험판이었다. 호텔 보따리장수 생활을 정리하면서 잡동사니 맥시멀리스트 생활도 접었다.
그래서 실용성보다 귀여움으로 승부하는 잔잔바리템을 그저 ‘귀여워서’ 구입하는 경우가 드문 나 같은 사람에게 소품샵 구경은 솔직히 지루하다. 일행들의 흥을 깨고 싶지 않아 따라 들어가서 슬쩍 둘러보고 조용히 나와 밖에서 기다리는 편이다. 공간이 협소해 통로가 좁아 이리저리 부딪히기도 하고, 물건도 사람도 먼지도 많다. 사람과 물건들이 뒤엉킨 좁은 공간에서 비염인은 편하게 숨쉬기 어렵다. 구경을 포기하고 대신 밖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창안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내가 집중하는 건 물건 구경이 아니라 사람 구경이다. 오밀조밀한 물건들을 들여다보며 ‘귀여워...‘를 연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게 내가 소품샵에 가는 이유다.
다들 어른인 척 애쓰고 산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딱딱한 구두와 빳빳한 칼 정장, 시크한 은테 안경, 어깨를 짓누르는 노트북이 든 백팩을 무겁게 지고도 소품 구경에 정신이 없다. 귀여운 걸 보면 대바카라 없이 터져 나오는 돌고래 소리를 줄이느라 안간힘을 쓴다. 주체할 수 없는 귀여움 앞에 활짝 열리는 지갑을 닫느라 몸부림친다. 집은 열쇠가 필요없는 디지털 도어락을 쓰지만 키링은 집에 40만 8천 개쯤 있다. 그럼에도 하나 사 들고 나오면서 이 디자인은 여기밖에 못 구한다며 합리화하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묘하게 애틋하다.
누군가에게는 쓰레기에 준하는 플라스틱 덩어리, 재활용도 안 되는 솜뭉치, 모래사장으로 떠밀려온 나뭇가지도 감각적인 손길을 몇 번 더하고, 예쁘게 단장하면 귀여운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길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에 눈알 스티커만 붙여도 주인의 눈물을 먹어 삼키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반려 돌이 되는 것처럼. 막막한 미래, 불안정한 슬롯, 치열한 경쟁, 급등하는 금리, 치솟는 집값 등 맨 정신으로 살기 버거운 어른들이 도망칠 곳은 귀여움 뿐인 걸까? 세상이 팍팍해질수록 사람들은 귀여운 걸 찾아 헤맨다. 어쩌면 귀여움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팍팍한 현실을 견디게 만드는 일종의 안전장치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