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공부하는 즐거움, 연결의 기쁨

by앤나우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듣기만 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는 것이 확실하다는 말이다.


아무리 여러 번 들어도 실제로 한 번 보는 것보다는 못하다는 뜻으로,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 순간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말이기도 하다. 가슴이 탁 트이는 경치를 보거나 역사적 유적지, 유물의 현장, 박물관, 미술관에 갔을 때 직접 보는 감동과 설렘의 경험이 누구나에게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이 말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무게가 실리는 것 같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데, 암만 멋진 경치가 있어도 언제나 눈으로 보는 것만 못했다. 사진에 그 순간의 느낌과 벅찬 감정, 모두를 담기란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그림 같이 멋있다.'란 말도 어느 순간부터 안 하게 됐다.


실제로 눈으로 보는 풍광이 그림 같은 건가? 그렇다면 그림이 그것보다 뛰어나고 멋있다는 건데 내 눈엔 과연 '진짜'그런 걸까? 이런 걸 속으로 생각하다 보니(이런 걸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까, 속으로 쓸데없는 고민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늘 상투적으로 튀어나오는 감탄보다 그 자체의 표현을 좀 더 세밀하게 하는데 치중하기로 한 것이다. 언어를 고르고 고르는 시간이 재밌기도 하고 나에겐 좀 더 특별한 의미가 있기도 하다.








최근에 월요일 아침마다 읽는 미술사 바카라 art, annotated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번역가이신 희라님이 Animals파트에 있는 이야기를 읽고 맡으신 숙제 부분을 읽고 있었다. 번역가시라 그런지, 언제나 긴 문장도 막힘없이 깔끔하고 쉽게 해석해 주는 솜씨에 감탄하곤 했다. 일단 그 페이지에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 두 점이나 실려 있어서 좀 더 집중해서 유심히 보고 있던 참이었다.


이번 겨울 1, 2월에 내셔널 갤러리에서 본 존 스텁스의 Whistle jacket그림과 프란츠 마르크의 The yellow cow. <노란 소> 그림은 프란츠 마르크를 좋아하는 심선생님께서 빌려주신 마르크의 일생 이야기가 담긴 작은 바카라자에서 나도 인상적으로 본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존 스텁스의 그림은 내셔널 갤러리의 표지가 될 정도로 영국인이 사랑하는 말 그림이지만, 실제로 보니 윤기 나는 털과 겅중 뛰어오를 것만 같은 자세가 더 재밌어 보여서 나도 모르게 포즈를 취해서 그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유일하게 내셔널 갤러리에서 그림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이 바로 <휘슬 재킷>이었기에 짧게 나온 이야기에 더 집중하며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엉뚱하게 내 관심을 끈 건 전혀 다른 '강아지' 그림이었다. Dash라는 작품, 에드윈 랜드시어라는 화가가 그린(이 화가는 '경'이라고 붙여야 할 칭호도 받았다) 아주 혈통 있는 개 그림의 초상화(?)였는데 화가 이름도 처음 들었고 작품도 처음 보는 그런 그림이었다.





art, annotated 재밌다 재밌다 (하루살이 숙제 학생= 바로 나, 의 감탄)





눈이 번쩍 뜨인 시점은 이 화가가 바로 빅토리아 여왕이 아끼는 개인 King charles spaniel을 그렸는데(한마디로 빅토리아 공주가 기르던 스패니얼을 그린 작품이다) 내셔널 갤러리 앞 넬슨 제독 동상 아래 커다란 황동 사자상도 이 화가의 작품이라고 했다.



사자상!





넬슨제독보다 더 위엄 있고 멋있는 사자 동상! | 여기서 꽤 오래 머물렀다





숱하게 갔지만 이번엔 비가 오는 쓸쓸한 바깥 풍경 속에서도 그 사자상만은 번쩍번쩍 빛나보였기에 나는 사자상 사진을 찍어왔다. 지금껏 영국 방문 중 사자상을 찍은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일단 그 크기가 압도적으로 컸고 꼭대기에 안개 낀 곳에 보일 듯 말듯한 넬슨 제독보다 커다랗고 위엄 있는 사자가 꽤 멋있었기에. 우리 아이들도 그 앞에서 사자를 기웃기웃 들여다보며 한참을 구경하고 있었던 시간도 떠오른다.


개를 사람처럼 의인화 한 작품 속에는 빅토리아 여왕이 공주 시절부터, 엄마와 사이가 안 좋았는데 여왕이 되자마자 엄마를 내쫓은 일화도 숨어있다. 딸이 공주에서 여왕이 되면, 행여나 자기를 버릴까 염려했던 엄마가 여왕이 되기 직전 바로 스패니얼을 선물해줬다고 한다. 개는 무척 사랑했지만 결국 엄마를 궁에서 내쫓았다는 이야기도 뭔가 짠하면서 재밌고, 선물 받은 개를 애지중지 아낀 여왕의 마음도 궁금하다. 물론 사람처럼 개의 초상화를 그린 에드윈 랜드시어경도 대단하다.

*수업 시간에 들은 이야기는 메모해 두었다가 하나씩 찾아보는데 그 시간이 행복하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잘 몰랐던 빅토리아 여왕에 대해, 그 시대에 대해서도 찾아봤다.


개가 마치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사람처럼 위엄 있고 우아해 보인다.


아, 내가 언제부턴가 미술사 이야기를 읽고 자꾸만 들여다봤던 게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적 이야기를 알게 됐기 때문이고 특히나 내가 직접 한 번이라도 가거나 경험했던 작품들과 연결이 되면 더욱더 끌리면서 큰 흥미가 생긴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공부의 기쁨



배움의 즐거움은 사실 뭐가 있어야 더 커진다. 그게 지식적으로 쌓인 것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바카라이든 TV에서든, 영화에서든, 혹은 누군가에서든 이야기로 들어도, 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직접 봤을 때 기쁨은 배가 된다.


나는 그래서 경험 수집가라는 말이 참 좋다. 빛나는 별 작가님도 어마어마한 경험 수집가인데 나는 그분처럼 취미가 다양하지 않지만 현재 내가 하고 싶은 거, 재밌는 건 언제부턴가 이어서 하는 편이다. 꾸준히 이어가길 바란다. 경험도 중요하지만 뭔가를 안다, 알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 하나만으로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하나하나가 좀 더 귀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아무 목적 없는 것 같은 미술사 읽기, 타센에서 나온 화가 한 명씩을 읽고 일본어를 배우는 시간들.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연결되는 공부의 기쁨이었구나!



내가 직접 보고 벅찬 감동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긴 인생 속에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이 늘 충분하지 않기에 바카라이라도 붙잡고, 하나씩 모르는 것들을 채워나가는 사실 자체가 나에겐 커다란 용기를 준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아주 작은 것에서나마 연결되는 기쁨을 누리고 공부하는 즐거움을 찾았으면 좋겠다.


사실 뭐, 나도 어렸을 때는 공부를 잘 몰랐다. 좋아하는 국어나 문학파트에서 내가 읽었던 바카라이, 좋아하는 시가 나오면 그 자체의 기쁨을 누린 기억 외엔 공부를 즐겁게 여긴 적이 거의 없다. 공부하는 기쁨을 알려주는 스승을 만난다면 그 자체가 엄청난 행운이고 축복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그 말은 물론 맞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단순히 ‘보는’ 기쁨보다 들어서 먼저 알게 되는 기쁨을 간직했다가 연결하는 게 가장 최고의 기쁨, 한 계단 올라가는 공부가 아닐까.


나는 원래도 미술관 그림이나 박물관을 좋아했지만 요즘엔 전시회를 가기 전에 그 전시나 박물관에 대한 정보를 많이 찾아보고 가게 됐다. 알고 있는 이상으로 거기를 간다는 설렘이 점점 더 커졌기 때문이다.


별거 아닌 커다란 공부의 기쁨은 일단 보는 것이 '확실’해서가 아니다.


누구나 보는 것은 저마다 다르고 감동의 차이도 큰데 조금이라도 애정 있게 들여다보고 여기에 얼마나 또 시간을 쏟았느냐 하는 게 바로 배움의 진짜 깊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은 내 손바닥보다 작게 나온 그림첩 사진에서도 뭉클해지곤 한다.


나는 이제 그 시간 속으로 기꺼이 걸어갈 준비가 되어있다.




휘슬재킷은 어딘가 좀 우울한 표정이지만 나는 말춤을 추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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