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고속도로에서

차가 멈.췄.다

by앤나우

행사가 많은 여름이다. 아직 아이들은 방학 전인데(*오늘 방학을 했다) 이미 방학을 한 학교가 많아서, 교회에서 하는 여름 성경학교에 참여하느라 일산에서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서울로 아이를 데려다주기도 하고 1박 2일 교회에서 하는 합숙에도 참여시켰다. 둘째는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고 노는 걸 워낙 좋아해서 밤에 펼쳐질 '파자마 파티'란 말에 아주 들떠서 갔다.



나 역시 영아·유치부 찬양과 공과 수업을 맡아서 우리 부서 성경학교 준비로, 토요일은 아침 8시부터 이동해야 했다. 바쁘게 준비해서 이른 아침부터 교회에서 성경학교를 즐겁게 잘 마췄다. 그렇게, 지난주 토요일 일정이 저녁 6시 반쯤 끝났는데 서울에 사시는 친정 부모님과 영국에서 온 큰 조카와 함께 저녁을 먹기로 마지막 약속을 잡았다. 마무리는 고기!

(이때만 해도 모든 것이 평온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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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일마을 | 송도 갈비에서





이때만 해도 몰랐다. 양념 갈비도 먹고 야무지게 된장찌개와 후식 냉면까지 모두 한 그릇씩 시켜 먹고(친정어머니께서 특별히 쏘신다고 해서 정말 배 부르게 잘 먹었다) 늦은 시간 집에 가려는데


고속도로에서 차가 멈췄다.




어..., 어? 00아, 차가 또 왜 그러지?




또, 라는건 우리가 이른 휴가를 가기 전, 여행 직전에도 이상 부분이 감지됐다고 차량 자체 신호가 떠서 신랑이 자주 가는 공업소에 맡겼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기계 오류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엔진 쪽 이상이 감지 됐다는 빨간 등이 들어왔다. 모두 늦게까지 모였다가 조카를 집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라 이제 밥도 든든히 먹었겠다, 씻고 자기만 하면 되는데 집까지 도착 25분을 남겨두고 경고 등이 깜빡이기 시작한 것이다. 운전을 하는 신랑은 당황해서 가속 페달을 먼저 밟았는데 세상에나, 가속 페달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더 큰일이 날 수도 있어서 우리는 얼른 갓길에 차를 세우자고 했다.


그 시간이 이미 11시가 넘은 시간이라 밤의 고속도로는 깜깜하고 갓길은 유난히 더 좁아 보였다.


나는 이미 젊은 시절 친한 언니가 운전하던 자가용 브레이크가 갑자기 말을 안 들어서(그대로 브레이크 페달이 뻗어버린 것이다;;) 갓길 쪽으로 살짝(?) 박아서 세운 뒤, 레커차를 타 본 경험이 있었기에, 브레이크 마저 안되면 큰일이기에 빨리 멈추자고 한 것이다.


갓길에 도착하자마자 신랑은 시동을 껐는데 비상등도 전부 꺼져버렸다. 시동 신호도 아무것도 듣지 않더니 보닛에선 연기도 솔솔 올라오고, 으아앗, 타는 냄새까지 나자 마음이 불안하고 다급해져서 아이들과 같이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신랑도 다급하게 손짓하더니 모두 내려서 아이들을 지키고 있으면 전화를 해서 수습을 해보겠다고 했다.




밤의 고속도로




차 안에서는 그렇게 편안하고 안전하게 느껴졌는데 고속도로 갓길에 아이들과 서있는데 쌩쌩 소리가 무섭고 소름이 끼쳤다. 시속 100km가 넘어도 차 '안'이라는 게 이토록 안전한 공간이었구나. 바깥에 잠깐만 서있어도 차량이 양쪽으로 쌩쌩 달리는데 조금만, 아주 살짝만 한 발만 헛디뎌도 차에 치일 수밖에 없는 무서운 상황이라고 느껴지니 두렵고 떨렸다. 더군다나 까불거리는 둘째가 걱정돼서 아무 곳에도 못 가고 교차되는 지점 갓길 쪽에 은색 돗자리를 깔고 앉게 한 후에 꽉 끌어안고 있었다. 다행히 그 전날도 성경학교에서 베개 싸움을 하고 밤새 논 아이는 2시간 30분 밖에 못잔탓인지 피곤해서 팔팔한 기력을 보이진 않고 자꾸 졸리고 눕고 싶다고 했다. 누울 수 있는 공간은 없는데, 신랑은 전화하느라 바빴고 나는 큰 아이와 둘째를 안전한 곳에 같이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사실 어디가 가장 안전하고 좋은 곳인지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줘야 하는 건지도 막막했다. 비상등마저 나간 상황에서 연기도 나고 차량은 분명한 문제가 있어 보였지만 일단은 우리가 무사히 차에서 나왔고 차에서 뭔 일이 있더라도 어떻게 어느 쪽으로 피할지도 막 머리를 굴리는데 마땅하고 뾰족한 수도 떠오르지 않았다.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우리 차를 끌고 가줄 레커차를, 우리 가족을 태워줄 택시를, 간절하게 부르고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집으로 진입하기 전 도로가 위로 아래로 4군데나 넘게 복잡하게 교차되고 뻗어있는 곳이라 거기선 우리 가족이 있는 위치조차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듯했다. 세 번째 만에 레커차 기사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이 들렸고 우리는 최대한 안전한 곳에 몸을 웅크리고 함께 있었다.



막상 고속도로 밖에 나오니 차를 '탔다', 차 '안에 있다'는 자체가 이토록 안전한 거였나? 안전한 게 맞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갓길에 세워둔 차량도 왜 그리 많은 사고가 일어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차도 까만 차인데 진짜 깜깜한 이 밤에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고 음주차량이나 운전미숙으로 달리는 차로 오해하고 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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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상황에서 아이들이랑 여기로 탈출하고 내려가야지 마음먹었던 곳 T_T | 진짜 큰 일 날 소리





다리 위라 전부 주변은 낭떠러지고 캄캄했다.


혼자였어도 무서웠겠지만 아이들이 있어 더 걱정되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아이들이 침착하게 잘 기다려주고 (아마도 낯선 광경에 무서워했던 것 같다) 함께 해주니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지만 생각보다 잘 견딜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좋은 기사님께서 와주시고 원래는 옆자리 한 명 외에는 뒷자리에 아무도 태울 수 없지만 어린아이도 있고 택시도 안 잡히는 곳이라며 얼른 타서 집으로 가자고 했다.

이미 젊은 시절 레커차에 탑승해 본 경험이 있는 나는, 그때 앞자리 2명이 탈 수 있는 차에 탑승했는데 이 차는 앞자리 두 명 뒷자리도 3,4명 탈 수 있는 좌석은 있었으나 (뒷자리는)보험처리가 안돼서 사고 날 위험 때문에 기사님께선 절대 본인의 가족도 안태워준다고 하셨다. 사고로 당황하고 떨었을 우리 가족을 생각해서 또 그런 부분을 감수해 주시고 태워주셔서 어찌나 감사하던지 모른다.




차 안에서도 신랑은 반쯤 넋이 나갔고 양쪽에 두 아이들은 모두 잠에 취해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신랑이 이것저것 무슨 문제일지 기사님과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다가 내가 이야기를 꺼냈다.


-아니, 이렇게 밤에 고속도로에서 살아남은 것만도 얼마나 감사해! 진짜 큰일 날 뻔했어, 우리.

살면서 무섭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는데 너무 무섭더라고, 어디 도망갈 데도 없는 절벽에 양쪽에 달리는 차도 무섭고 고속도로가 고속도로를 타야 재밌는 거더라고. 우리 그냥 감사만 하자. 지금은.


기사님께서 신랑을 달래주는 내 이야기에 웃으면서 말씀을 이어주셨다.


-맞아요, 현명한 생각이에요. 갓길에서 사고가 정말 많아요. 특히 이런 까만 차들은 달리는 줄 알고 그냥 들이받기도 하고 몇 톤짜리 트럭이 갓길에 있어도 달리는 걸로 착각하고 박는 사고로 여러 명이 목숨을 잃어요. 우리 레커차 기사들도 차량을 끌어주려고 나왔는데 해마다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잃어 날 정도로 위험하고 험한 곳이에요. 감사해야 해요, 정말.



아끼는 차가 고장 난 것과, 차 수리비며 폐차까지 머리가 복잡했을 신랑은 바로 뒤를 돌아 우리 가족을 한 명 한 명 돌아보더니 자기가 너무 자기 생각에만 빠졌다면 우리 가족 무사한 게 감사하다며 사과도 전했다.


그대로 군소리 없이 끌려오는 대로 줄 하나에 이어 오는 우리 차를 바라보면서 기사님의 운전 솜씨에 놀라기도 했고(기사님께선 커브길에선 또 속도를 줄이면서 운전을 기가 막히게 잘하셨다) 어딘가로 끌려가고 따라가는 삶이 어떻게 가야 안전한 건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안전하다 생각한 차 안도 전혀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차창 밖으로 멋있어 보이는 야경도 하나도 예쁜 곳이 아니었다. 그저 무섭고 무시무시한 낭떠러지 절벽, 이리와 늑대같이 한 발 디디면 잡아먹힐 것 같은 세상이 순식간에 펼쳐질 수도 있는 순간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었구나. 그동안도 이런 삶을 살았는데 매번 차를 타면서도 한 걸음 내딛고 살아가면서도, 감사하고 고맙다는 생각보단 당연하다는 생각, 편안하다는 생각만 했구나.



나의 목적이 저렇게 줄처럼 가느다래 보이는 끈 하나에 의지해도 저절로 따라가는 커다란 차처럼 나를 이끌어주는 하나님이 있었기에 내가 살아있는 거구나, 나는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불안의 순간에 감사의 기도가 터지는게 눈물나게 감사했다.



부족하면서도 나를 능력 그 이상으로 써주고 아껴주고 세워준 많은 분들도 떠올랐고 우리가 늘 먼 곳에서 교회에 출석하고 할 때 마다도 우리 식구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손길들을 떠올리니 새삼 그 감사와 감동이 더 크게 밀려왔다.


사람은 당연히 누구나 죽고,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게 우연인 사고로도 죽을 수 있는 나약한 존재가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게 우울해하고 걱정하고 살아가는 게 아니라, 이렇게 살아가는 하루하루에 대한 감사와 감동을 더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고흐가 그린 것 같은 사이프러스 나무 같은 광경도, 깜깜하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간간히 비쳐오는 자동차 불빛도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땐 그저 불안으로만 적막으로만 비친다. 나도 나 자신에게 좀 놀랐던 점이 있는데 그건 언제나 불평과 짜증이 먼저 튀어나오는 줄 알았던 나에게도 언제부턴가 위기의 순간에도, 슬픔의 순간에서도 감사가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날 부장 집사님과 짧게나마 교제를 나누던 중에 집사님께서 내 이름을 말하면서 이야기해 주셨다.



00 집사님은(내 이름이다) 언제나 좋은 걸 먼저 바라보려 하고 매 순간 진심을 다해. 그게 얼마나 빛나고 귀한 마음인지 모를 거야. 그런 마음들은 따뜻해서 늘 주변으로 전달되고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그 부분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또 웃게 하고 기분 좋게 하는지 몰라.



나는 하나님 안에서 정말 그런 사람으로 쓰임 받고 쓰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 자동차 안에 삼각대도 있으면 좋지만 정작 가장 도움이 되는 건 휴대용 소화기와 경광봉이라고 합니다. 밤의 고속도로에서 비상등까지 나간 위험 상황에선 경광봉이 간절해지더라고요.


▶ 차량은 스타트 모터가 타버려서 거기에서 연기가 올라왔고 엔진에 붙어 버렸습니다. 신랑이 엄청 꼼꼼한 사람이어서 안전 점검을 매번 잘 받고 여행 가기 전에도 언제나 점검부터 했는데 공업사 사장님께서도 신랑에게 얼마나 철저하게 관리했는지 알아서 더 안타깝다고 하셨대요.


안전운전, 고속도로에서 사고 없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