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03] 이동노동자의 쉼과 안전을 춘천의 일상으로
폭염 속에서 시원한 물은 꼭 필요한데, 나눠드린 만큼 페트병도 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분초를 다투며 이동하는 노동자에게 텀블러를 챙겨오라고 할 수도 없다. 잠깐 들러 바로 받아 마시고, 남은 물도 들고 가야 하니 지금으로서는 뚜껑이 있는 개별 생수가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다.
완벽한 답을 찾기는 어렵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본다. 무라벨 생수를 준비하고, 빨대 같은 추가 일회용품은 사용하지 않는다. 예상 인원을 잘 계산해 필요 이상으로 준비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질문이 생긴다.
생수 한 병을 건네는 일은 필요하다.
그런데 그 다음은 무엇이어야 할까.
오토바이를 타고 도착한 노동자는 물을 받아들고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몇 모금을 마신 뒤 다시 헬멧을 쓰고 출발한다. 조금 쉬었다 가도 된다고 말해도 다음 호출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몸짓이다.
우리가 건넨 것은 물 한 병이지만, 그 짧은 만남은 오히려 도시의 빈자리를 보여준다. 이 사람들은 평소 어디에서 물을 마시고, 어디에서 화장실을 가고, 어디에서 쉬고 있을까.
배달라이더와 택배기사, 대리운전기사처럼 이동하며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형태의 일터가 없다. 식당에서 음식을 받아 아파트로 이동하고 다시 상가로 향한다. 택배기사는 하루 종일 골목과 공동주택을 오간다. 대리운전기사는 호출이 뜨는 곳을 따라 밤의 도시를 움직인다.
이들의 일터는 사무실이나 공장이 아니라 도시 전체에 가깝다.
문제는 일터는 도시 전체인데 휴게실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들어갈 수 있는 건물을 찾아야 한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부족하면 충전할 곳을 찾아야 한다. 잠깐 앉으려 해도 눈치를 보지 않고 머물 자리가 마땅치 않다. 한여름에는 그늘과 냉방 공간을 찾아야 하고 겨울에는 얼어붙은 손과 몸을 녹일 곳이 필요하다. 화장실 갈 여건이 안 되기 때문에 고객이 준 음료수가 고마우면서도 반갑지만은 않다던 어느 코웨이 코닥기사의 말은 이동노동자들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누군가에게 카페 한 곳 들어가는 일은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계속 이동해야 수입이 생기는 노동자에게 매번 음료를 사서 자리를 확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폭염은 원래 있던 문제를 더 선명하게 드러낼 뿐이다.
물과 화장실, 그늘과 냉방,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자리.
이것은 편의를 더해주는 서비스라기보다 사람이 거리에서 안전하게 일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에 가깝다.
춘천시도 올해 여름 이동노동자를 위한 무더위쉼터를 마련했다. 6월 30일부터 전통시장 고객쉼터와 풍물시장 동백쉼터 두 곳을 이동노동자 무더위쉼터로 운영하고 있다. 전통시장 고객쉼터는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풍물시장 동백쉼터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냉방시설과 냉장고, 휴게공간도 마련돼 있다.
공간이 생겼다는 것은 분명 이전보다 한 걸음 나아간 일이다. 그런데 문을 열어놓는 것만으로 쉼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7월 강원일보가 두 곳을 직접 찾아가 취재한 결과 하루 방문자는 3~4명 정도였고, 정작 배달라이더나 택배기사의 이용은 드물었다. 현장에서 만난 이동노동자들은 쉼터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이용하기 어려운 이유로 이동 동선과 맞지 않는 위치, 부족한 홍보, 오후 6시에 끝나는 운영시간을 꼽았다.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배달 호출이 몰리는 곳에서 기다리던 노동자가 쉬기 위해 다시 쉼터까지 이동하기는 어렵다. 저녁 배달이 한창일 때 문을 닫는 쉼터를 배달라이더가 이용하기도 어렵다. 본격적인 업무가 저녁부터 시작되는 대리운전기사에게는 더욱 그렇다.
지난해 속초시는 속초시근로자종합복지관 2층에 이동노동자 임시쉼터를 마련했다. 과연, 그 쉼터를 얼마나 이용했을까? 배달 콜 하나가 소득을 좌우하는 배달라이더에게 2층까지 굳이 올라가 쉴 여유가 있는가. 이 얼마나 행정 편의적인 조치란 말인가.
이렇듯 단순하게 이용자가 적다는 결과를 두고 이동노동자에게 쉼터가 필요하지 않다고 결론 내리면 안 된다.
질문을 오히려 반대로 돌려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쉼터를 만들긴 했지만, 정작 노동자가 쉬어야 하는 곳에 만들었을까.
여기서 춘천이 다른 도시보다 흥미로운 지점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이미 도시 곳곳에 물을 나누는 작은 공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춘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진행하고 있는 '춘천 물 인심 옹달샘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옹달샘은 이동노동자를 위해 시작된 사업은 아니다. 개인 텀블러를 가지고 옹달샘 스티커가 붙어 있는 가게나 기관을 방문하면 무료로 식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시민 캠페인이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나누던 지역의 물 인심을 되살리는 동시에 페트병에 든 생수 소비를 줄여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2023년 8월 처음 본격적으로 시작됐을 때 참여 업소는 14곳 정도였다. 한 달여 만에 30곳을 넘어섰고, 당시에는 연말까지 100곳으로 늘리는 것이 목표였다. 2025년 8월에는 참여처 번호가 이미 242번까지 올라갔고, 현재 춘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공개하고 있는 참여기관·업체 목록을 보면 약 270곳에 이른다.
카페와 음식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여러 종류의 상점과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이 숫자가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춘천에 이동노동자 전용쉼터를 270개 만들자는 것은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놓은 270여 개의 작은 물 거점 가운데 일부가 이동노동자에게도 조금 더 열린 공간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는 이미 꽤 촘촘한 씨앗을 갖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어쩌면 이미 존재하는 270개의 옹달샘을 다시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재의 옹달샘을 모두 이동노동자 쉼터로 바꿀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가게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을 내어주는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앉을 공간이 없는 곳이 있을 수 있다. 화장실 이용까지 가능한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늦은 밤까지 문을 여는 업소가 있는 반면 오후 일찍 영업을 마치는 곳도 있다.
지금까지 옹달샘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참여자가 할 수 있는 만큼 참여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 장점을 그대로 살려야 한다. 대신 270여 곳 가운데 희망하는 곳을 대상으로 이동노동자 친화 옹달샘을 만들어볼 수 있다. 무언가 거창한 시설을 갖추자는 의미가 아니다. 물을 받을 수 있는 곳인지,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지,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있는지, 10분 정도 앉아서 쉴 수 있는지, 몇 시까지 이용할 수 있는지를 표시할 수 있도록 한다.
가게마다 가능한 항목만 선택하면 된다. 기존 옹달샘 스티커에 작은 표시를 더하고 온라인 지도에서 해당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면 이동노동자는 굳이 하나의 쉼터를 찾아 도시를 가로지를 필요가 없다.
현재 위치에서 3분 거리에 있는 옹달샘에서 물을 받을 수도 있고, 다음 배달지 근처의 다른 옹달샘에서 휴대전화를 충전하며 10분 정도 앉아 있을 수도 있다.
쉼터를 찾아오라고 하는 정바카라에서, 쉼과 안전이 노동자의 동선을 따라가는 정바카라으로 바뀌는 것이다.
정바카라으로 시작한다면 처음부터 270곳 전체를 대상으로 할 이유도 없다. 옹달샘 참여처 가운데 이동노동자의 이동이 많은 지역에 있고, 저녁 시간까지 운영하며, 참여 의사가 있는 곳을 우선 찾아 30곳 정도의 이동노동자 친화 옹달샘을 시범 운영해볼 수 있다.
이 숫자는 목표라기보다 출발점일 뿐이다. 어디에 노동자들이 많이 머무는지부터 알아봐야 한다. 배달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 라이더들이 호출을 기다리는 장소, 택배차량이 잠시 정차하는 곳, 대리운전기사들이 늦은 밤 대기하는 곳을 당사자에게 직접 묻는 것이 먼저다.
행정이 지도 위에 점을 찍고 노동자에게 찾아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이미 지나고 기다리고 머무는 길 위에 점을 찍어야 한다. 시범사업을 해보면 필요한 것도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물은 많이 이용하지만 좌석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 곳이 있을 수 있고, 충전 수요가 많은 곳도 있을 것이다. 저녁보다 밤늦게 이용자가 많은 지역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270곳이라는 숫자만큼 필요한 곳에 필요한 기능을 얹을 수 있는 기반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
그렇다고 전용 이동노동자 쉼터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10분 동안 물을 마시고 휴대전화를 충전하는 공간과 한 시간쯤 제대로 몸을 식히고 쉬는 공간은 역할이 다르다. 그래서 춘천의 이동노동자 쉼 정바카라은 분산형 옹달샘과 거점형 쉼터를 함께 두는 방식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동네 곳곳에는 짧은 휴식을 위한 이동노동자 친화 옹달샘을 두고, 주요 노동 동선에는 보다 충분한 휴식이 가능한 거점쉼터를 두는 것이다. 현재 운영 중인 전통시장 고객쉼터와 풍물시장 동백쉼터도 없앨 이유가 없다. 대신 지금의 이용률이 낮은 이유를 살펴 운영시간과 기능을 바꿔야 한다.
오후 6시 이후 배달과 대리운전 노동이 계속된다면 적어도 일부 쉼터는 저녁과 야간에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위치가 이동 동선과 맞지 않는다면 실제 노동자들의 대기 장소를 조사해 새로운 거점을 검토해야 한다. 상주 인력이 있는 큰 건물을 새로 마련하는 방법만 있는 것도 아니다.
경기도는 거점형 쉼터와 함께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간이형 이동노동자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무인경비시스템 등을 활용하고 역 주변이나 공영주차장처럼 이동노동자가 접근하기 쉬운 곳에 배치하는 방식이다.
서울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편의점 900여 곳을 배달라이더와 대리운전기사 등 이동노동자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동행쉼터로 활용한 경험이 있다. 춘천이 서울이나 경기도를 그대로 따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춘천에는 다른 도시에는 없는 강점이 있다. 270여 개의 옹달샘이라는 이미 시민들의 자발적인 힘으로 만들어진 지역 네트워크다.
그렇다면 춘천의 모델은 비교적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다. 가장 넓은 바깥쪽에는 지금의 옹달샘이 있다. 시민 누구나 개인 물병을 가져와 물을 받을 수 있는 약 270개의 물 인심 네트워크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이웃과 물을 나눈다는 옹달샘 본래의 목적은 그대로 유지한다.
그 안에 이동노동자 친화 옹달샘을 둔다. 30곳 정도에서 시작해 물과 화장실, 충전, 잠깐 앉을 자리 등을 제공하고 이용 결과에 따라 점차 늘려간다. 폭염기에는 한시적으로 일부 거점에 개별 생수를 지원할 수도 있다. 옹달샘은 애초에 개인 물병을 가져와 물을 받아가는 방식으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폭염 속 이동노동자에게 텀블러를 반드시 챙겨오라고 요구하기는 어렵다.
두 가치를 굳이 서로 충돌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평소에는 기존 방식대로 개인 물병에 식수를 보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폭염특보가 내려지는 날이나 장시간 야외노동을 하는 이동노동자에게는 개별 생수를 제공할 수 있는 옹달샘을 일부 지정하면 된다.
이 경우 춘천시가 생수를 일괄 구매해 참여업소에 공급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무라벨 생수를 사용하고 수요를 살펴 적정량만 공급하며 불필요한 빨대나 일회용품은 더하지 않는 원칙을 세울 수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것은 탄소와 플라스틱을 줄이는 일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미 더워진 도시에서 가장 먼저 위험해 처하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일도 지자체가 행해야 할 기후위기 대응이다. 환경과 노동자의 안전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에서 더 나은 방법을 계속 찾아가는 것. 옹달샘이 그 실험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안쪽에는 제대로 쉴 수 있는 거점쉼터를 둔다. 현재 운영 중인 두 곳의 시간과 운영방식을 개선하고, 이동노동자가 실제로 많이 모이는 장소를 조사해 24시간 이용 가능한 간이쉼터를 한두 곳 시범적으로 설치해볼 수 있다.
물 한 잔을 받을 수 있는 270개의 옹달샘.
10분 정도 숨을 돌릴 수 있는 수십 개의 작은 쉼터.
조금 더 오래 몸을 쉴 수 있는 몇 개의 거점쉼터.
큰 시설 하나가 도시 전체를 바카라임지는 대신 서로 다른 크기의 쉼의 공간들이 촘촘하게 연결되는 것이다. 춘천 정도 규모의 도시라면 오히려 이런 방식이 더 잘 맞을 수 있다.
쉼터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도는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지도나 어플 하나를 만들어놓는 것만으로 이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특히 이동노동자는 일을 하면서 계속 장소를 옮긴다. 다음 호출을 기다리는 몇 분 사이 별도의 홈페이지나 앱을 열어 쉼터 위치를 검색하는 것도 번거롭다. 아무리 좋은 공간을 만들어놓아도 찾아가는 과정이 복잡하면 일상적인 쉼터가 되기 어렵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노동자가 쉼터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길에서 쉼터를 발견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동노동자 친화 옹달샘에는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통일된 표시를 붙일 수 있다. 물을 받을 수 있는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지, 휴대전화 충전이 가능한지, 잠깐 앉아서 쉴 수 있는지를 몇 개의 간단한 표시로 보여주면 된다.
그렇게 해야 처음 방문하는 노동자도 가게 문 앞에서 눈치를 보며 물어보지 않을 수 있다. 여기서는 물을 마셔도 되는지, 여기서는 화장실을 이용해도 되는지, 여기서는 잠시 앉아도 되는지 등등 공간 자체만으로도 눈에 띄게 보이고,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참여 장소를 정할 때도 단순히 신청을 많이 받는 것보다 실제 노동자의 동선을 먼저 살펴야 한다. 음식점과 상가가 몰려 있어 배달라이더가 자주 대기하는 곳, 대리운전기사들이 기다리는 곳, 택배기사의 이동이 많은 생활권에서부터 참여처를 찾는 방식이다.
온라인 정보도 필요하지만 별도의 앱을 새로 만드는 것은 피하는 편이 좋다. 새로운 앱을 만드는 대신 이미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배달·대리운전 플랫폼이나 라이더 커뮤니티, 단체대화방 등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가능하다면 플랫폼 사업자와 협의해 노동자가 업무 중 사용하는 앱이나 공지 채널에서 가까운 쉼터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검토할 수 있다.
정바카라의 목표는 쉼터를 검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길 위에서 자연스럽게 쉼터를 만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한 가지 원칙은 분명히 해야 한다. 옹달샘의 확대를 참여업소의 희생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지금까지 옹달샘이 270여 곳까지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공간과 물을 기꺼이 내놓은 시민과 가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선의를 이동노동자 정바카라으로 연결한다면 그때부터는 공공의 바카라임도 커져야 한다.
춘천시는 참여처에 필요한 물품과 안내표지, 충전설비 등을 지원할 수 있다. 폭염기 생수나 냉방비 일부를 지원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지도 제작과 홍보, 이용실태 조사도 행정이 맡아야 한다. 노동단체와 노동조합은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이용 경험을 모으고 필요한 정바카라을 제안할 수 있다.
그리고 배달플랫폼이나 택배기업도 바카라임을 나눠야 한다. 배달과 배송으로 수익을 얻는 기업이 노동자의 휴식을 시민의 물 인심에만 맡겨서는 곤란하다. 쉼터 운영비와 폭염·한파 대응물품, 안전장비 지원 등에 일정한 역할을 하도록 협력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시민이 시작한 좋은 일을 행정과 기업이 무임승차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민의 실험을 공공의 제도로 키우는 방식이어야 한다.
8월~9월이 지나면 얼음생수 나눔 캠페인도 끝난다. 하지만 이동노동자의 노동은 끝나지 않는다. 폭염이 지나가면 장마가 오고, 조금 더 지나면 한파와 눈이 찾아온다. 여름에는 얼음물과 냉방이 필요하지만 겨울에는 따뜻한 물과 난방이 필요하다. 비에 젖은 날에는 잠시 옷을 말릴 곳이 필요하고 눈이 오는 날에는 얼어붙은 손을 녹일 장소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동노동자 정바카라을 여름철 폭염대바카라으로만 다뤄서는 안 된다. 옹달샘 역시 여름 한철 이동노동자에게 물을 나눠주는 사업으로 그칠 필요가 없다. 이동노동자 친화 옹달샘 가운데 일부를 사계절 운영하고, 계절에 따라 필요한 역할을 달리하면 된다. 여름에는 물과 냉방, 겨울에는 난방과 따뜻한 음료, 평상시에는 화장실과 충전, 짧은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거점쉼터에서는 노동상담이나 산재 안내, 안전교육과도 연결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처음에는 물 한 잔을 나누기 위해 시작한 옹달샘이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작은 노동복지의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생수 나눔을 하다 보면 물을 건네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노동자가 다시 떠날 채비를 하는 시간이 더 짧게 느껴질 때가 있다. 계속 움직이는 것이 이동노동자의 일처럼 보이지만 사람은 계속 움직이기만 하면서 일할 수 없다.
어디선가는 물을 마셔야 하고, 화장실을 반드시 가야 한다.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휴대전화를 충전해야 한다. 그리고 어디선가는 잠깐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서 쉴 수 있어야 한다. 그 시간을 노동자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도 도시가 해야 할 일이다.
춘천에는 이미 이동노동자를 위해 문을 연 두 개의 쉼터가 있다. 거리에서는 얼음생수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시 곳곳에는 낯선 사람에게도 물을 내어주겠다고 약속한 270여 개의 옹달샘이 있다.
생각해보면 기반은 이미 충분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흩어져 있는 마음과 공간을 연결하고, 그 선의가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공공의 바카라임을 보태는 일인지도 모른다.
생수 한 병에서 시작한 질문을 조금 더 멀리 가져가 보자. 물을 나누는 도시에서 잠시 멈춰도 괜찮은 도시로.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춘천에 머물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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