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타인

92세 엄마가 건강해지신 이유

by해피가드너


새해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던 지난 2월 초. 한국 방문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오던 날이었다. 계속 더 있으라고 붙잡는 엄마에게 차마 간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늘 한국을 떠날때엔 마음이 무거운데 그날은 유독 심했다. 결국 깊은 잠에 든 엄마의 얼굴을 보며 야반도주하듯 친정집을 나섰다. 제대로 된 인사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그로부터 5개월 뒤에 다시 만난 엄마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불안과 분노가 서려 있던 얼굴이 편안해졌고 나를 보는 눈길도 한결 여유로웠다.




엄마는 아흔이 넘어서면서부터 크고 작은 사고를 여러 번 겪으셨다.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넘어지시고, 부엌에서 밥을 차리다가 어지러워 맥없이 쓰러지기도 하셨다. 그러는 과정에서 뼈에 골절이 생기고 육체적 고통이 심해졌다. 평생 겪은 아픔 중 가장 심한 통증이라고 괴로워하셨다. 몸이 힘드니 정신까지 피폐해져서 전화로 안부를 물으면 늘 화가 나 있고 심지어는 돌보지 않는다고 소리치셨다. 예전 엄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말을 건네기 무서울 지경이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엄마를 이해하려 애썼지만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참아야지! 하면서도 끝없는 불평과 원망을 듣고 있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픈 엄마를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과 더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마음 사이에서 매일 흔들렸다. 함께 사는 동생도 못 할 일이고 엄마도 계속 이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해결바카라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다가 노인 장기 요양 보험 제도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주변에 물어보니 엄마는 대상이 되기 힘들 거라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현실적인 마지막 답이라 여겨져 일단 신청했다. 곧 공단 직원이 집을 방문해 엄마의 상태를 파악하고 종합병원의 의사 소견서를 첨부해서 제출했다.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92세 되신 엄마는 장기 요양 2급 판정을 받았고, 국가의 지원을 받아 전문 요양보호사님이 매일 친정집으로 출근하시게 되었다.


나는 뉴욕으로 왔고 몇 달이 지나 다시 친정집을 찾았다. 집안은 우울함 대신 정갈한 온기가 돌았고, 엄마의 얼굴은 한결 편안하고 환해져 있었다. 나를 보며 화도 덜 내시고 연신 요양보호사님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매일 정성스러운 식사를 차려주고 불편한 다리를 마사지해 준다고 했다. 아파트 단지도 산바카라하시고.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편안해 보였다.


무엇보다 엄마에게 가장 큰 변화는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다. 우리 자식들이라면 “엄마, 그 이야기 또 해?”라며 지루해했을 이야기였다. 어쩌면 속으로는 짜증부터 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양보호사님은 수백 번 반복된 이야기도 처음 듣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맞장구를 치며 끝까지 들어주셨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엄마의 하루를 다시 살아나게 한 듯했다. 우리가 채우지 못한 일들을 타인이 따뜻하게 지켜주고 있었다. 미안하게도 또 감사하게도.


짧은 한국 방문을 마치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는 날, 나는 더 이상 야반도주를 하지 않았다. 엄마의 두 손을 꼭 잡고 인사를 드렸다. "엄마, 이제 뉴욕 집으로 가요. 요양보호사님과 재미있게 지내시고 건강하셔요. 다음에는 여행도 가고요." 엄마는 한숨 대신 가벼워진 미소로 내 손을 꼭 쥐여주셨다. "걱정하지 말고 조심히 가거라. 잘 지내고 있을 테니."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길, 한여름의 날씨는 덥고 끈적거렸지만, 어디선가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는 듯 상쾌했다. 한국을 떠날 때마다 느꼈던 죄바카라감과 미안함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따뜻한 타인'이 선물해 준 건강한 돌봄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