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논쟁 수업으로 시작하는 미래를 위한 교육

[민주주의와 민주시민교육] 토론은 꼭 이겨야 하나요?

by김하종

학교 축제 예산을 어디에 쓸지 토론하는 수업을 떠올려봅시다. 한쪽은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큰 공연을 열자고 하고, 다른 쪽은 학생들이 직접 운영하는 체험 부스에 예산을 더 쓰자고 합니다. 학생들은 상대의 논리에서 허점을 찾고, 자신의 주장을 단단히 세우는 데 몰두합니다. 정해진 시간이 끝나면 판정이 내려지고, 승자와 패자가 나뉩니다. 다음번에는 더 설득력 있는 논리로 이겨보자고 다짐하는 학생들을 보며, 문득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어집니다.


“토론이 끝났을 때, 반드시 누군가는 져야만 할까요?”


찬반으로 나누어 논거를 준비하는 방식에는 분명한 장점이 있습니다. 내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고, 예상되는 반론을 꼼꼼히 검토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승패에만 매몰되면 상대의 말에서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문제를 발견하기 어려워집니다. 어떻게든 반박해야 할 대목부터 찾게 되기 때문입니다.


앞선 글에서는 내 삶의 문제를 말하고 공동체의 결정에 참여하는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제는 그 자리에 모인 서로 다른 생각들을 어떻게 다룰지 생각해보려 합니다. 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리에는 나와 다른 의견도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토론교육은 그 차이를 마주한 뒤에도 기꺼이 함께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찬성과 반대 사이의 넓은 지대

앞서 떠올린 축제 토론에서 학생들이 공연과 체험 부스 가운데 하나만 고르도록 요구받는다면, 정작 중요한 질문들은 시야에서 사라질 수 있습니다. 큰 공연을 열려면 실제로 예산이 얼마나 필요할까요? 체험 부스를 준비하는 시간과 수고는 누가 감당해야 할까요? 두 가지를 함께 운영할 방법은 없을까요? 비용을 따로 내야 하는 프로그램이 생긴다면 경제적 이유로 참여하지 못하는 학생은 없을까요?


이런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논쟁의 구도도 달라집니다. 공연을 원하는 학생이 체험 활동을 싫어하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체험 부스를 늘리자는 학생 역시 공연의 즐거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같은 축제를 두고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떤 경험을 기대하는지가 다른 것입니다.


여기서 자료로 확인할 사실과 논의해야 할 가치의 우선순위를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연에 필요한 비용은 견적과 운영 조건을 확인해야 할 문제입니다. 함께 즐기는 경험과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어떻게 배분할지는 서로의 필요와 우선순위를 살펴야 할 문제입니다.


물론 둘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상보다 비용이 커지면 선택을 다시 검토해야 하고, 누구의 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추가로 확인해야 할 정보도 달라집니다. 다만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일과 가치의 차이를 조율하는 일에 각각 어떤 질문이 필요한지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확인 가능한 사실을 취향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가치관의 차이를 무지와 고집으로 몰아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논쟁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섣불리 찬반의 입장을 정하기 전에 질문을 충분히 펼쳐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애초에 주어진 선택지가 적절한지부터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설득당했다”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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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을 하다가 상대의 설명에 마음이 움직였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팀의 승리를 위해 끝까지 처음의 입장을 고수해야 할까요? 아니면 자신이 놓친 점을 인정하고 주장을 수정할 수 있을까요?


입장을 바꾸었다는 이유만으로 토론에서 졌다고 평가하는 교실이라면, 학생은 좋은 근거를 발견하고도 받아들이기를 망설일 것입니다. 처음의 주장을 방어하는 데 몰두할수록 자신의 판단을 돌아볼 기회는 줄어들 수 있습니다.


교실은 “그 점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라는 말을 편안하게 꺼낼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전체 방향에는 찬성하되 세부 조건을 붙일 수도 있고, 일부에는 동의하되 특정 대목에는 반대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판단을 내리기에 자료가 부족하다면 잠시 결론을 미룰 수도 있어야 합니다.


물론 목소리가 큰 사람에게 눌리거나 다수의 눈치를 보며 따라가는 것과, 근거를 검토한 뒤 판단을 고치는 것은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왜 입장을 바꾸었는지, 혹은 왜 입장을 유지했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가입니다.

그러니 토론이 끝난 뒤에는 처음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을 나란히 적어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변화가 있었다면 어떤 이야기나 근거가 영향을 주었는지, 변화가 없다면 반론을 듣고도 입장을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교사가 살피고 평가해야 할 배움도 이 과정에 있습니다. 상대의 주장을 정확하게 이해했는지, 자신의 근거를 점검했는지, 아직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필요한 질문을 남겼는지가 평가에 담겨야 합니다.


말할 기회는 저절로 평등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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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의 장을 열어두었다고 해서 모든 학생이 동등한 조건에서 발언하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을 바로 말로 옮기는 데 능숙한 학생이 있는 반면, 글로 정리한 뒤에야 입을 떼는 학생도 있습니다. 친구들의 비웃음이나 부정적인 반응이 두려워 입을 다무는 학생도 있을 것입니다. 말하는 속도와 기질, 교실 안에서의 관계는 토론에 참여하는 방식에 영향을 줍니다.


이때 손을 드는 학생에게만 계속 마이크를 넘기면, 교실에는 이미 말하기 편한 사람들의 목소리만 더 크게 들리게 됩니다. 교사는 토론 전에 혼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거나, 작은 모둠에서 먼저 의견을 나누도록 수업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익명으로 질문을 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자기 경험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학생에게는 말하지 않을 선택을 보장하고, 글이나 질문으로 참여할 길을 열어두어야 합니다.


교사는 누가 얼마나 발언했는지뿐 아니라 어떤 의견이 아직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표현이 매끄럽지 않더라도 그 안에 담긴 경험과 이유를 함께 짚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이 실린 말이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적이라는 이유로 주장을 손쉽게 기각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이 그렇게 느끼게 했는지 듣고, 그 경험에서 공동체가 함께 검토할 질문을 찾아야 합니다. 이때에도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경험까지 공개하도록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의 말을 존중한다는 약속은 말하기 두려운 사람도 자신의 방식으로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기계적 중립을 넘어서는 교사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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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이 갈릴 때마다 교사가 정답을 내려준다면, 학생은 스스로 고민하기보다 교사의 의중을 탐색하는 데 몰두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혐오 발언이나 허위 사실을 방치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일 수도 없습니다. 교사는 어디까지 개입하고, 어디에서 학생의 판단을 기다려야 할까요?


참고할 만한 것이 독일 정치교육의 중요한 원칙인 ‘보이텔스바흐 합의’입니다. 1976년 서독의 보이텔스바흐에서는 정치교육의 방향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전문가들이 모였습니다. 나치 시대의 주입식 정치교육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은 공유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를 둘러싼 견해차는 컸습니다. 이 회의의 논의를 한스게오르크 벨링이 세 가지 원칙으로 정리한 것이 보이텔스바흐 합의입니다. 회의장에서 공식적으로 의결한 협약문은 아니었으나, 이후 민주적 정치교육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하나로 통일한 합의는 아니었습니다.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교육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 기준은 오늘날 우리 교실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 학생이 스스로 판단할 수 없도록 압도하지 않아야 합니다.

흔히 ‘강압 금지’ 또는 ‘주입 금지’라고 부르는 원칙입니다. 어떤 수단으로든 학생을 특정 견해로 몰아가 독립적인 판단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축제 토론에 적용해봅시다. 교사가 체험 부스를 지지하는 의견에만 칭찬을 보낸다면, 학생들은 자료를 검토하기에 앞서 어떤 답을 해야 인정받을지 계산하게 될 것입니다. 교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결론에 학생들을 도달시키는 것을 수업의 성공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이 합의가 교사에게 자신의 견해를 무조건 숨기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교사의 권위가 학생의 판단을 대신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학생은 교사와 다른 의견을 내더라도 존중받고, 그 차이 때문에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적인 사안은 교실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논쟁성의 원칙’입니다. 실제로 견해가 갈리는 문제를 하나의 정답으로 제시하거나, 중요한 입장과 대안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학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관점을 드러내는 일도 교사의 역할에 포함됩니다.


축제 토론에서도 공연과 체험 부스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교육적인지 교사가 미리 판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학생들이 각각의 장점과 부담을 살피고, 두 방식을 결합할 가능성까지 검토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준비하는 학생의 수고, 참여하기 어려운 학생의 사정처럼 논의에서 빠진 경험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물론 모든 주장을 같은 무게로 다룰 수는 없습니다. 공연 비용을 잘못 제시했다면 견적서를 확인해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 비용을 감수할 만큼 공연이 중요한지는 다시 논의할 수 있습니다. 교사는 사실관계의 오류를 바로잡으면서도 판단의 차이를 충분히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학생이 자신의 처지를 분석하고 현실에 영향을 미칠 방법을 찾도록 도와야 합니다.

세 번째 원칙은 학생이 정치적 상황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분석하고, 자신의 관심과 필요에 따라 그 상황에 영향을 미칠 방법을 찾도록 요구합니다. 판단하는 능력과 행동하는 능력을 함께 기르자는 뜻입니다.


축제 예산의 배분이 내 학교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피고, 결정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아보며, 필요한 변화를 제안할 경로를 찾아보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내 요구가 다른 학생이나 학교 노동자의 권리와 어떻게 만나는지도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내 문제를 내 손으로 해결한다’는 경험이 바로 이 지점과 이어집니다. 토론에서 의견을 말한 학생이 실제 결정에 참여할 수 있을 때, 배움은 자신의 삶과 연결됩니다.


이 세 원칙을 따른다고 해서 교사가 모든 주장 앞에서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독일 연방정치교육원의 해설도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침해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교사가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우리의 축제 사례에 적용해봅시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학생이 축제를 함께 즐기려면 어떤 시설과 지원이 필요한지는 충분히 토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용을 이유로 그 학생에게 참여할 자격이 있는지를 찬반으로 나누어 표결에 부쳐서는 안 됩니다. 함께 참여할 권리를 전제로, 그것을 보장할 방법을 논의해야 합니다.


차별적인 말이 나왔다면 교사는 개입해야 합니다. 그 말이 누구를 배제하며 어떤 권리를 침해하는지 짚어주어야 합니다. 동시에 발언한 학생을 낙인찍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고 대화에 다시 참여할 기회를 마련해야 합니다.


학생이 스스로 판단할 자유, 다른 의견을 말해도 모욕이나 배제를 두려워하지 않을 조건, 자신의 판단을 실제 참여로 이어갈 기회. 교사는 이 세 가지를 함께 지켜야 합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바로 그 바카라임을 구체적으로 묻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합의하지 못한 토론 뒤에도 남는 것들

충분히 대화하고 논쟁했는데도 끝내 의견이 모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관계를 확인해도 서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르고, 이해관계가 쉽게 조정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때 결론을 내야 한다며 무리하게 만장일치를 끌어내거나, 충분한 검토 없이 다수결로 마무리하면 누군가는 자신의 우려를 삼킨 채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토론의 끝에서는 어디까지 동의했고 어디에서 의견이 갈리는지를 정확히 남길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더 조사해야 하는지, 어떤 조건이 바뀌면 논의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도 함께 적어두는 것입니다. 실제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미리 합의한 공정한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도 소수의 우려를 기록하고 기본적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결정 이후에는 실행 결과를 평가하고, 문제가 드러났을 때 다시 논의할 시점과 절차를 마련해야 합니다.


합의에 이르지 못했더라도 상대가 왜 그런 입장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했다면, 그 토론에는 배움이 남습니다. 함께 선택할 수 있는 범위와 앞으로 계속 논의하고 조율해야 할 쟁점을 더 정확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축제 토론으로 돌아가 봅시다. 종이 울리고 수업이 끝난 뒤, 교실을 나서는 한 학생이 친구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네 얘기를 듣고 내 생각은 조금 달라졌어. 그래도 이 부분은 앞으로 더 이야기해보고 싶어.”


앞으로 마주할 복잡한 삶의 문제에 대한 답을 교실에서 미리 다 외워갈 수는 없습니다. 익숙한 답이 통하지 않는 순간에는 새로운 근거를 찾고,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듣고, 자신의 판단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함께 살아갈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논쟁 수업에서 학생들은 그 힘을 기릅니다. 무엇을 함께 결정할지 묻고, 서로의 말을 들으며, 결정에 따르는 바카라임을 나누는 동안 교실에서는 이미 민주주의가 실천됩니다. 아직 답을 정하지 못했어도 질문을 이어갈 수 있고, 생각을 고쳐도 비웃음당하지 않는 경험이 그 실천을 지탱할 것입니다.


그런 교실에서 자란 학생이라면 다음 토론과 논쟁의 자리에도 기꺼이 나설 것입니다. 혼자서는 미처 닿지 못했던 생각을 만나고, 끝내 남아 있는 차이마저도 품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서 말입니다.


참고자료

- 독일 연방정치교육원(bpb), 「Beutelsbacher Konsens」.

- Markus Gloe·Tonio Oeftering, 「Der Beutelsbacher Konsens」, 독일 연방정치교육원(bpb), 2022.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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