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부모님께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누구에게나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by호사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금요일 늦은 오후,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소금빵이 먹고 싶어져 자주 가던 집에서 멀지 않은 무인 빵집으로 향했다. 가게에 막 들어서려는 순간, 안에서 나오던 초등학교 고학년 남자아이가 다급하게 말을 걸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사냥꾼이 쫓아와요~”를 외치던 동화 속 사슴 같은 눈망울과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저… 이 근처에 이걸 좀 닦을 곳이 있을까요?”


잔뜩 긴장한 표정과 달리 아이 목소리는 차분하고 정중했다.


“닦을 곳?”


의아해 눈을 크게 뜨자 아이는 자신의 왼쪽 복숭아뼈 위를 가리켰다. 무릎까지 걷어 올린 까만 트레이닝 바지 아래로 손가락 한 마디 길이의 상처 두 줄에서 새빨간 피가 흐르고 있었다. 벌어진 틈 사이로 속살이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였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솟구치는 피를 보고 당황해 무슨 일이냐 물으니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단다. 근처에 학교와 학원이 많아 여러 아이들이 오가는 동네에 오래 살았는데도 이런 도움 요청은 처음이었다. 급하게 가방을 뒤져 알코올 스왑과 일회용 밴드를 꺼내며 말했다.


“밴드가 커버할 수 있는 크기의 상처가 아니야. 얼른 부모님께 전화해서 데리러 오시라고 해야 할 거 같은데? 곧 병원 문 닫을 시간이니 전화드리자.”


내 말에 아이의 눈이 알사탕만큼 커졌다. 절대 안 된다며 제발 부모님께 말하지 말아 달라고 사정했다. 근데 이게 단순 찰과상이면 피만 적당히 닦아주고 보내겠는데 전문 의학 지식이 없는 내가 봐도 꿰매야겠다 싶을 정도로 상처가 깊었다.


사실대로 얘기하면 혼나고 자전거도 못 타게 하실 거라고 생판 처음 보는 나를 향해 두 손 모아 빌며 사정했다. 겁에 질린 아이의 눈망울을 보고 잠시 고민했지만, 이 또래 아이가 있는 내 절친들이 생각나서 이 상황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피만 좀 닦으면 괜찮다고 하는 아이를 달래 겨우 집에 전화하기로 마음을 돌렸다. 아이의 전화기는 가게 밖 자전거에 걸어둔 가방 속에서 충전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받은 분은 아이의 할머니. 말하기를 주저하는 아이에게서 전화를 살짝 빼앗아 상황을 설명했다.


“저는 지나가는 시민이고 이건 제 전화기인데요.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졌다고 도움을 요청해서 전화드려요. 상태를 보니 지금 어른이 오셔야 할 거 같아요. 놀라서 안 아프다고 하는데 그래도 오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얘기를 들은 할머니는 감사 인사를 한 후 다시 아이를 바꿔 달라고 했다.


“그러게 자전거 타고 가지 말라고 그랬지. 걸을 수 있어? 걸을 수 있으면 자전거 놓고 걸어서 와. 할머니가 지금 어디 와있어서 당장 데리러 갈 수가 없어서 그래.”


할머니의 말에 아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얼핏 본 자전거가 새것이던데 어린이날 선물로 받은 자전거였을까? 요즘 또래 아이들 사이에 필수품인 자전거. 어른들의 우려와 걱정을 무릅쓰고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데 며칠 안 지나 이 사달이 난 거였나 보다.


’택시 불러 줄 테니 집까지 타고 갈래?’ 라고 했더니 천천히 걸어가면 된다며 후다닥 문을 나섰다. 아이를 대신해 체인이 빠져 꼼짝하지 않는 자전거를 들어 학교 담장 근처 한쪽으로 옮겨 줬다. 잠금장치가 없어 자전거를 그대로 놓고 가는 게 불안했는지 아이는 절룩거리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봤다. 그렇게 집으로 향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한참 봤다.


코너를 돌아 아이가 사라지고 난 후에야 원래 빵집에 들어가려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소금빵을 식구 수 대로 사서 계산 후 하나를 꺼내 집으로 가는 동안 먹었다. 빵집 사장님이 그날 유독 소금을 많이 쳤던 걸까? 소금빵을 먹는 내내 이상하게 마음이 짭짤했다. 누군가에게 잠깐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절뚝거리며 집으로 향하던 아이의 뒷모습이 자꾸 마음에 남아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날 집으로 돌아간 아이에게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아마 그날 아이는 혼도 나고 병원에도 가야 할 거고 어쩌면 자전거 금지도 당했을지 모른다. 다친 아이보다 더 놀랐을 보호자의 마음도, 자전거를 잃고 싶지 않은 아이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아이에게 지금 가장 소중한 건 자전거였고, 부모님에게 영원히 소중한 건 아이일 거다. 소중한 걸 잃고 싶지 않은 모두의 마음이 결국 서로를 붙잡고 살아가게 만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 금요일 오후에 놓인 자전거는 주말 내내 학교 담장 옆에 꿈쩍하지 않았다. 월요일 등교 시간 이후 사라진걸 보니 아마 아이나 보호자가 무사히 찾아간 거겠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