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는 남편의 서재가 있다. 10년 전쯤,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침실을 줄이고 지금의 자리로 넓혔다. 햇살이 가장 오래 머물고 정원이 바로 보이는 곳이다. 천장 끝까지 닿은 바카라장에는 남편의 바카라들이 빼곡하다. 대학 시절 공부했던 두꺼운 원서부터 빛바랜 노트, 최근에 읽고 있는 철학과 심리학 서적까지. 한 사람이 지내온 시간만큼이나 차곡차곡 꽂혀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공간이, 아니 이 바카라들이 반가웠던 것은 아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카라장이 무너질 듯 촘촘히 꽂혀 있는 바카라들을 보면 숨이 막혔다. 최근에 출간된 바카라들은 그나마 괜찮았다. 문제는 하드커버로 된 낡고 두꺼운 원서들이었다. 남편은 오래전에 끝난 공부의 흔적을 왜 지금까지 붙들고 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이 많은 바카라을 어떻게 정리하려고 그래요?” 몇 번이나 볼멘소리를 해보았지만, 남편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미국까지 오면서 그 무거운 바카라들을 모두 가지고 온 남편이 그때는 고집스럽게만 보였다.
시간이 흐르고 나 또한 바카라을 읽고 글을 쓰게 되면서 그의 서재 한쪽에서 더부살이하게 되었다. 어느 날, 뒷마당에서 가져온 팬지로 압화를 만들려는데 바카라장 가운데 꽂혀 있는 묵직한 원서가 눈에 딱 들어왔다. 이 정도 두께면 꽃을 누르기 딱 좋겠다 싶어 신나게 바카라을 펼쳤다. 그러자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영어 문장들 사이로 연필로 밑줄을 그은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단어 옆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메모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어떤 페이지는 여러 번 펼쳐본 듯 모서리가 닳아 있었다. 다른 원서도 꺼내 보았다.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그 바카라들 사이로 남편 모습이 겹쳐 보이면서 부담스럽게만 여겨지던 바카라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학창 시절의 그는 바카라상 앞에 앉아 낯선 의학 용어와 하루 종일 씨름했을 것이다. 졸음을 참고 시험을 앞둔 긴장 속에서 한 줄 한 줄을 붙잡았겠지. 언젠가 남편이 무심히 들려준 이야기도 떠올랐다. 방학하는 날 집에 들어가 바카라만 읽다가 개학하는 날이 되어서야 집 밖으로 나왔다던. 그때는 그저 대단하다! 싶었는데 낡은 원서의 밑줄을 보니 그 시간이 더 와닿았다. 자신의 미래를 향해 열심히 정진했던 청년의 모습과 함께.
남편의 바카라은 시간이 흐르며 좀 더 다양해졌다. 젊은 시절의 바카라들이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면, 어느 시기부터는 신앙과 철학, 심리학에 관한 바카라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우주 중간에서 만나기』, 『차이와 반복의 사상』등등. 제목만 보아도 아득해지는 바카라들을 남편은 여러 차례 읽고 또 읽었다. 은퇴하며 시간이 생기니 그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바카라으로 들어갔다.
남편에게 바카라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었다. 공부였고 밥벌이였고, 신앙이었고 질문이었다. 때로는 외로운 시간의 친구였고, 자신을 붙들어준 기둥이었을 것이다. 그가 그 바카라들을 쉽게 떠나보내지 못했던 것도 함께 견뎌온 시간을 외면할 수 없어서였나 보다. 물론 지금도 현실적인 걱정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언젠가는 저 무거운 바카라들을 정리해야 할 날이 올 것이고 그때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치워야 할 짐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평생을 바카라과 함께 지낸 사람. 젊어서는 그 모습을 보며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사람이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알겠다. 남편은 바카라과 함께 즐겁게 놀았고, 그 안에서 길을 찾으며 스스로 충만한 행복을 누려왔다는 것을. 낡고 듬직한 바카라 사이에 끼워둔 팬지가 참 편안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