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스승님도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을 나도 역시 재밌게 봤다. 학교 현장에서 일어날 법한 사건이 아니고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만든 점이 흥미로웠고 에피소드마다 굵직한 사건들이 어렵지 않게 떠올랐다. 또 학교 폭력이나, 악성 민원, 입시 경쟁 등, 흔들리는 '교육의 권리' >> 교육받을 아이들의 권리와 가르치고 돌보는 선생님의 입장을 세밀하게 잘 그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현실에선, 그 앞에서 이렇게 말 한마디 못하고 병들어 가거나 아파했을 (유명을 달리했을) 아이들, 선생님들을 대신해서 속 시원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속도감이 속을 뻥 뚫리게 해 줬다고 해야 할까.
정말 누군가, 교권보호국이 실제로 있고 나화진 같은 감독관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좀 더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죽음으로까진 가지 않았을까, 이런 상상을 하기도 했다.
갈등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해결을 해야 하는 누군가 단 한 사람.
미성년자로 불리는 아이들 사이에 유일한 어른.
그 자리에 '선생님'이 있어야 하는데 오늘날 학교의 현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해지기도 한다. 이건 비단 선생님분들만의 탓이 결코 아니다. 오늘날 달라진 상황과 교육 현장의 변화도 분명 한몫했을 거라 생각한다.
나의 지난날을 떠올려도 좋은 선생님들도 많지만 역시 이상하고 괴팍한 선생님들도 비슷한 비중으로 많았던 걸 떠올리다가,
최근에 우리 둘째 아이 선생님이 떠올랐다.
선생님 의자에 가만히 앉으면
선생님 마음 모두를 알 것 같아요
잘 되거라 나무라시고 마음 아파하시던
언제나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선생님 마음
<선생님 마음> *작사· 김상헌 | *작곡·오세균
내가 어릴 적엔 선생님 마음,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으로 가득한 노래가 한참 유행했는데 이 노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이유는, 선생님 의자에 달려 나간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적에 쉬는 시간만 되면, 선생님 자리로 쪼르르 달려가서 연예인에게 말을 거는 기분으로 막 설레고 즐거워하면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내가 재잘재잘 말을 꺼내면 웃으면서 다정하게 반응을 해주시던 선생님들, 때론 간식을 주시거나, 남는 학용품이나 색종이 같은 걸 쥐어주시면서 선물을 받기도 했다.
어린아이들은 너무 민감하고 섬세하고 깨질 듯한데, 신기하게도 그때 그 정서만큼은 제대로 남아있다. 나도 역시 그렇다. 모든 사건이 정확히 기억나는 것도 아니면서, 어느 순간, 그때의 감정만은 그대로 남아있는 듯할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나를 귀찮아하고 싫어하는지, 이유 없이 그저 내 얼굴을 보고 벙긋벙긋 웃으며 나를 좋아하는지가 그때는 바로 보였던 것 같다. 오히려 점점 자라면서, 어른이 되니 누가 날 어떻게 신경 쓰고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지 않게 돼버리도 했다.
난독증으로 글자를 읽고 쓰기가 조금 더디고 느린 우리 둘째.
방학마다 따로 보충 수업을 받자고 선생님께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 사실 고마우면서도 죄송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안 그래도 짧은 여름방학인데 오전 시간을 쪼개 온전히 아이를 위해 써주신다는 게 왠지 미안해서 이야기를 건넸더니 방학이 짧아 매일 나와야 하기도 하고 아이랑도 더 친해질 수 있는 기회니 전혀 부담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편하게 말씀해 주셨다.
신기하게도 보충수업을 가는 아이는 우리 아이 혼자였는데 아침마다 늦잠 한 번 안 자고 매일 꾸준히 나갔다. 친구들이 없어 심심해하다가도 뭔가 단 둘이, 선생님과의 수업을 특별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학기 초부터 아이의 특성을 잘 파악해 주시고 살펴주신 선생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 열심히 자전거를 굴리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학교로 향한 아이. 선생님과 단 둘이 있는 시간 중에 특히 뭐가 좋았냐고 하니 구름도 접고 집도 접고 종이 접기며 미니 블록 쌓기까지 아이의 자랑이 대단했다.
아이의 시간을 기다려주고 견뎌준 선생님.
*수학도 풀고, 공부도 했지만 공부 이야기보다 선생님과 놀이처럼 교육한 그 모든 시간에 대단히 신나 있었다. 수학도 2학년, 3학년 단계 문제까지 풀 거라고 얼마나 들떠있었는지 모른다. 칭찬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선생님의 교육방법에 나 역시도 감탄했던 올여름 방학이었다.
몇 년째 아이들 초등학교에서 금요일마다 [바카라 읽은 어머니]를 하면서 작년부터 지금 둘째 아이 선생님 반에 들어갈 때마다 왠지 이 선생님이 좋았다. 교실에 들어서면 각자 아이들이 조용히 바카라을 읽고 수업을 준비하는 모습도, 읽던 바카라을 정리하고 단정하게 기다리는 아이들 모습도 선생님께서 꼼꼼하게 아이들 습관을 잡아주시는 것 같아서 우리 둘째가 내년에 이 초등학교에 오게 되면 이런 선생님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내 소망이 닿은 건지, 정말로 그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된 것이다.
귀하고 감사한 인연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선생님 의자에 앉아 바카라을 읽을 때마다 마음으로 기도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둘째 아이도 이렇게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해 주세요,라고.
아이들이 아가 때부터 교회 목사님께서 유아 세례를 받으면 꼭 빠지지 않고 기도해 준 내용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자라면서 좋은 스승을 만나서 아이의 꿈이 쑥쑥 커가게 해 주시고, 귀한 벗들을 통해 우정과 사랑을 쌓게 해 달라는 내용이었는데, 처음엔 이렇게 갓난아이한테 벌써 선생님 기도까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가도 한 해 한 해 아이들이 성장하고 자라다 보니 -진짜 빠르게 성장한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건 인생에 엄청나게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 아이가 더 성장하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 세상으로 한 걸음을 내딛을 용기.(*최종인 목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태어나는 순간, 엄마가 온 세상의 우주라면 학교에 첫 발을 내디딘 순간에는 우주가 선생님들로 바뀌는 건 어쩌면 그래서 자연스럽고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2학기에 시작된 받아쓰기, 받아쓰기에도 선생님께선 하나를 맞고 틀리고, 보단 정확하게 한 글자 한 글자씩 써 내려가고 완성해 가는 것에 대한 지도문과 안내문도 함께 첨부하셨다. 쓰기는커녕 이제 읽는 읽어나가는 글자도 몇 개 없어서 걱정됐지만 아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그래도 가장 쉽다고 생각한 글자를 뽑아도 공부를 하고 대비를 했다. 이미 난독증 수업도 병행하면서 아이의 속도를 잘 알기에 채근하거나 속상한 마음도 없었다. 그래, 한 글자씩만!
시험 당일, 그래도 혹시, 하는 결과가 궁금해서 받아쓰기 노트를 펼쳐보니 수많은 동그라미들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받침이 역시 어려워서 세 글자로 된 문장도 제대로 쓰지 못했지만 이어서 선생님께선 칭찬과 격려의 메모까지 덧붙여주셨다.
쓸 줄 아는 글씨가 많이 늘었네
틀려서 우수수 빗금표시가 많아도 부족한 부분이니 그 역시 어쩔 수 없으니 이 기회에 공부를 좀 시켜야지 생각했는데 선생님께선 아이가 행여 부족한 부분에 상처 입을까 걱정해 주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걸 보고 있는 내 마음까지 격려해주시고 있구나, 그런 생각도.
난독증, 읽기가 가장 어려워서 힘들 텐데도 날마다 왜 이리 학교를 재밌게 가고 그 어느 때보다 잘 먹고 잘 놀고 스트레스가 없나 봤더니 선생님께서 단단하게 아이의 마음을 지켜주고 계셨단 생각이 든다.
받아쓰기 연습 도중에 울어서 마음이 쓰였다는 메모에 그날 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니 둘째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응, 엄마.
오늘은 알림장 쓰기까지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어.
나는 빨리빨리 글씨가 잘 안 써지거든.
그런데 선생님께서 내 옆에 오더니
나한테 이렇게 말해줬어.
왜 우는지 모르겠어요, 하니까
우는 게 당연해.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이렇게 말해줬어.
나 같아도 눈물이 났을 거란 선생님 이야기와 자기 어깨를 도닥여줬던 이야기까지, 듣고 있으니 이렇게 좋은 선생님이 또 계실까. 벅차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뭉클해졌다.
세상엔 참 참 교육받아야 할 것 같은 드라마 같은 상황이 아니라
매일 날마다 이렇게 우리 아이를 위해 애써주고 마음 써주시는 감사한 선생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왠지 좀 알리고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아이 작은 아이 둘 다 유난히 좋은 선생님들을 자꾸자꾸 만난다.
나는 따로 감사 인사나 우리 아이를 더 특별하게 봐달라고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부족한 부분은 있지만 편견 없이만 봐주셔도 감사하겠다는 생각만 할 뿐이다. 사실 부족한 부분을 살펴봐주시고 그 부분을 솔직히 나눠주시는 것도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일이란 걸 알기에 아이의 그런 부분에 대한 지적도 귀 기울여 듣는다. 물론 그런 이야기도 상황을 조심스럽고 따뜻하게 말씀해 주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상처받기보단 감사한 마음으로 받게 된다.
아이 옆에서 자기도 모르겠는 마음을 그대로 괜찮다고, 선생님이었더라도 눈물 났을 거라고 말해주는 그 마음 하나로도 충분하다. 아니, 넘치게 감사하단 생각이 든다.
엄마도 하기 힘들기에, 기다려주고 그 이후의 마음까지 세세하게 살피고 아이들 곁에 있는 좋은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나는 선생님의 동글동글 귀여운 글씨체가, 빨간색 동그라미가 오랫동안 마음에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