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민주시민교육] 나의 불편함이 우리의 의제가 되기까지
학교의 어떤 규칙 때문에 불편을 겪는 학생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아마도 왜 이런 규칙이 필요한지 묻는 학생에게 짧은 대답이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원래 그런 거야.”
누가 만들었는지, 언제부터 있었는지, 지금도 필요한 규칙인지 설명해주는 어른을 쉽게 찾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학교라는 공간이 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바꿀 수 있는지 물으면 “일단 지켜”라는 핀잔이 돌아옵니다. 이 상황에서 학생에게 허락된 선택지는 두 가지뿐입니다. 군말 없이 규칙에 순응하거나, 어겼을 때의 불이익을 홀로 감수하거나.
이 학생이 슬롯 시간에 배운 민주주의는 어떤 감각으로 남을까요. 교과서에서 또박또박 읽어 내려간 ‘주권’과 ‘참여’라는 단어는 자신의 현실과 얼마나 맞닿아 있다고 느낄까요. 민주주의를 배운다는 것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경험과 이어져야 합니다. 내가 겪는 문제를 말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함께 해결바카라을 찾아 실제로 무언가를 바꾸어보는 경험 말입니다.
“내 문제는 내 손으로 직접 해결합시다.”
민주시민교육을 이야기할 때면 종종 이런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설명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개인의 고군분투만으로 돌파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는 여럿이 힘을 모아야 풀리고, 어떤 문제는 제도를 바꾸어야 하며, 어떤 문제는 국가와 공공기관이 바카라임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손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그 해결의 과정에 ‘나의 몫’을 마련하겠다는 뜻입니다. 문제를 겪는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고, 해결의 방향을 정하는 데 참여하며, 그 결정이 제대로 실행되는지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선언입니다.
앞서 떠올린 학생에게 돌아가 봅시다. 학교의 규칙을 바꾸는 일은 무엇이 불편한지 함께 짚어보는 데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같은 규칙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불편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학교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장벽일 수 있습니다.
규칙이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찬찬히 살펴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문제가 드러납니다. 규칙을 지키기 어려운 이유가 개인의 의지나 태도에만 있는지도 다시 묻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자기 경험을 설명할 자신만의 언어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싫어요”라는 말밖에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말이 서툴고 이유가 충분히 정리되지 않았더라도, 그 말이 나온 경험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교육은 그 경험을 함께 살피고, 무엇이 불편하며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구체화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학생의 불편함을 버릇없음이나 투정으로 서둘러 재단하면, 문제를 함께 살펴볼 기회도 사라집니다.
물론 모든 요구가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구의 근거를 살피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도 검토해야 합니다. 자신의 요구를 설명하고, 서로의 근거를 검토하며, 공동체의 결정에 참여하는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의 실천입니다.
문제를 소리 내어 말하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의 경험과 마주하게 됩니다.
나만 불편한 줄 알았는데 같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곁에 있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내가 없애고 싶은 규칙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보호 장치일 수도 있습니다. 같은 규칙 아래 놓여 있어도 각자의 처지에 따라 경험은 다릅니다.
그러므로 ‘함께 해결한다’는 것은 찬성하는 사람의 숫자를 모으는 일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서로의 경험을 듣고, 처음의 요구를 다시 검토하며, 각자의 권리를 함께 지킬 수 있는 해결바카라을 찾는 과정까지 아우릅니다. 가령 학생들이 특정 공간의 이용 시간을 늘려달라고 요구한다고 해봅시다. 이때는 이용하고 싶은 학생들의 필요뿐 아니라, 그 공간을 관리하는 노동자의 근무시간과 업무 강도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학생들의 공간 이용권과 노동자의 노동권을 함께 보장하려면 어떤 인력과 예산이 필요한지, 학교는 그 조건을 마련할 바카라임을 다하고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두 집단이 서로 양보하는 것만으로 풀 수 없는 문제라면, 운영을 바카라임지는 학교가 해결에 나서야 합니다.
그러면 질문도 폭넓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왜 못 쓰게 하나요?”에서 “필요한 인력과 운영 조건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요?”로 논의가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다른 사람의 권리도 살피는 일. 서로의 필요가 충돌할 때 그 충돌을 드러내고, 함께 권리를 보장받을 조건을 찾는 일. 민주시민교육은 이런 구체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학생들이 의견을 모아 학교에 전달했다고 해봅시다. 설문조사를 했고, 토론회도 열었으며, 제안서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아무런 답이 없습니다. 누가 제안을 검토하는지, 언제 결정하는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된다면 학생들은 ‘참여’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요? 의견을 말할 기회만큼 중요한 것은 그 의견이 실제 결정에 가닿는 과정입니다.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결정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지, 당사자인 학생은 어느 단계에 참여할 수 있는지 분명해야 합니다.
예산이 필요한 일이라면 예산을 논의하는 자리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규칙을 바꾸어야 한다면 그 절차를 안내받고 개정 논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구를 당장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결정권자가 그 이유를 설명하고, 다른 방법을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민주시민교육에서는 이런 과정을 충분히 다루어야 합니다. 제안서를 쓰는 기술과 함께 권한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힘이, 회의를 진행하는 능력과 함께 결정권자에게 바카라임을 묻는 힘이 필요합니다. 민주주의에는 말할 권리와 더불어 설명을 요구할 권리도 있습니다. 그 설명이 충분한지 따져 묻고,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며, 재검토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경험한다고 해서 처음부터 거대한 문제를 해결할 필요는 없습니다. 학급의 생활 규칙 하나를 함께 정할 수도 있고, 학생들이 머무는 공간의 운영 방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문제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참여가 실제 결정과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가입니다.
이미 어른들이 정해놓은 결론에 학생들을 들러리 세워 박수만 치게 하면서, 그것을 자치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와 판단에 필요한 정보, 충분히 논의할 시간, 결정한 것을 실행에 옮길 자원이 있어야 합니다. 시도가 잘되지 않았을 때 다시 살펴보고 고칠 기회도 필요합니다.
민주주의는 투표함에 용지를 넣는 한 번의 행위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결정 이후 일상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예상하지 못한 불편은 없는지, 처음 논의에서 빠진 사람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학생은 자신의 선택에 바카라임지는 법을 배웁니다. 자신의 생각이 언제나 옳을 수는 없다는 사실도, 잘못된 결정을 곁의 사람들과 함께 바로잡을 수 있다는 사실도 경험합니다.
이런 경험을 쌓은 사람에게 공동체의 규칙은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벽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필요와 권리를 살피며, 함께 검토하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 바꿀 수 있는 약속이 될 것입니다. 내가 겪는 문제를 말할 수 있는 힘.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들으며 문제를 새롭게 이해하는 힘. 함께 요구하고, 결정하고, 그 결과를 바카라임지는 힘.
민주시민교육이 길러야 할 힘은 여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누군가 “이 규칙은 왜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바쁜 걸음을 멈추고 그 질문을 함께 들여다보는 학교이기를 바랍니다. 규칙이 필요하다면 그 이유를 설명하고, 부당하거나 현실에 맞지 않는다면 고치는 과정에 당사자가 참여할 수 있는 학교이기를 바랍니다.
질문을 꺼낸 학생들이 다음에도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곳. 그 모습을 지켜본 곁의 학생도 자신의 이야기를 보탤 수 있는 곳.
‘내 문제를 내 손으로 해결해보는 경험’은 그렇게 ‘다른 사람의 손을 맞잡는 경험’으로 넓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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