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용실에 가면 주눅이 들까?

누군가의 1순위가 꼭 내 1순위일 수는 없으니까

by호사


미용실 의자에 앉으면 쭈구리가 된다. 냉혹한 내 몰골의 현실을 비춰주는 진실의 거울 말고도 나를 주눅 들게 하는 순간이 있다. 2달에 한 번씩 미용실에 간다. 솟아나는 흰머리를 두고 볼 수가 없어 참고 참다가 가는 게 2달 주기다. 예전보다 자주 미용실에 간다. 10년 넘게 머리를 맡기고 있는 단골 미용실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제 만났던 사람인 듯 언제나 반갑게 맞아준다.

가운으로 갈아입고, 안내받은 자리에 앉아 선생님이 내 머리를 확인하는 순간 공기의 흐름이 바뀐다. 환하게 웃던 선생님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금세 먹구름이 낀다. 2달마다 뿌리 염색을 하느라 클리닉을 해도 그때뿐. 잦은 염색과 노화 때문에 푸석한 머릿결, 죽은 볼륨, 생기가 없는 상태다. 이때만큼은 선생님께 숙제 검사받는 초등학생처럼 주눅이 든다.


머릿결이 푸석하네요.
평소에 관리는 하시죠?
조금 더 신경 쓰셔야겠어요.


종일 머리를 다루는 사람 눈에는 머릿결 상태가 크게 보일 수밖에 없다. 말과 글을 다듬으며 먹고 산 내 눈에 오타가 크게 보이는 것처럼. 구두 닦는 분들이 손님의 신발 상태만 봐도 건강 상태나 성격을 가늠할 수 있는 것처럼 한 분야에 오래 일한 사람들의 눈에는 그 부분이 크게 보인다. 10년 넘게 봐온 선생님은 직업의식이 투철한 분이고, 고객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라는 걸 나도 잘 안다. 손님의 머릿결 상태에 따라 시술 결과가 달라지니 전문가 입장에서는 그냥 넘길 수 없는 거다.

다 나를 위해 머릿결을 관리하라는 애정 어린 잔소리가 이어지지만 안타깝게도 그걸 다 챙길 에너지는 솔직히 없다. 머릿결 건강 외에도 내겐 챙길 게 많다. 정신 건강을 위해 요가도 해야 하고, 바카라도 읽어야 한다. 신체 건강을 위해 달리기도 하고, 달걀도 삶아야 한다. 통장 건강을 위해 글도 쓰고, 클라이언트의 비위도 맞춰야 한다. 꾸준히 머리를 하는 건 내 슬롯적 체면 유지와 기분 관리를 위해 꼭 해야 하는 최우선의 일이 아니라 여러 가지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머리를 감을 때 트리트먼트를 바르고 바로 씻어내지 않는다. 흡수하길 기다리며 양치질을 한다. 머리에 영양분이 어느 정도 스며들면 물로 헹구고 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한 후 헤어 에센스와 오일을 꼼꼼히 바른다. 이게 머리카락과 두피를 위해 할 수 있는 나의 최선이다.


전문가 기준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나름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누군가의 1순위가 반드시 내게도 1순위일 순 없으니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아마 두 달 후 나는 다시 미용실 의자에 앉아 있을 거다. 그때 또 ’관리 좀 하셔야겠어요.‘라는 말을 듣겠지? 하지만 예전처럼 어깨가 말려들진 않을 것 같다. 여전히 선생님에게는 머릿결이 1순위겠지만 내 삶의 우선순위는 내가 정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