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10 부록] 먹거리로 연결하는 지역의 안전망
오늘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먹을 수 있는 한 끼다. 그러나 먹거리 지원을 받으려면 자신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지원 자격을 확인받고, 결정이 내려지기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 도움을 요청하는 일 자체가 부담스러운 사람에게는 편하게 찾아가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장소가 먼저 필요할 수도 있다.
이슈브리프 10 본편에서는 청년의 식탁과 농민의 삶을 함께 지키는 지역 먹거리 정바카라을 다뤘다. 이 부록에서는 필요한 사람이 실제로 먹거리를 구할 수 있는 공간과 그 운영 방식을 살펴본다. 기존에 이미 운영되고 있는 무료 라면카페와 대학 안의 쌀독, 저가 매점과 동네 공유냉장고 등의 사례를 통해 어디에서 어떤 절차로 먹거리를 구할 수 있는지, 필요한 날 다시 찾아갈 수 있는지를 중점으로 살펴보려 한다.
구직과 불안정한 노동으로 끼니를 거르는 청년과 이동이 어려워 식재료를 구하지 못하는 농촌 어르신의 사정은 다르다. 그러나 가까운 곳에 부담 없이 찾아갈 먹거리 공간이 없을 때 어려움이 커진다는 점은 맞닿아 있다. 학교에 다니는 청년에게는 학내의 지원이, 학교 밖 청년과 지역 주민에게는 생활권 안의 지원이 필요하다. 나이와 소속, 이동과 조리 여건이 달라도 필요한 먹거리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이 사례들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해남종합슬롯복지관의 ‘해남이 친구라면’은 2026년 9월 16일 문을 열었다. 지역주민 누구나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방문해 무료로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다. 이용일지를 작성하고, 라면을 골라 직접 조리해 먹은 뒤 자리를 정리하면 된다. 별도의 복지 상담을 먼저 받지 않아도 식사할 수 있다.
공간 조성에는 고향사랑기부금 1,300만 원이 쓰였다. 복지관이 운영과 주민 소통, 복지서비스 연계를 맡고, 지역슬롯에서는 라면과 김치 등을 후원한다. 이용자가 직접 조리하는 무인 방식에도 식품을 채우고 공간을 관리하며, 필요한 도움을 연결하는 운영 주체의 역할은 중요하다.
복지관을 찾아가는 이유가 처음부터 상담일 필요는 없다. 식사하러 들르는 일이 반복되면서 공간과 사람이 익숙해지고, 필요한 도움을 물어볼 관계가 생길 수도 있다. 한 끼를 먹으러 온 방문이 다른 지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이러한 방문이 실제로 관계 형성과 고립 완화로 이어지는지는 운영 과정에서 꾸준히 살펴야 한다.
‘서울마음편의점’은 먹거리와 상담·돌봄의 연결을 운영에 반영한 사례다. 서울시가 추진하고 복지관과 1인가구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이곳에서는 간단한 먹거리와 소통 공간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라면 한 끼를 먹거나 쉬어가는 방문을 계기로 외로움 자가진단과 상담, 맞춤형 서비스 연계를 제공한다. 고립을 경험한 당사자와 회복 경험을 나누는 활동도 마련돼 있다.
공간 이용과 특화 프로그램 참여에는 서로 다른 절차가 적용될 수 있다. 서울시는 특화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외로움 자가진단을 거쳐 대상군으로 선정돼야 한다고 안내한다. 따라서 먹고 쉬기 위해 방문할 때 필요한 절차와 추가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의 절차를 구분해 알려야 한다. 이용 조건을 미리 알 수 있어야 처음 방문하는 사람도 부담을 덜 수 있다.
수업과 아르바이트 사이에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대학생에게는 학교 안의 먹거리 공간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정해진 식사시간에 식당을 이용하는 것 외에, 필요한 식품을 골라 가져갈 수 있는 선택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대구대학교는 2011년 5월 경산캠퍼스 성산홀 학생행복센터에 ‘행복쌀독’을 설치했다. 교수와 직원, 학생이 쌀을 모아 채우고, 학생 누구나 필요한 만큼 가져가거나 쌀을 보탤 수 있도록 했다. 당시에는 연중 운영할 계획이라고 소개됐다. 현재까지 운영이 이어지는지는 확인이 필요하지만, 학내에 필요할 때 다시 찾아갈 수 있는 나눔 공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살펴볼 만한 선례다.
아주대학교의 ‘천원매점’은 학생들이 여러 품목 가운데 필요한 것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이다. 2026년 9월 기숙사식당 건물에 문을 열었다. 학부생과 일반대학원생은 학생증을 확인받은 뒤 냉동식품·라면·생활용품 등 40여 개 품목 중 서로 다른 4개를 골라 1,000원에 살 수 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운영하며, 안내된 사업기간은 2026년 12월까지다.
물품은 NH농협은행과 하나은행의 기부금으로 마련한다. 대학은 공간과 전기·냉방 설비, 운영 인력의 인건비를 지원한다. 은행이 물품 구입비를, 대학이 공간과 운영 비용을 나누어 맡으면서 학생의 구매 부담을 낮추는 구조다. 여기서 농협의 참여는 NH농협은행의 기부금 지원이다. 지역 농협이 농산물을 직접 공급하는 방식과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다만 기부금으로 물품을 마련하는 방식은 지속적인 운영까지는 보장하지 못한다. 학생에게는 오늘 저렴하게 먹거리를 구하는 것만큼 필요한 날 다시 찾아갈 수 있다는 믿음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대학과 지방자치단체가 기본적인 식품 구입비와 운영비를 분담하고, 기업 후원은 품목과 지원 규모를 넓히는 데 활용할 필요가 있다. 사업기간이 끝나기 전에 다음 해의 예산과 운영계획을 마련해 이용자에게 알리는 절차도 갖춰야 한다.
춘천에서는 시와 대학이 이러한 운영 기반을 마련하고, 먹거리통합지원센터와 지역 농협, 대학 생협, 청년단체가 공급과 운영에 필요한 역할을 나누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지역 농산물을 적정한 가격에 정기적으로 구매하고, 학생과 청년의 조리 여건에 맞는 식재료와 간편식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공간을 열고 식품을 채우며 위생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인건비도 사업비에 포함해야 한다. 후원금이 줄거나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정해진 시간에 문을 열고 기본적인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어야 일상적으로 믿고 찾는 공간이 된다.
무료 쌀 나눔과 소액 구매는 이용 방식이 다르지만, 가져간 먹거리를 실제 한 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은 같다. 쌀을 조리할 시설이 있는지, 냉동식품을 보관할 곳이 있는지에 따라 도움이 되는 품목도 달라진다. 고정된 공간이 있어도 운영시간이 수업이나 아르바이트 시간과 겹치면 이용하기 어렵다. 대학 생협과 학생회가 협력한다면 학생들이 선호하는 품목뿐 아니라 이용하지 못하는 이유와 방학 중 수요까지 살펴볼 수 있다. 공간을 마련하는 데서 나아가 학생의 생활시간과 주거 여건에 맞게 운영하는 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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