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 감옥

서대문 형무소 * 격벽장을 돌며

by앤나우

광복절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우리 가족은 한 사람당 우산을 하나씩 들고 길을 나섰다.

어른도 아이도 누구도 할 것 없이 비가 오는 날엔 누구든 우산을 써야 비를 맞지 않는다. 사실 우산을 써도, 제대로 들어도 빗방울을 전부 다 막을 수도 없다.

세월 앞에서 이처럼 자기 한몫을 지켜내기도 힘든 건데 거친 세상풍파에도 스스로 우산이 된 사람들을 떠올려봤다. 아이들은 비에 신발이 젖고 양말이 축축하다고 걸어가는 내내 불평을 했지만 시원한 지하철 안에선 금세 조용해졌다.



독립문역 도착



조금 늘어난 연휴에 처음엔 우리도 여느 때처럼 가까운 곳이나 조금 먼 곳이라도 휴가를 다녀올까 생각했다. 바다도 좋고, 호캉스도 좋고 뭐 어디든 다 좋았다. 하지만 숙소를 잡고 차를 빌리는 일부터 쉽지가 않아서 함께 가족회의를 한 끝에, 영국에서 온 큰 조카도 함께 우리 동네와 서울 일대, 우리가 가볼 곳을 몇 군데 찾아보기로 했다. 광복절엔 독립문과 서대문 형무소, 임시정부 기념관까지 둘러보자는 의견으로 기울어졌다.


특별한 역사의식이 있어서도 아니고 문득 그냥 가보고 싶어서, 광복절이니까, 이런 단순한 생각에서 내리게 된 결정이었다.


서대문 형무소는 오랜만에 가보는 곳이라 더 궁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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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는 물론 독립문역 일대가 광복절 행사로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 대한독립 만세!! | 영국에서 온 큰 조카 J





많은 인파에 날을 정말 제대로(?) 골랐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언덕이나 잔디밭, 바깥쪽에서만 뛰어놀려고 하는 둘째를 어떻게 꼬셔서 데리고 가야 할지 시작부터 막막해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점점 많아졌고 아이들을 데리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부터 무리가 있어서 일단 두 팀으로 나눠서 볼 수 있는 곳부터 찬찬히 둘러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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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자들이 머물던 공간을 개방해서 새로운 전시의 형태로 꾸며놓았다





내가 어린 시절, 젊은 시절(물론 지금도 젊다^^) 갔던 서대문 형무소는 사실 공포스러운 공간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고문으로 인한 신음소리가 들리고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감옥 곳곳에 수감자들이 실제로 고통받고 고문받는 형태의 상황을 재현해 놓는 공간이 인상 깊어서 꿈에서까지 나온 기억이 난다.


물론 공포를 주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겠지만 실제로 고문을 당한 사람들의 피 흘리는 모습이 먼저 떠올랐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가보니 단순한 공포만이 아닌, 처음으로 그곳에 수감되었던 많은 사람들을 찬찬히 떠올려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전보다 다양하고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감옥 곳곳의 공간을 좀 더 역사적 '기록'의 공간으로 보여주기 위한 시도들이 보였고 외부의 공간도 원래 장소와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인원을 제한하거나 사진촬영을 금지하거나 하는 등의 시도도 좋았다.


*광복절 기념으로 학생들이 AI로 직접 만든 영화도 상영했는데 이런 이벤트 덕분에 둘째 아이도 점점 하나씩 안으로 들어와서 관람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들과도 소풍 오듯 손 잡고 와서 찬찬히 둘러보기 좋은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사람이 적은 평일 낮에 한 번 더 와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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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이 당연히 편안한 공간이 아닌란 것을 알아도 실제론 얼마나 더 참혹했을까





*10시간에서 최대 14시간 이상 노동에 시달린 수감자들의 일과. 얼마 전 우리 아이들이 짠 여름방학 계획표도 떠올랐다. 우리 멋대로·마음대로 계획을 짜고 그대로 실천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산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옥사에서 공장으로 이동할 때는 옷을 모두 벗거나 나무 막대기를 뛰어넘어 몸에 아무것도 소지 않았음을 증명한다는 글이 가슴이 아팠다. 날마다 수치스러운 모욕을 참으며, 입을 벌리고 자기 모든 걸 드러내야 했겠구나. 우리가 누리는 삶의 지분에 이분들의 아픔과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격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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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벽장





격벽장

수감자들이 햇볕을 쬐거나 간단한 운동을 했던 운동장으로 1920년대에 만들어졌다.
운동할 때 대화하거나 도주하는 것을 막으려고 격벽을 세워 수감자들을 분리하고 감시했다. 전형적인 원형 감옥 구조인 부채꼴 모양으로 만들어졌고, 가운데에 높은 간수 감시대를 세워 손쉽게 수감자를 감시하고 통제했다. 해방 이후 철거되었던 것을 2011년에 원래 위치에서 약 20m 떨어진 이곳에 본디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




설명과 구조를 나타낸 그림을 보는 순간, 18세기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의 판옵티콘(Panopticon)이 바로 떠올랐다. 판옵티콘을 바카라에서 봤을 때는 원형 구조를 상상하며 재밌게 읽고 지나쳤는데 실제로 마주하는 풍경은, 내가 직접 걸어보는 풍경은 역시 전혀 다르구나. 앞으로 조금씩 걷기도 망설여졌다. 붉은 벽돌 벽을 천천히 걸으면서, 감시 속에서 수감자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기도 그저 또 다른 감옥.


소수의 감시자가 다수의 수용자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감시하는지 설계된 공간이라 해도 이걸 과연 운동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손바닥만 한 공간에 세워진 벽마다 어찌나 좁고 답답하던지. 이런 곳을 오고 가며, 잠시 잠깐이라도 바깥공기를 쐬고 바람을 느꼈을 사람들이, 독립운동의 죄목으로 잡혀왔을 그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부모와 자식부터, 공부해야 할 어린 학생들이 이 좁디좁은 곳에 갇혀서 서서히 죽어갔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나쁜 놈들, 용서할 수 있을까. 최소한의 것마저 다 빼앗아간 진짜 나쁜 놈들이구나.


판옵티콘의 잔인한 점은 실제로 감시자가 없어도 「언제든 감시당할 수 있다」는 의식 때문에 스스로 엄격하고 수동적인 규율을 내면화한다는 점이라고 했는데,


당시의 가슴 아픈 시대가, 온 세상이 감시자인 것 같은 그 세상이 떠올라서 한스럽기도 하고 감옥 같은 세상 속에서 진짜 감옥에 갇힌 더 불쌍한 수감자들을 떠올리니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지 못해도 TV나 영화에서 보는 요즘 감옥의 모습은 넓은 운동장에서 공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운동기구도 몇 개 있어 체력단련실 같은 공간에서 몸을 키우기도 한다. 그곳에도 당연히 간수는 있지만 운동장에서 뭘 할지 선택해서 걷거나 뛰거나, 멍하니 햇볕만 쬐거나 그 어떤 자유든 수감자들에게 주어지고 있는데.


수감소 전체는 물론, 격벽장의 붉은 벽돌 하나하나가 피로 물든 건 아닐까, 붉은 울음으로 이뤄진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있는 잠시 잠깐도 눈길조차 못 보내고 대화도 나눌 수 없었다니 이 사람들은 파란 하늘을 쳐다보거나 하얀 구름이나 지나가는 새를 바라볼 자유도 허락되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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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곡한 감옥 안의 유일한 환풍구 | 화장실 배출구는 찍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니 아가씨땐 보이지 않았던 여러 공간들에 관심이 간다. 기웃기웃, 아주 갓난아기의 배변을 치우는 건 물론 먹이고 입히는 시기를 직접 해보다 보니 어딜 가도 화장실이나, 음식을 먹는 공간 같은데 우선 눈이 가고 여행을 가더라도 가족들과 좀 더 편안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지내는 하루를 꿈꾸게 된다. 그냥 나 혼자였으면 모르겠지만 아이들도 씻기고 함께 지내기에도 편리한 공간을 꿈꾸고 가꾸고픈 마음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 같다. 여기서도 좁디좁은 감옥 안에 몇 명이 과연 잤을지, 밥을 들어오는 구멍이나 창문은 몇 개인지, 그리고 화장실? 화장실은 어땠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이 사람들은 어떻게 공급받고 살아갔던 걸까, 이 사실 제일 궁금해졌다.


그래서 바깥에서만 기웃기웃 들여다보기보단 적극적으로 그 공간에 들어가서 한 발로 재보기도 하고 (두 걸음도 못 가 멈춰야 했다) 자료를 찾아봤다.


적정 수용인원이 5~6명일 땐 그래도 좀 떨어져 앉기라도 했을 텐데 3·1 운동 이후로 수감자가 급증하면서 한 방에도 20명이 넘는 인원이 수용되는 사례가 빈번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독방이 오히려 나을 것도 같지만 거기에 수감되기 전까지도 징벌을 받아야 했기에 오늘날과 같은 여름 더위, 화장실도 아닌 똥통을 생각하면 여기서도 살아 있는 하루하루가 기적이었겠구나. 저 작은 구멍 하나로 모든 사람의 한스러운 입김이, 눈물이 제대로 배출될 수나 있었을까.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년)》를 봐도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실에는 총 25명의 수감자가 나온다. 누울 자리도 앉을자리도 없기에 돌아가면서 앉기도 하고 서서 다리도 풀어야 하고 서로가 서로를 자기 몸처럼 지켜주고 지탱해줘야 했다. 몇 걸음 걷지도 못하는 폭이 좁은 방에서 아무 무기도 들지 않고 태극기 하나만 들었던 우리의 선조들이 여기서 억울하게 갇히고 죽어갔다고 생각하니 부끄럽고 미안해지고 지금의 우리가 사는 공간이 떠올라서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재일 한국인 정치범 이철의 옥중 기록(장동일지)에 대해 전시된 방에는 이런 작은 글귀가 보였다.


Ruler song


여기엔 이런 글이 적혀있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듯이

과거 가해 세력들의 사과나 진술 없이,
오히려 당시의 성과에 대한 훈포상을 받거나

여전히 피해자들의 자기 검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나는 우리의 역사가 여기서 과연 한 발, 한 발씩 나아가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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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죄인인가? 무죄인 사람들을 감옥에 넣었다






*서대문 형무소에는 독립 운동가들만 수감되었던 걸까? 물론 그렇진 않았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 민족운동 관련 수감자가 압도적으로 많았기에 독립운동의 현장, 우리 역사의 현장으로 남아있는 곳이 됐다. 특히 1914년 ~ 1944년의 수형 기록 카드를 분석해 보면 죄명이 확인된 4630명 가운데 4062명, 즉 87%가 넘는 사람들이 사상범으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광복 이후에도 이곳은 곧바로 사라지지 않고 서울 형무소 · 서울 교도소 · 서울 구치소로 계속 사용되었는데 아이러니 한 점은 이곳은 이 시기엔 주로 이런 사람들이 수감되었다는 점이다.



반민족 행위자와 친일세력

좌우익 정치 관련 인사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에 반대한 민주화운동가들

간첩 혐의자와 국가보안법 관련 피고인



해방 직후에는 서대문형무소에 갇혀 있던 독립운동가들이 석방됐고 이후에 오히려 반민족 행위자와 친일 세력이 수용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친일 세력에 대한 청산도, 그 어떤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고 있진 않은 것 같다.






#서대문형무소

#누가죄인인가

#무죄인사람들의진짜감옥

#감옥같은시대

#시대처럼올아침을기다리는사람들

#친일청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