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 1점으로 유지되는 자존감에 대하여

별점과 리뷰에서 드러나는 존중받지 못한 사람의 뒷모습

by호사


되도록 선플만 남기는데

너어무 맛이 없네요.

면 식감도 최악이고,

이 정도면 장사 접는 게 낫겠다 싶네요.


근데 이게 이렇게까지 말할 일인가? 즐겨 가던 간짜장 전문점에 달린 후기를 읽는 중이었다. 맛이야 주관적인 거라 본인이 그렇게 느꼈다는데 일개 손님이 뭐라 할 일은 아니지만 장사를 접으라는 말은 솔직히 선 넘은 발언처럼 느껴졌다. 리뷰 창에는 이런 류의 자칭 냉정한 맛 평가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 짜디짠 별점과 리뷰들을 읽는 내내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몇 년째 무섭게 오르는 물가에도 가격을 올리지 않기 위해 직원 없이 홀 담당 아내와 주방 담당 남편이 땀을 뻘뻘 흘리며 고군분투하는 모습.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는 카운터 근처 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종종 봤다. 부모님이 바쁠 때는 신경 쓰이지 않도록 조용히 기다리는 게 익숙한 아이였다.

그렇게 한 가족의 생계가 달린 가게에 평점을 남긴 사람, ’되도록 선플만 남긴다‘는 그 리뷰어의 평균 별점은 2.9점이었다. 최근에 다녀온 음식점 다섯 곳 중 네 곳의 평점은 무려 1점이었다. 이쯤 되면 냉정한 맛 평가자라기보다 워낙 눈높이가 높아서 만족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꾸준히 별점과 리뷰를 살피다 보니 기묘한 패턴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터인가 리뷰어의 평균 별점도 함께 표기되기 시작했다. 그간 작성자가 써 온 리뷰의 평균 점수와 함께 썼던 상세 리뷰를 읽다 보면 현실 속 그 사람의 모습을 짐작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늘 만점을 주고 아쉬운 점을 덧붙였다. 어떤 사람은 거친 표현을 쓰며 대부분의 가게에 낮은 점수를 준다. 이따위면 장사 접어라!, 폐업해라!, 일하는 사람이 싸가지가 없다, 돈이 아깝다 등등 평점이 낮은 식당의 리뷰는 날것의 격한 반응이 가감 없이 남겨져 있다. 무제한 막말 자격증이라도 발급받은 듯 평점이 낮을수록 내가 사장이었으면 문 걸어 잠그고 틀어박혀 2박 3일 정도 펑펑 울고 싶어질 박한 후기가 많았다. 하지만 굳세어야 하는 이 땅의 자영업자들은 쓰린 속을 달래며 괜찮은 척하고 다시 영업 준비를 하겠지? 그들의 치열한 하루를 접할 때마다 존경심이 차오른다.

평점은 가게를 보는 기준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사람이 보였다. 몇 개만 읽어도 그 사람이 어떤 부분에 예민한지 어떤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지 느껴진다. 리뷰든 댓글이든 남겨온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그 사람의 모습이 드러난다. 불쾌한 리뷰(또는 댓글)를 단 계정에 들어가 보면 비슷한 톤의 글이 반복된다.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 계정일수록 댓글에서는 유독 과한 표현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게 분노인지 습관인지 아니면 관심을 얻기 위한 방식인지 잘 모르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그 글은 결국 누군가를 향하게 된다.


다섯 개 별점을 손에 쥐고 날 선 표현과 거친 단어로 무장하고 ’나 되게 무섭지?‘, ’나 엄청 대단한 사람이야‘, ’근데 감히 나를 이따위로 대접해?‘라는 투의 리뷰나 댓글을 보면 오히려 안쓰럽다. 익명성 뒤에 숨어 상처 주는 단어를 쏟아내는 모습에서 오히려 어디에서도 충분히 존중받지 못한 사람의 쓸쓸한 뒷모습이 읽혔다.


별점 몇 개와 몇 줄의 문장으로 누군가의 열심을, 때로는 생계를 평가한다는 건 생각보다 무거운 일이다. 리뷰는 심판이 아니라 기록에 가깝다. 내가 느낀 경험을 남기는 것과 누군가를 평가하는 건 엄연히 다른 일이다. 기어코 이곳을 망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악의를 품고 상처 주는 게 정의도 권리도 아니란 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면서도 쉽게 잊는다.


얼마 후 정말 맛이 변한 건 아닐까 걱정된 마음에 다시 찾아간 중국집. 리뷰를 신경 쓸 틈도 없을 만큼 바쁜 사장님의 가게는 붐비고 있었다. 주문 즉시 짜장 볶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간짜장은 변함없이 맛있었고 중국집 사장님의 아이는 그사이 키가 훌쩍 컸다. 세상에는 악의에 찬 사람이 던지는 짜디짠 별점 몇 개로는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걸 그날 다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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