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손 — 끊어 내야 낫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을 쥘 수 있어야 놓게 된다.

by응시

이야기

그 여자는 여전히 밤마다 마셨다.


글 몇 편을 읽었다고 달라지지는 않았다. 다만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게 되었다. 알면서 마시는 밤이 모르고 마시던 밤보다 나은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회사에서 옆자리 사람이 물었다. 요즘 얼굴이 안 좋은데 잠은 좀 자느냐고. 그냥 지나가는 말이었다.

그 여자는 처음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한마디를 더 했다. 사실 잠이 잘 안 온다고. 그래서 밤마다 한 잔씩 한다고.


그 사람은 놀라지도 않았고 끊으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또 물었다. 어젯밤은 어땠느냐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 여자는 그다음 주에도 마셨다. 다만 그 주에는 마시면서 그 사람이 물어볼 것을 생각했다.


한 달쯤 지나 어느 밤, 잔을 따르다가 그냥 두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오늘은 안 마셔도 될 것 같았다. 그날은 그냥 잤다.


다음 날 또 마셨다. 그래도 안 마신 밤이 하나 생겼다.


들여다보기

열아홉 번을 돌아 여기까지 왔다. 이제 마지막 물음이 남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이 편은 방법을 알려 주는 편이 아니다. 방법을 파는 시장이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앞에서 이미 봤다. 여기서 또 하나의 숙제를 내면, 이 글도 그 시장의 한 자리가 된다.


먼저 한 겹. 끊는 것이 답이 아니다.


무엇을 끊어야 하는지는 다들 안다. 몰라서 안 끊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안 되는 것은 의지가 모자라서가 아니다. 그것이 무언가를 대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하던 것을 그냥 빼면 어떻게 되나. 그 자리가 도로 빈다. 그러면 다른 것이 들어온다. 술을 끊은 사람이 일에 매달리고, 일을 놓은 사람이 화면을 붙든다. 무엇을 붙들었는지만 바뀌고 붙드는 손은 그대로다.


그러니 순서가 반대다. 놓아야 다른 것을 쥐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을 쥘 수 있어야 놓게 된다.


여기서 한 겹 더 내려가야 한다. 그러면 무엇을 쥐어야 하나.


그 빈 데가 어디서 생겼는지를 보면 답도 거기 있다.


앞에서 봤듯이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생긴 빈 데었다. 값으로 매겨지고, 견주어지고, 자리가 헐리면서 생긴 것. 섞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데 그럴 데가 없어서 생긴 허기였다.


사람 사이에서 생긴 허기는 사람 사이에서만 메워진다. 물건으로도, 숫자로도, 잔으로도 안 된다. 잠시 덜 느끼게 할 뿐이다. 열아홉 편의 사람들이 그렇게 애쓰고도 늘 다시 빈 것은 그래서다. 엉뚱한 데를 채우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


덜 바라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아무것도 안 바라면 아무것에도 안 매이니까. 실제로 그렇게 견디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 길에는 값이 따른다. 안 매이는 대신 좋아하는 마음도 같이 얇아진다. 별 거 아니라고 하면 편해지는데, 그러다 정말 별 거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매이지 않는 삶과 식은 삶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러니 덜 바라는 것도 더 바라는 것도 답이 아니다. 바라는 곳을 바꾸는 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것을 향하던 마음을, 채워질 수 있는 데로 돌리는 것.


그리고 그것은 대개 사람이다.


한 걸음 물러서서

다만 여기서 조심할 것이 있다. 사람을 만나라는 말도 숙제가 될 수 있다.


이 슬롯는 무엇이든 개인의 몫으로 만드는 데 능하다. 관계도 그렇게 된다. 인맥을 넓히라 하고, 소통을 배우라 하고, 좋은 사람을 곁에 두라 한다. 그러면 사람 만나는 일마저 잘해야 하는 것이 되고, 못하면 또 자기 탓이 된다.


그래서 이 편은 그런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앞의 이야기에서 그 여자를 도운 것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상담을 해 준 것도 아니고, 끊으라고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잠은 좀 자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또 물었다.


그게 다다. 그런데 그게 컸다.


무언가를 붙들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대개 그런 것이다. 고쳐 주는 사람이 아니라 알아봐 주는 사람. 지켜보다 한 번 더 물어봐 주는 사람. 상자를 쌓던 사람도, 화면을 넘기던 사람도, 새벽에 일어나던 사람도 다 그것이 없었다.


그러면 이 물음이 남는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으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나.


시간이 있어야 한다. 얼굴을 자주 볼 수 있어야 하고, 다음 주에 또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아파도 멈출 수 없는 사람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다. 이 시리즈가 열아홉 편에 걸쳐 본 것이 그것이다. 사람을 서로에게서 떼어 놓는 조건들.


그러니 마지막 물음은 개인에게 가지 않는다.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볼 시간을 남겨 두는 슬롯인가. 값으로 재지 않고도 사람이 사람으로 있을 수 있는 데가 남아 있는가. 아프면 멈춰도 되고, 멈춰도 밀려나지 않는가.


이것은 마음가짐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이 시리즈의 마지막 말은 각자 힘내라는 말이 될 수 없다.

다만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기는 하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지나가는 말로 한번 물어보는 일이다. 요즘 어떠냐고. 잠은 자느냐고. 대단한 말이 아니어도 된다. 그리고 며칠 뒤에 한 번 더 물어보는 일.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밤이 된다.


닫으며

열아홉 편 내내 같은 것을 물었다. 이 상처로 누가 이득을 얻는가.


이제 그 답을 다 알았으니 무엇이 달라지는가 하면, 사실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뿌리를 알았다고 뿌리가 뽑히지는 않는다. 내일도 화면을 열 것이고, 잔을 따를 것이고, 못 지킨 칸을 붉게 칠할 것이다.


그래도 하나는 달라진다. 그것이 당신이 못나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사람은 자기를 덜 때린다. 자기를 덜 때리는 사람에게는 힘이 조금 남는다. 그 힘으로 곁을 보게 된다.


이 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다.


지금까지 열아홉 번, 무언가를 쥔 손을 들여다봤다. 결제하는 손, 판돈을 미는 손, 잔을 여는 손, 화면을 넘기는 손, 붉은 칸을 칠하는 손, 약을 삼키는 손.


그 손이 다른 것을 쥘 수도 있다고 여러 번 적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그 다른 것이 무엇인지 적는다.

대개 다른 사람의 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