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는 화만 부른다

딸들한테 화내고 나서 씁니다 19.

by소년의 초상

화는 화만 부르고 그 화는 나도, 상대방도 좀 먹는다.


화를 내는 와중에도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쉽게 조절이 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지만 그저 그렇게 되고 만다.


결국 나의 마음도 아프고 무겁고, 상대방 역시 괴로운 마음뿐이다.


오늘은 특히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프다.




아이를 양육하면서 매번 느끼는 감정이 있다.


- 죄바카라감 -


잘하고 있을 때도 느끼는 감정이고, 못하고 있을 때도 느끼는 감정이다. 언제나 이 죄바카라감이라는 감정은 갑자기 훅 파고 들어와서 온몸을 마비시킨다. 머리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도대체 왜 소용돌이처럼 빨려 들어가는 것일까.


아이들이 주말 동안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 아침부터 늦잠을 잤다. 당연히 리셋됐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내가 먼저 일어나 씻고, 먹을 것을 준비했다.


아내도 약간의 게으름을 피웠다. 역시, 모두가 피곤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들 옆에 노래를 틀어놓아도, 살짝 깨워봐도 반응이 없다. 오늘 아침은 아내뿐 아니라 나도 출근을 해야 하니, 절대 늦잠은 있을 수가 없다.


1차 호통을 시작해 본다.


"일어나!"


첫째는 즉각 반응한다. 분명 정신이 없을 것 같아서 가방을 싸고, 아침에 입을 옷을 꺼내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조금의 도움이 필요하기에 조금의 도움까지만 줬다.


순조롭다. 첫째는 역시 말을 잘 듣는다. 아침에 차려놓은 밥상에 얌전히 앉아 한 술 뜬다. 오늘은 계란 한 개를 저며서 계란 한 알과 함께 비벼 팬케이크처럼 구워줬다. 간은 소금만 넣어서 간간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첫째는 등원준비가 끝났다.


그런데 오늘 아침 불행의 시작, 둘째가 여전히 꿈속을 헤매고 있다.




둘째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정신없이 재밌는 주말을 보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등원하길 바랐다. 30분 넘게 시간을 주었다. 둘째가 마법의 사운드처럼 정신을 깨는 '골든'을 들려주어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아내와 동시에 깨우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옷까지 입히고 양치도 시켰으나, 요지부동이다. 평소 이렇게까지 잠을 자지 않는데, 피곤했겠거니 생각을 하려 했지만 아차, 출근을 해야 한다.


도깨비에게 전화를 했다. - 요새 유튜브 채널에 도깨비 아저씨가 있는데, 정말 무섭다. - 둘째는 금세 울음바다가 됐다. 정말 이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얼른 안 일어나면 도깨비 아저씨 부른다! 일어나서 식탁으로 가!"


둘째는 하염없이 울더니 어기적 어기적 식탁으로 이동해 앉는다. 앉아서도 계속 떼를 쓰고 짜증만 낸다. 나는 멀찌감치 이동해 거실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지만, 둘째의 떼쓰기 시동에 신경이 곤두선다.


"그만 떼쓰고 얼른 밥 먹어."


"끄잉. 으엥. 으앙. 눈에 들어갔잖아. - 엄마는 둘째 얼굴에 로션 바르는 중. 절대 눈에 로션이 들어가지 않았음. - 아프잖아. 그만해. 으앙"


한 번 터진 짜증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점점 아침 집안의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참자, 참자. 당연히 피곤해서 그럴 거야. 절대 화내지 말자. 여기서 화내면 첫째는 또 심장이 쿵쾅쿵쾅 할 거야. 둘째도 힘든 마음으로 등원할 거야. 아내는 무슨 죄냐.


눈을 감고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는다. 살짝 눈을 떠보니 어라? 둘째가 거실로 와서 새로 산 가방을 부여잡고 짜증 시동을 걸고 있다.


왜 하필 내 앞으로 와서 또 저러는 거지. 소리를 지르지 않고 나지막이. 또박또박 말을 해본다.


"둘째야. 쫓아다니면서 짜증 내지 말고, 그만해. 늦잠 자서 아빠한테 혼난 거잖아. 그만 짜증 내. 쉿."


만 3세의 딸은 마치 알아먹은 듯이 잠자코 조용하더니, 도저히 그 감정을 참을 수가 없었나, 다시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왜. 으잉. 왜. 안 되는 거야. - 새로 산 아담한 가방의 끈을 짜증 가득하게 비비기 시작한다. - 으잉. 으잉. 으잉!!!"


터지고 말았다. 그러면 안 됐는데.


"너 이리 와. 엄마 맴매 좀 갖고 와요."


"너. 네가 아침에 늦잠 자고, 혼나고 그랬으면 얌전히 말 들어야지. 뭘 잘했다고 짜증만 내. 어? 잘못했어 안 했어. 아빠가 혼내면 아빠를 쳐다봐야지."


이미 눈물 콧물바람으로 아이의 얼굴은 울긋불긋하다. 콧물도 나와서 너무 불쌍하다. 그렇지만 이 화는, 내가 컨트롤이 되지 않는다. 멈출 수가 없다. 멈출 수 없는 폭주기관차 같다.


"빨리 신발 신어. 어린이집 가게."


둘째는 이런 아빠가 무서워 엄마의 발에 매달린다. 그런 모습을 보니 가슴을 두드려 맞은 것처럼 찢어질 듯이 아프다. 마음은 이런데, 화는 가라앉질 않는다. 정신병인 것 같다.




엘리베이터에 가족이 함께 탔다. 폭풍전야. 그런데 중간에 할아버지 한 분이 타신다. 우리 가족을 대놓고 쳐다본다. 눈치를 줘도 뚫어지게 쳐다본다. 화가 치민다.


그렇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둘째는 여전히 엄마 발만 잡고 동동 매달려 훌쩍훌쩍 떼를 쓴다. 도저히 못 참고 들고 있던 둘째의 등원 가방을 바닥에 놓았다. - 마음은 정말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이성의 끈을 붙잡고 내려놨다. -


"알아서 가 인마."


아내와 둘째만 남긴 채, 첫째의 손만 잡고 그대로 아파트 공동현관을 빠져나갔다. 걸어가면서도 마음이 아프고, 지금이라도 둘째를 달래줄까, 아내의 마음을 풀어줘야 하는데, 첫째도 지금 무서울 텐데, 고민하지만 결국 첫째만 차에 태워 등원을 시킨다.


내내 마음이 무겁고 웃음도 나오지 않고 물 한 방울 먹지도 않고 있다. 둘째도 그렇고 아내도 그럴 테니까.


아니, 둘째는 쿨하니까 제발 그냥 훌훌 털어버렸으면 좋겠다. 아침 간식을 먹으면서 털어버렸겠지? 괜찮겠지? 아내를 시켜서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물어보라고 할까? 아니다. 그만 두자. 아내도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을 주자.




화는 화만 부른다. 화를 내서 뭐가 나아진 게 없다. 그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또 화를 낸다. 또 죄바카라감을 느낀다. 마음이 짓눌린다. 무엇도 즐겁지 않다.


내 감정이야 어떠랴. 만 3세 둘째의 마음이 제일 아플 텐데. 피곤해서 늦잠을 잔 것을. 내가 조금 늦으면 될 텐데. 왜 그렇게 썽을 냈을까. 안아주고 풀어주고 올 것을. 왜 끝까지 어린애와 같은 선상에서 신경전을 했을까.


나 스스로에게 분하고, 밉다. 정말 밉다. 왜 그깟 화를 다스리지 못해서 아침부터 세 여자를 힘들 게 했을까.


다신 그러지 말자. 화를 내봤자 헛수고다. 오늘도 몇 시간째 이 생각뿐이다. 오늘 나의 하루가 망가졌지만 나 때문에 가족 모두도 그럴 것이다.


화내지 말자. 가만가만 말하자. 안아주자. 이해하자. 똑같은 어린애가 되지 말자. 난 집안의 대장이 아니다. 아내를 소중히 하자.


그럼에도 가슴에 얹힌 큰 돌은 내려올 생각을 안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