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머리, 아니 외국물 먹은 짐승을 거두는게 아니었다.
이 글은 어머니의 회사에서 사용할 고객관리 앱 하나를 만들어드리려다, 어쩌다 보니 국가 비슷 무리한 것을 건국하게 될지도 모르는 한 청년의 관찰 기록이다.
분명 시작은 단순했다. 요구사항은 명료했고 기술자원은 충분했으며, 의욕은 효도라는 명분아래 충만했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국가가 처음으로 수여한 공식 직함도 있었다. '쉬는 중 청년'이라는 딱지.
아니 누구보다 열심히 생존하려고 했는데 감히 날 그딴 식으로 불러? 그래 열심히 일해서 사퇴해 주마!라는 각오 아닌 각오를 다지며 구석에서 나만큼 열정적으로 쉬고 있었던 맥북을 끄집어내었다.
'도대체 얼마나 열정적으로 쉬고 있었던 거야? 몸통이 뜨끈뜨끈하고만!'
아이폰 앱을 만들고 테스트를 하려고 영입했다가 회사를 정리한 뒤에 자연스럽게 나를 따라 쉬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주인장도 쉬는 중 청년, 맥북도 쉬는 중 청년. 아니지 이 녀석은 25년 산 맥북이니까 쉬는 신생아인가? 아무튼 쉬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일종의 취업사기를 내가 벌인 꼴인가. 흠.
그런데 문제는 이 맥북의 먼 아버지뻘 되는 애플이 생각보다 끈질기고 악독한 놈이었다는 점이다. 니 새끼 내가 비싼 돈 들여 입양해서 세끼 밥 잘 먹이며 키우고 있고, 이제는 내 새끼 좀 써먹으려고 뭐 좀 만들어보겠다는데! 애플 이 양반새끼가 앱스토어에 올리려고 해도 돈, 테스트하려고 해도 돈, 애플 개발자라는 자격을 유지하려 해도 돈을 달라는 거다. 그놈의 돈 돈 돈.
문득, 나는 하나의 자격을 획득하는 것도 이토록 품위유지비가 든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지나치게 공손한 태도로 정중히 맥북을 시야에서 치워버렸다. 그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이렇게 찾아뵙게 되다니.
거참 허허, 송구스럽사옵니다.
살아간다는 건 이토록 품위가 필요한 일인 것이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나는 생각보다도 더 품위 없는 사람이지. 하!
조금은 데면데면한 맥북을 앞전에 모셔놓고 피아노를 치기 전에 손가락을 한번 쓱 풀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까이것, 클라이언트인 어머니가 평소에 불편해하던 것들을 열심히 주워 들어 먹었었기에 설계도는 이미 머릿속에 쓱쓱 그려져 있었다. 회원 권리, 출석 체크, 메모. 거래장부, 그리고 이것저것. 딱 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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