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tain's Got People

설탕 공장 사장님이 지은 미술관 ③ 폐공장을 모던아트로

by앤나우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모던


나는 TATE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달달한 미소가 먼저 피어난다.




영국 런던은 미술관과 박물관 천지다.



대영박물관 British Museum

내셔널 갤러리 National Gallery

국립 초상화 미술관 National Portrait Gallery

왕립 아카데미 Royal Academy of Arts

런던 자연사 박물관 Natural History Museum

과학 박물관 Science Museum

테이트 브리튼 - 테이트 모던 Tate Britain - Tate Modern

코톨트 미술관 The Courtauld Gallery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 V & A

왈라스 컬렉션 Wallace Collection



*내가 좋아하고 아이들과 가봤던 장소를 중심으로 적어봤다.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이 보물처럼 한가득씩 쌓여있는 유명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들어가면 눈이 휘둥그레지고 어디서부터, 뭐부터 봐야 할지 혼자 설렌다. 어릴 적 미술바카라에서 보던 작품을 본다는 기쁨과 감동이 밀려온다. 고흐 해바라기! 쇠라 점묘법! 드가의 발레리나들!


나는 평소에 방향감각도 없고 길도 잘 못 찾지만 런던으로 나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즐거웠다. 약 20년 전에 영국에 처음 갔을 때부터 지금까지 런던 갤러리, 박물관에 갈 때마다 새롭고 경이로운 기분이 든다. 내셔널 갤러리의 빨간 벽지만 봐도, 왈라스 컬렉션에선 - 떨어진 신발 한 짝 따윈 아랑곳 않고 해맑게 그네를 타고 있는 여인의 표정을 봐도(프라고나르의 <The Swing 그네>), 대영박물관의 로제타석을 봐도 이걸 지금 보고 있다는 그 자체가 꿈처럼 느껴지고 신기한 기분마저 든다.


미로 같이 얽혀있고 길게 이어진 방과 방 사이를 오갈 때면 혹시라도 길을 잃을까 하는 불안함보다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보고 싶고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에 심장이 콩콩거린다. 아니, 오히려 길을 잃었으면 좋겠다. 왔던 길도 또 되돌아가게. 다시 찬찬히 그림들을 볼 수 있게 말이다. 비 오는 날 큰 조카와 함께 조카는 대학교 수업을 들으러 가고 나는 코톨드에서 전시를 보는데, 조카랑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가올수록 조금이라도 작품을 더 보기 위해서 화장실을 가고 싶은 것도 참고 참으며 계단을 오르내렸다. 살면서 생리적인 욕구를 참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이게 참는다고 참아지는 거였나? 내 행동이 스스로도 어이없어서 웃음이 났다. 얼마 만에 여유롭게(?) 참아보는 소변인지, 명작들 앞에선 지금 화장실이 중하냐,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홀린 듯 방과 방 사이를 빠르게 오고 갔다.


언니네가 사는 곳이 윔블던인데 윔블던은 런던과 무척 가까워서 기차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고 런던으로 자주 나올 수 있어서 좋았다. 거의 나올 때마다 후드득 축축, 비는 내렸지만, 해가 나지 않아도 런던에 가고 있다는 자체 만으로 이미 마음은 쨍쨍 해가 솟았다. 박물관과 뮤지엄이 많은 채링 크로스 역 Charing Cross Station에 가까워 올수록 마음도, 발걸음도 더 빨라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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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박물관·미술관은 길을 나서는 순간부터 즐겁다








내가 처음, 영국에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에 갔을 때 크게 느낀 점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이렇게 외관부터 화려하고 멋있는 대부분 갤러리, 박물관들이 공짜! 공짜라는 점이다! 야호!

두 번째. 미술관 곳곳에 앉아있을 수 있는 의자와 소파가 정말 많았다.

세 번째. 누구나 오갈 수 있고 자유로운 장소라는 점이다.



요즘엔 한국에서도 좋은 무료 전시들이 많이 생기긴 했지만 유명한 예술가의 작품이나 기획전시를 보려면 티켓을 구해야 하는데 가격이 적당한 경우도 있고 비싸다 싶은 경우들도 있다. 그런데 미술사에서 획을 그은 유명한 르누아르, 고흐, 피카소, 마네, 모네, 프랜시스 베이컨, 데이비드 호크니 같은 작품들을 모두 공짜로(아주 저렴한 가격에) 볼 수 있다면 이것만큼 좋은 기회가 있을까? 그 기회를 놓칠 순 없다. 거기에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고전주의부터 현대미술까지 연도별로 화풍의 흐름대로, 작가별로도 찬찬히 둘러볼 수 있다.

왜 이 예술가들을 한데 모아 났을까? 무슨 의도일까, 생각해 보는 재미도 있다.



화가뿐 아니다. 조각가인 로뎅이나 헨리무어 작품을 보거나 고대 그리스의 기둥 한 조각, 로제타 석까지 눈앞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각각 따로 전시를 해도 어마어마한 양인데 심지어 모두 한 곳에 모여있으니 입이 그냥 절로 벌어진다.


누구나 다 들어올 수 있게 프리패스! *단, 기부금으로 마음을 표시하고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유난히 더 눈에 뜨였던 고급스러운 빨강벽지, 녹색벽지, 꽃무늬벽지(왈라스엔 커튼과 벽지마저 그저 보기만 해도 황홀하다!) 실제로 궁전에서 썼던 그대로의 장식품과 장식장까지 보고 있노라면 하! 소파에 앉고 싶은 충동을 겨우겨우 참아내야 한다.

폭신하고 아주 편하게 보이는 소파지만 "앉지 마시오", 표시가 된 소파나 의자엔 절대 앉아선 안된다. 마치 <오만과 편견>이나 <비커밍 제인>에 나올법한 앤틱 자체인 고급스러운 서재, 바카라상, 소품 하나에도 역시, 절대 손 대면 안된다.


미술관과 박물관 곳곳에는 앉아서 쉬어갈 수 있는 의자들이 참 많아서 그 점도 인상적이었다. 누구나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자유롭게 드나들고 쉬었다 가고 그저 앉아있다만 가도 그들 역시 그림과 어우러진 풍경이 되는 듯했다. 인상적이고 아름다웠다. 특히 청소를 하시는 분이 내셔널 갤러리 중앙 의자에 앉아서 쉬는 채로 멍하니 대형 성화를 바라보는데 나는 그분의 편안하고 고요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우리와 가까이에 있는 미술, 숨 쉬듯 자연스러운 삶 속의 예술이 바로 이런 거구나.





테이트 모던은 원래 2차 세계대전 직후 런던 중심부에 전력을 공급한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Bankside Power Station)였다. 1952년부터 81년까지 발전소로 사용하던 그 건물이 20년간 흉물스럽게 방치되다가 2000년 5월에 현대 미술관으로 다시 개관했다. 99m의 거대한 굴뚝을 없애지 않고 건물 중앙에 그대로 남겨뒀다. 폐공장으로 사라질뻔한 공간도 다시 살리는 재주라,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민족만이 도전할 수 있는 과감한 선택이 아닐까. 발전소였던 까닭에 건물 안 구조가 일반 미술관과 달리 복잡하고 미로 같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나는 그 마저도 이 미술관의 매력으로 다가왔다.



'테이트'미술관의 테이트는 설탕 공장의 사장님 이름이다. 언니가 함께 미술관을 가면서 '테이트'설탕에 대해 말해줬는데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른다. 그동안 마켓과 카페에서도 늘 어디서나 놓여있었던 바로 그 Tate가 그 Tate라고? 웃음이 나왔다. 그 뒤로 테이트 설탕을 볼 때마다 왠지 더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얼른 사진을 찍고 카페에선 한 번씩 맛을 보곤 했다.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미원 미술관

-샘표 갤러리


와, 이런 건 상상만으로도 좋다. 마구마구 생겨나고 우리나라에도 마구마구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예술은 혼자 즐기기보다 함께 나눌 때 더 값지다




Henry Tate의 말이다. 헨리 테이트는 설탕 사업가로 큰 성공 후, 국가에 예술 작품을 기부하여 테이트 미술관을 설립한 설탕 공장 사장님, 자선 사업가이다. 그냥 재벌도 아니고 달달한 설탕으로 설탕 재벌이 되기까지! 그의 인생 스토리도 재밌지만 그가 남긴 업적, 그가 기부한 수많은 예술품들은 녹지 않고 지금까지도 달달하게 그곳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헨리 테이트는 처음 자신의 집에 모아둔 전시품들을 보여주기 위해 기꺼이 문을 열어 누구나 자유롭게 사람들을 드나들게 했다고 한다.


와, 나에게도 헨리 테이트가 문을 열고 이곳으로 환대해 준 느낌이 든다. Tate란 이름만으로도 영국이 예술과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는지 더 각인시켜 준다.


독일 쾰른에 있는 루드비히 미술관도(Museum Ludwig) 루드비히 부부가 바로 초콜릿 공장 사장님인데 먹는데 민감한 사장님들의 레이더가 꽂히는 곳이라 남다른 매력이 한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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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도 갤러리 같았던 V&A | 공부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실물 크기의 모조품도 예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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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도 등을 달아주었던 Tate Britain





사랑은 열린 문! 이 아니라, 영국의 박물관 · 미술관이 우리들에게 언제나 열린 문이다.

영국이 나를 환대해 주는 가장 강렬한 느낌을 받았던, 고맙고 따뜻했던 곳이다.


다음엔 내가 미술관을 왜 이토록 좋아하는지도 한 번 글로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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