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피로: 좋은 상사도 어려운 나
새로운 요가원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내가 일보다 관계 태도 관리에 더 지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됐다. 어떤 사람은 갈등에 약하고, 어떤 사람은 선택에 약하다. 나는 위계가 생기는 관계에 유독 약한 사람이다.
단순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어려움만 겪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관계 맺는 방식 자체에서 큰 피로를 느끼고 있다는 것.
특히 원장과 일정을 조율하거나 답장을 보낼 때, 나는 필요 이상으로 조심스러워진다. 예의 있게 말하는 것을 넘어, 겸손하게 보여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고, 혹시라도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계속 신경 쓰게 된다. 그러다 보니 짧은 연락 하나에도 생각이 많아지고, 그 과정 자체가 나를 몹시 지치게 만든다.
이 피로는 단순히 원장이라는 한 사람의 성격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상대에게 특별한 문제가 없더라도, ‘상사가 있는 구조’ 안에 들어가는 순간 내가 자연스럽게 긴장하고, 나를 작게 만들고, 말을 고르게 되는 패턴이 있는 듯하다. 지금의 경험이 처음도 아니다. 돌아보면 예전에도 나는 상사가 있을 때 비슷한 어려움을 느꼈다. 갈등이 있지 않아도, 누군가 위에 있는 관계 속에서는 늘 조심해야 할 것 같고, 괜히 더 공손해야 할 것 같고, 내 마음이나 내 편의는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꼈다. 그래서 실제 업무보다 관계 안에서의 태도 조절이 더 많은 에너지를 빼앗아갔다.
내가 힘든 이유는 일을 못해서라기보다, 관계 속에서 나를 지나치게 조정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상대에게 맞추고, 무난해 보이고, 성실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노력이 어느 순간 자연스러운 예의가 아니라 자기 소모가 된다는 점이다. 나는 단지 연락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를 관리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일이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지치고, 마음이 닳는다.
처음에는 요가원이라는 공간에 조금 기대가 있었다. 헬스장보다 더 진지하게 요가를 가르칠 수 있는 곳일 것 같았고, 나 역시 그런 방식의 수업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내가 기대했던 ‘요가를 가르치는 일’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사람 사이의 긴장과 조율이었다. 그래서 벌써부터 질린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감정이 정말 요가 자체에 대한 싫증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질린 것은 요가가 아니라, 요가를 둘러싼 관계 구조와 그 안에서의 나의 태도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헬스장처럼 관리인과 말을 섞을 일이 거의 없는 구조가 더 낫겠다는 생각도 한다.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내가 진지함이 부족해서 드는 건가 싶었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나는 단지 일이 좋은가 나쁜가만 따지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구조 속에서 덜 소모되는가를 중요하게 느끼는 사람일 수도 있다. 누군가와 계속 결을 맞추고, 내 표현을 조심하고, 보이지 않는 기대를 읽어야 하는 환경보다, 내 역할이 분명하고 관계로 인한 소모가 적은 환경에서 더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일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내 고민의 핵심은 ‘요가원이 맞느냐 아니냐’만이 아니다. 더 깊은 곳에는 내가 왜 윗사람 앞에서 이렇게 긴장하는지, 왜 겸손함과 자기축소를 자꾸 혼동하는지, 왜 상대에게 특별한 문제가 없어도 관계 자체만으로 피로해지는지가 놓여 있다. 나는 아마도 갈등을 만들지 않으려는 마음이 크고, 미움받거나 불편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려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를 지키는 방식보다 관계를 매끄럽게 만드는 방식을 먼저 택해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나를 좋은 사람처럼 보이게 할 수는 있어도, 편안하게 살게 하지는 못한다.
지금의 경험은 나에게 한 가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나는 단순히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어떤 관계 구조 안에서 일하느냐’에 훨씬 크게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상사가 특별히 나쁘지 않더라도 내가 힘들 수 있다는 사실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나는 괜히 유난을 떠는 것이 아니라, 내 성향과 긴장 방식에 맞지 않는 구조 안에서 실제로 피로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 참는 것도, 무조건 그만두는 것도 아닐 수 있다. 먼저 내가 어떤 환경에서 편안한지, 어떤 관계 방식에서 유독 소모되는지, 예의와 자기소멸 사이에서 어디까지가 건강한 태도인지 더 분명히 알아가는 일일 것이다. 이 경험은 나를 부족한 사람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사람을 대할 때 가장 무너지기 쉬운지를 알려주는 단서다. 어쩌면 나는 지금 단순히 온라인 게임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꾸 작아지는 나 자신을 처음으로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