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그림에 담긴 이야기

by해피가드너


지난주, 급히 처리해야 할 서류가 있어 잠깐 한국에 다녀왔다. 여름 감기 기운이 있어 장시간 비행과 복잡한 행정 절차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다섯 살 아래인 막냇동생 덕분에 공항 픽업부터 서류 처리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무사히 일을 마치고 뉴욕에 돌아오니 침실 벽에 걸린 소박한 유화 한 점이 반갑게 눈에 들어왔다. 오랜 시간 나와 매일 안부를 나눈 그림이다.


198X년 12월, 졸업 연주회 날이었다.

연주회 석 달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졸업 연주회를 준비해야 했지만 마음은 자꾸 주저앉아 연습하다가도 아버지 생각에 손이 멈추곤 했다.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고, 연주회 날은 다가왔다. 나는 레이스가 달린 하얀 블라우스에 허리가 꼭 맞는 새틴 롱스커트를 입고 무대에 섰다. 여섯 살 때부터 시작한 내 음악 인생이 한 단락을 맺는 날이자, 또 다른 시작 앞에 서는 날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내 생일이기도 했다.


연주가 무사히 끝나고, 중강당 앞에서 축하해 주러 오신 손님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고등학생이었던 동생은 학교 시험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줄 알았다. 그때 멀리서 교복을 입은 학생이 정신없이 뛰어오고 있었다. 한 손에는 까만 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비닐백을 들고서. 가까이 다가온 얼굴을 보니 막냇동생이었다.


“누나! 졸업 연주와 생일 축하해! 이거 선물이야!”

동생은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커다란 비닐백을 내밀었다. 시험을 마치자마자 달려온 모양이었다. 연주회는 이미 끝났지만, 동생의 이마에는 아직 땀이 맺혀 있었다.


중강당 앞 벤치에 앉아 비닐백을 열었다. 안에는 유화 한 점이 들어 있었다. 밤색 스웨터와 연한 베이지색 스커트를 입고 고궁의 연못가에 앉아 있는 나를 그린 그림이었다. 동생은 내가 찍힌 사진 한 장을 보고 공부 틈틈이 그림을 완성했다고 했다. 그림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누나의 슬프고도 기쁜 졸업 연주회와 생일을 축하해.’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졸업의 기쁨이 함께 있던 날. 고등학교 1학년이던 동생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본인의 슬픔은 뒤로 한 채로.


그 후 내가 결혼하게 되자 동생은 참 서운해했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공부로 스트레스가 쌓였는지 아니면 외로웠는지 가끔 술에 취해 밤늦게 우리 집으로 찾아오곤 했다. 그런 날이면 나는 정성껏 밥을 지어주고 용돈을 쥐여주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아파트 복도를 돌아가던 동생의 뒷모습이 어찌나 짠하던지. 막내였던 그에게 가족의 관심과 사랑이 충분히 닿았을까 생각하곤 했다. 지금도 그때의 모습이 떠오르면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대학을 졸업한 동생은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에 올 때마다 초등학생이던 우리 아이들이 쓸 공바카라과 학용품을 한 아름 사 왔다. 장학금으로 빠듯하게 생활하면서 마련한 선물이었다. 동생의 형편을 알고 있었기에 차마 마음껏 쓸 수 없었다. 몇 권은 그림과 함께 미국까지 가지고 왔다. 우리 아이들이 가끔 물었다. “엄마, 그 공바카라은 대체 어디에 쓰려고 그래요?” "그건 쓰는 게 아니란다."라며 공바카라을 서랍 깊숙이 넣어두고 가끔 꺼내보았다. 먼 곳에서 공부하며 가족을 생각했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서.


짧은 한국 방문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와 침실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니 더 애틋하게 다가왔다. 인천공항에서 반갑게 나를 맞아주던 지금의 동생과 중강당 앞까지 뛰어오던 사십 년 전의 동생이 겹쳐 보여서다. 세월이 흐르고 각자의 삶에 여러 굴곡이 있었지만 동생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림에 담긴 이야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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