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한테 화내고 나서 씁니다 18.
금이야 옥이야. 두 딸을 키우다 보니 항상 이런 생각이 양육의 중심이었다. 집에서는 항상 부족한 꼬마 아이들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밖에서는 슬롯생활 만렙이라면?!
최근 첫째와 둘째의 유치원, 어린이집 학부모상담을 모두 다녀왔다. 아내에게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기우였을 뿐이었다.
내 딸들은 슬롯생활 만렙이었다. 선생님들 모두 너무 잘하고 있어서 걱정이 없다는 말 뿐이었다. 아니면 모두에게 그렇게들 말씀하시나?!
첫째는 감수성이 풍부하다. 그리고 센서티브 하다. 그렇다 보니 손도 많이 가고, 내가 혼내놓고 내가 풀어줘야 한다.
"첫째. 그러면 돼 안 돼. 다신 그러지 마."
"응. 훌쩍훌쩍. - 이미 이불 덮고 누워버린 지 오래됐음 - "
반대로 순응적이기도 하다.
혼내면 다른 소리하지 않는다. 이게 틀렸다고 하면 "네"라고 대답하고 고치려고 한다. 고치려고 노력은 하지만 잘 고쳐지지 않을 뿐이다.
얼굴도 참 곱다. 다리도 늘씬하다. 외모적으로도 뛰어나다 보니 벌써 유치원에서 남자애들 둘이 딸에게 결혼하자고 한다. 그런 딸이다.
첫째 유치원 담임선생님을 만났을 때 내가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최대한 들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역시나 메모할 만한 이야기들이 정말 많았다.
결론은 첫째 딸의 경우 슬롯생활 만렙이라는 것. 교육의 효과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집에서는 흐물흐물 지렁이 같던 아이가 밖에서는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원장 선생님 말도 잘 듣고 교우관계에서도 바른 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미소를 참지 못했다. 이게 부모의 마음인 것인가.
둘째는 조금 더 걱정됐다. 집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망나니 기질이 있기에 선생님의 말씀에 표정관리를 하려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둘째를 잘 모르는 아빠의 순진함이었다.
둘째는 반에서 제일 의사표현이 정확하며, 소근육이 발달돼 있어 펜을 쥐고 숫자를 잘 쓰며, 몸이 탄탄하다고 했다.
그리고 부모와의 신뢰관계가 확실한 것 같다는 말도 있었다.
어느 날은 둘째가 교구 위에 올라가 있었는데, 선생님과 거리가 있었음에도 선생님을 보자마자 위험을 감수하고 번쩍 뛰어 선생님에게 안겼다고 한다.
이는, 부모와의 큰 신뢰, 유대관계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기에 선생님이 보았을 때 아이가 그런 행동을 밖에서도 한다는 것은 부모님이 잘하신 거라고 했다.
다만, 예상한 대로 망나니 기질이 있기에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상호 의견을 나눴다.
"아버님 근데 우리 아가가 아직 정확한 말은 못 하기 때문에 조금 짜증 나거나 원하는 게 있으면 끄응하면서 간지럽다, 어지럽다, 멀미한다고 하는데 이게 신호인 거 아시죠?"
"그럼요. 끄으으응. 하기 시작하면 저희 집은 외면하고 있어요. 감정소모 해봤자 소용이 없더라고요. 우리 딸은 본인이 원하는 것은 얻어야 끝납니다. 그런데 이유 없이 떼쓰는 경우는 없어요."
나도 모르게 또 편을 들고 말았다. 나는 절대, 누구 앞에서도 내 딸들의 단점을 말하지 않는다. 호응도 하지 않는다. 그게 상대방에게 물들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 장난이라도, 자신의 가족을 남들 앞에서 험담하거나 동조해서는 안 된다.
아무튼. 이렇게 모든 학부모상담이 끝나고 느낀 점이 있다. 딱 한 줄. - 우리 딸들은 슬롯생활 만렙이라는 것 -
집에서 짜증을 내는 것은 어린이집에서 열심히 살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허덕이며 버티고 있는 줄만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로 더 잘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부쩍 커가는 것을 느낀다.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는 것은 나지만, 가끔 위로도 받고 배워야 할 점도 번쩍 느낀다.
며칠 전 돈가스를 먹고 바로 자버려서 체한 적이 있다. 오한과 몸살, 두통으로 힘들어서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들 밥을 해주려고 일어나서 된장국을 끓이고 청경채와 멸치를 볶았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또 몸져누워있는데, 둘째가 가만히 다가왔다. 이마를 만져보더니 "뜨거워. 괜찮아 아빠?"라고 드문드문 이야기를 했다. 감동이었다.
맨날 혼내기만 했는데 이렇게 위로를 해주니 얼른 털고 일어나야만 할 것 같은 주문이 들어왔다.
슬롯생활 잘하는 우리 딸들. 점점 아빠 손을 덜 타고 밖으로 나갈 것만 같은 딸들. 모든 순간들이 각별하고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