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창

구병모

by앤나우

"상처는 사랑의 누룩이다."


나는 바카라을 읽을 때 겉을 둘러싼 띠지를 버리지 않고 그대로 바카라갈피로 쓰거나 모으는 취미가 있다. 두꺼운 바카라 한 권도 한 줄 요약처럼 한 문장으로 압축시켜 놓은 글자가 내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핵심을 울리기도 하고, 때론 나에게 '진짜 그랬어? 너도 같은 걸 느꼈어?'처럼 되묻는듯한 이 한 마디가 오랫동안 여운을 주기도 한다.

어떤 바카라은 띠지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테이프를 이용해 꽉꽉 눌러서 봉인해(?) 놓기도 한다. 편집자의 센스에 손뼉 칠 수밖에. 그리고 '절창'역시, 출판사와 편집자의 센스에 감탄했다.




검은 바탕에 빨간색 한 줄 지저분하게 난 삐뚤빼뚤한 상처 위로 단 두 글자가 보인다.




절창 切創


절창 : 칼이나 유리 조각 따위의 예리한 날에 베인 상처.

*아주 뛰어나게 잘 지은 시문.
*아주 뛰어나게 잘 부르는 노래. 또는 그 사람.



여러 뜻이 있는 낱말이지만 상처란 말이 조금은 생소하기도 하고 괜히 움찔거리게 만든다. 헷갈려하지 말라고 작가가(혹은 편집자가) 친절하게 한자까지 덧붙여났다. 이미 표지에서 힌트를 잘 받았기에 뜻이 1번이라는 것쯤은 쉽게 눈치챌 수 있지만. 구병모 작가는 이야기를 재밌게 끌고 가는 법을 잘 알기도 하지만 말맛을 살려 새로운 단어를 익숙하고 친숙하게 만드는 재주도 있다. 바카라을 펼쳤을 뿐인데 어느덧 어둑어둑 하루가 다 가고 바카라의 마지막 챕터를 읽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전작 <파과>에서도 비슷한 걸 느꼈다. 어디서 들어봤지만, 무슨 뜻이지? 하고 여러 번 사전을 뒤적거렸다. 읽다가 방해가 되냐고? 흐름에 조금도 방해는 없다. 내가 생각한 그 뜻이 맞았을 때 박수만 있을 뿐.

*혹은 틀렸을 때 좀 더 알고 싶은, 정확히 알고 싶은 갈증도 생긴다. 처음부터 무턱대로 단어를 찾기보단 무슨 뜻인지 나름대로 생각해 보고 찾아보면 두 배로 재밌다.




이 바카라은 정말 특이하다. 소설에선 등장인물의 이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인물의 이름조차 별로 중요한 게 아니구나, 하하, 이름일 뿐이네, 뭐. 이런 생각이 든다.


문오언, 외국인스러운 이 이름 역시


오언 : 焉(어찌 언, 오랑캐 이)과 烏(까마귀 오, 나라 이름 아) 자와 같이 서로 글자 모양이 비슷해서 틀리기 쉬운 글자.


언제든 오독될 수 있다는 걸 암시하는 듯하다. 실제로 이런 기능으로 쓰이라고 지은게 틀림없다. 이 바카라을 통해 유일하게 등장하는 등장인물의 '이름'이기도 하고. 근데 이게 또 진짜 이름은 맞는 걸까.

아니, 애초에 누구의 이야기가 진짜 맞는 건지, 등장인물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각자의 이야기 전달을 하는 작중 화자, 주인공(독서 선생님)의 말을 또 내가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건지, 바카라을 읽는 중에도 자꾸 의심하게 되고 결국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이 바카라은'절창'의 다른 뜻이 전부 들어가 있는 듯하다. 아주 뛰어나게 잘 지은 시문처럼 잘 쓴 소설이다. 아주 뛰어나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나오진 않지만 '음악'이라는 매개물이 등장하고 '음악 선생님'이 사건의 키를 쥐고 있다.


읽는 내내 든 생각은 '넷플릭스'에서 조만간 영화화되거나 드라마로 만들어지겠네. 성해나작가의 빠른 템포의 단편집 <혼모노>를 읽을 때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몰입감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아, 뭐든 다시 영화가 되고 만화가 되고 드라마가 되는 빠른 세상 속에 그러기 전에 읽을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상상력에 갇히지 않고 마음껏 상상하고 의심하며 소설을 읽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또 있을까.






나는

가끔은 읽는다는 행위에서, 그 행동 자체로도 위안을 받고 멈춰 서서 숨을 쉬었다. 읽다가 힘을 내기도 했다.


마음이 허할 때도, 슬플 때도, 별일 없을 때도, 별 일이 있을 때도 나는 그냥 읽었다. 내가 언젠가 쓴 목적 없는 공부하기처럼 누군가 숙제 내준 적은 없지만 숙제처럼 왠지 읽어나가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소설에서처럼 대부분 '읽는다'는 것'은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 안에 뭔가 타오르는 것 같다가도 아무것도 변화된 것이 없는 것 같아서 답답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그냥 막연한 믿음 같은 것이었다. 언젠가 쌓여서 폭발할 거라는 믿음. 읽은 전부가 내 것이 되는 것도 아닌데 읽고 난 후의 나는 뭔가 조금이라도 바뀌고 달라질 거라는 믿음.


차곡차곡, 조금씩이라는 말도 무색하게 그 변화는 너무 미세해서 눈치채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난 읽고 있는 그 시간이 좋았고 읽는 나 자신이 좋았다. 지금도 좋다.


읽기가 그냥 멈춰 있는 게 아니라는 거, 그것에서 더 중요한 건 누군가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사랑이라는 점에서 눈물이 났다.


그냥 손을 댔을 뿐인데 이왕이면 멀쩡한 곳이 아닌 '상처'에 손을 대는 행위가 무엇을 말하는지, 사람을 읽는다, 읽는다, 그래, 말 그대로 읽어 내려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꾸만 궁금해지고 알고 싶어진다. 절대 읽고 싶지 않은 마음, 읽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나에게 그런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일까.

내가 상처를 낸 사람일까.


하지만 띠지에 둘러싸인 말처럼 상처가 사랑의 누룩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저마다의 상처로 (파멸로 가기도 하지만) 대부분 더 가까워지고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착각에 빠지고 겹겹이 쌓인 그런 시간들을 통해 더 단단해지는 게 아닐까.





누군가의 상처에 손을 대서 그대로 흡수할 자신이 있는가,


그게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은 꼭 읽어보길 바란다.


난 슬프고 마음이 허전할 때 더 미친 듯이 탐독하곤 했는데 그래서인지 이름 모를 주인공의 마음에 더 큰 공감이 갔다. '소설'읽기는 사실 내가 온전히 누군가가 되어보는, 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나와 전혀 다른 성격, 외모, 나이의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바카라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기꺼이 그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너무 지나친 감정 몰입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소설 읽기가 힘들다고 하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결국 누군가가 될지도 본인의 선택이 아닐까. 꼭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 옆자리에 앉은 조용한 친구, 지나가는 행인, 가게 점원, 눈을 마주친 학생에도 언제든 내 마음을 실어볼 수 있다. 같은 상처의 자리에 손바닥을 마주하기만 하면 된다.



**나는 이 바카라을 야초툰 작가가 잘못 써서 제목이 처음엔 '철창'인 줄 알아서 철창에 갇힌 이야긴 줄 알았는데 <절창>이라는 반전이 있었다. 오독 오판, 철창 절창, 주제와도 맞닿은 것 같은 그대로 즐거운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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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어서 찾아본 <파과> 요즘엔 표지가 핑크핑크, 보랏빛이 한가득 | 선명한 형광빛! (미야자와 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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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덕분에 '난독'이란 말이 나오면 먼저 손이간다 | 읽다가 울어버린 그림바카라 (고정순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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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기자님의 신작이 얼마나 재밌는지, 영화 한 편을 보는, 아니 읽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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