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꽉 막힌 순환도로 위에서 문득 룸미러를 보다 낯선 얼굴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눈가에 자글자글해진 주름이나 희끗희끗 올라온 새치를 보며 ‘나도 나이를 먹어 가는구나’ 싶은 아쉬움이 밀려옵니다.
30대까지만 해도 인생의 속도가 조금 느려보였습니다. 시속 30km 정도 됐을까요? 마흔을 넘긴 지금 시속은 40km 아니 그 이상으로 점점 액셀을 밟고 있는 느낌입니다.
사실 앞만 보고 달리기에도 숨이 차는 나날이기도 하죠. 온라인 게임에서는 중간 관리자라는 무게감에 짓눌리고, 밖에서는 어떻게든 자산을 지키고 키워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생존 게임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으니까요.
세상이 요구하는 숙제들을 앞뒤 가릴 것 없이 쳐내다 보면, 늘 가장 먼저 뒤로 밀리는 숙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가족입니다. “이번 일만 끝나면”, “이번 달 고비만 넘기면” 하면서 우리는 너무나 쉽게 나중에라는 단어를 입에 올립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볼 때입니다. 그 ‘나중에’가 과연 언제 올까요?
인생의 절반쯤을 걸어오니 비로소 깨닫게 되는 진실 하나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어떤 면에서 우리가 기다려달라 하면 잠시 멈춰 서 주기도 하지만,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결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왜 지금 바로 핸드폰을 내려놓고 가족의 얼굴을 바라봐야 하는지 잔잔한 이야기 전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유한한 시간. 시간이 야속하다는 말, 솔직히 어릴 때는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고, 조금씩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며 이 말은 조금 직접적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아이가 커가는 모습은 마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고운 모래 같기도 합니다.
가족과 함께할 시간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갑니다. 아이의 어린 시절도, 부모님의 건강한 시절도 결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둘째, 인생의 황혼 마지막 즈음에 남는 기억. 나이가 들수록 뇌리에 각인되는 기억의 유통기한. 어떻다고 보시나요?
젊은 날 치열하게 매달렸던 업무 성과, 자산을 늘리기 위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던 순간의 짜릿함은 생각보다 빠르게 휘발됩니다.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을 때, 과연 우리는 무엇을 떠올리며 미소 짓게 될까요?
얼마 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 누구도 “내 집 마련을 했을 때”라거나 “부장으로 승진했을 때”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건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었습니다. “젊은 날, 아내와 손잡고 걷던 동네 뒷산 산바카라길”, “마당에서 한 여름에 아이와 물장구쳤던 어느 날의 오후” 같은 것들이었죠.
결국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영혼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건, 보이는 거창한 성공 따위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촘촘하게 쌓아 올린 평범한 기억의 잔상들 일지 모릅니다.
셋째, 폭풍우 치는 세상 속 머무를 유일한 항구. 자본주의 슬롯는 냉혹합니다. 온라인 게임이라는 울타리는 생각보다 쉽게 흔들리고, 우리가 그토록 매달리는 인간관계나 비즈니스 파트너십은 이해관계가 끝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지곤 합니다. 내가 잘 나갈 때는 주변에 사람들이 들끓지만, 진정한 위기의 순간이 오면 세상은 차갑게 등을 돌립니다.
큰 투자 실패로 빚더미에 앉아 절망했던 한 연예인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한창 잘 나갈 때는 매일 밤 술잔을 부딪치며 “형님, 아우” 하던 사람들이 연락을 끊는 데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며 방황하던 그를 붙잡아 준 건 결국 아내와 아이들이었습니다.
“돈은 다시 벌면 되지, 당신 몸 상하는 게 더 무섭다”며 투박하게 손을 잡아주던 아내의 한마디, 그리고 퇴근길에 아무것도 모르고 달려와 목을 끌어안는 아이의 온기 덕분에 그는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세상이라는 거친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났을 때, 우리가 마지막으로 닻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항구는 결국 가족뿐입니다.
넷째, 부모님의 기다림, 그들의 야위어가는 뒷모습. 우리가 나이를 먹는다는 건 동시에 부모님 또한 그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느라 바쁘지만, 부모님의 세상은 점점 좁아져만 갑니다. 그 좁아진 세상 속에서 부모님이 채우는 유일한 시간은 자식의 전화를 기다리는 일일지도 모르죠.
지난 주말, 오랜만에 본가에 다녀왔습니다. 저녁을 먹고 문득 베란다 밖을 내다보던 엄마의 조금은 굽은 등과 가느다란 손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어릴 때 세상에서 제일이었던 엄마의 어깨가 조금 작아져 있더군요.
어머니는 제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시장을 보고, 무슨 반찬을 할지 고민하며 일주일을 온통 ‘기다림’으로 채우셨다고 했습니다. 그날 먹은 고등어조림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정작 저는 바쁘다는 핑계로 도착해서도 핸드폰으로 들여다보느라 바빴는데 말이죠. 부모님이 우리를 기다려줄 시간의 유통기한은 생각보다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다섯째, 성공이란 신기루 보다 위대한 것. 우리는 왜 그토록 열심히 살까요? 더 좋은 아파트, 더 높은 연봉, 더 완벽한 포트폴리오를 짜기 위해서? 이 또한 물론 중요합니다. 자본주의 슬롯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한 현실적인 수단이니까요. 하지만 수단이 목적을 압도하는 순간, 우리는 불행해집니다.
유명한 자산가나 성공한 사업가들의 인터뷰를 유심히 보면 기묘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수백억의 자산을 가졌음에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삼겹살 한 근 사 들고 가서 온 가족이 신문지 깔고 구워 먹던 작은 전셋집 시절이었다”라고 회상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성공의 짜릿함은 순간이지만, 따뜻한 식탁 위에서 나누었던 웃음소리는 평생을 지탱하는 에너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말에 비싼 외식을 하러 가서도 각자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다면, 그건 함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건 값비싼 음식 따위가 아니라, 눈을 맞추고 “오늘 하루 어땠어?”라고 묻는 서로에 대한 다정한 관심일 겁니다.
화면 속의 주식 창이나 타인의 화려한 일상에서 시선을 조금 돌려보세요. 그리고 내 곁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는 가족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시길 바랍니다.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모를 아이의 통통한 볼, 나와 함께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느라 지친 배우자의 눈가, 그리고 나를 향한 깊은 사랑을 간직한 부모님의 거친 손까지.
우리가 그토록 좇는 세상의 성공은 다시 도전할 기회를 언제든 제공할 겁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말이죠. 하지만 가족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대화와 웃음은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단 찰나의 순간입니다.
오늘은 핸드폰을 엎어두고, 사랑하는 이의 눈을 보며 조금 더 오래 이야기를 나누는 온전한 저녁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결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