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같이 걷자
그래그래, 다 알겠어.
하지만 그 말 자체가 너의 어떤 '시기'를 가리키는 말이지 네가 한 모든 행동의 정당성을 만들어주고 네가 뭘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거기에 면죄부가 되는 만능키는 아니야.
엄마도 그럼,
갱년기라서 그래.
갱년기라 짜증 내고 더 화를 내고 잔소리 폭격을 해도 될까?
시작되는 사춘기 앞에서 유난히 자주 꺼내는 사춘기라서 그래요 카드.
신랑과 나는 아이를 다그치거나 혼내는 대신 분명한 선을 그었다. 엄마도 아빠도 이미 한 번씩 다 지나온 시기긴 하지만 그게 너무 오래돼서 같은 감정으로 공감할 수 없다는 것도 인정했다.
하지만 사춘기라서 자기감정대로 행동하고 그걸 받아줘야 하고 버릇없는 행동이 모두 용인되는 시기는 아니라고 분명히 말해줄 필요가 있다.
아이는 학교에선 변함없이 예의 바르고 인사를 잘하고 자기 할 일을 성실하게 해내는 학생이었지만
자주 가는 학원이나 가정 안에서 모습이 조금씩 달라졌다.
1학년때부터 다닌 학원이나 매일 가는 학원은 아무래도 익숙하고 더 편안함이 있기도 할 거다. 그리고 매일 마주치게 되는 가족들, 특히 제일 만만한 동생은 짜증과 화를 쏟아내기 가장 쉬운 대상이 됐다. 가끔씩 동생 친구들에까지 한심하다는 듯이 한 마디씩을 쏘아붙이다가 나에게 크게 지적을 받았다.
막대할 권리는 아무 데도 없다. 매일 마주치고 함께 가족으로 지낸다는 이유로 막대하거나 짜증을 받아줄 필요는 없다. 더 소중히 대해줘야 할 가족에게 함부로 하거나 상처를 낸다면 이거야 말로 더 큰일이 아닌가.
나이터울이 5살이나 나서 동생이 마냥 어려 보이고 6학년인 큰 아이에겐 철없어 보이고 이상해보일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한가족으로, 한 팀으로 같이 울고 웃고 성장해 나가는 사람들이란 걸 잊어선 안된다. 우리 가족이 뭐가 더 대단하고 내세울 게 있는 게 아닌, 그냥 평범한 가족이지만 식구, 말 그대로 같이 한 번씩 밥을 먹고 슬플 땐 서로 같이 울어주고 재밌는 게 있으면 좀 같이 웃고 그렇게 예전처럼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형아가 5학년 때까지만 해도 나랑 닌텐도도 좀 해주고
보드게임도 하고 그림도 같이 그렸거든.
6학년이 되더니 맨날 '나가, 나가, 내 방에서 나가!'이 말만 해.
맨날 소리쳐, 나한테.
엄마, 형아가 좀 이상해!
잠자리에 들기 전, 둘째 아이의 속상한 토로가 이어진다. 이전 형아가 그리운듯한 말을 들으면 끄덕끄덕 공감이 가서 안쓰럽다가도, 이제 예전처럼 형아 방에 들어갈 땐 벌컥벌컥 문 여는 건 안된다고 말해준다. 꼭 노크를 해줘야 한다고, 엄마도 저맘때는 누가 내 방에 그냥 들어오는 것도 싫었다고. 앉아서 공부 좀 하려 하는데 공부해라, 청소해란 소리가 제일 싫었다고 말해주니 그럼 할머니는 어떤 식으로 반응 보였냐고 묻는다. 괜히 머쓱해지고 미안해지는 반성의 시간이다.
어쨌든 둘째도 똑같은 시기인 사춘기가 왔을 때 네가 좀 더 큰 형이란 이유로 온갖 짜증과 나쁜 행동을 받아줘야 하는 게 아니듯이, 동생도 부모에게도 늘 지켜야 할 선과 예의가 있다는 건 말해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올 겨울, 언니네로 갔던 2개월 내내 삐딱선을 탔던 아이.
너에게 좀 더 넓은 세상을, 말도 안 되는 어메이징 한 건물과 문화와 역사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아이의 첫마디는
나를 여기로 왜 데려왔어요?
오겠다고 한 적도 없는데.
그냥 집에서 삼각김밥 사 먹으면서 알아서 밥 차려먹고 학원 다니면서 공부하고 내 공간에서 내 친구들과 우리 동네에 있으면 되는데 엄마는 왜 나한테 묻지도 않고 내 두 달이란 시간을 늘 마음대로 결정해요?
절대 밖에 나가서 내 이름을 00아, 000 이렇게 부르지 마세요.
한국말로 말 걸지도 마시고요.
아니, 네 이름이 00인데 이름도 부르지 말라고. 한국인인 게 싫은 건가?
그럼 여기는 토마스 기차의 나라니까 거기서 따온 '토마스'라고 불러줄까? 아님 엄마랑 이모가 영어로 말을 걸어줄까? 웃으라고 언니와 함께 농담을 건네니, 버럭 화를 내면서
이모도, 엄마도, 다 싫어요! 싫다고!
그냥 모른 척, 나를 좀 내버려 둬요!
순간, 할 말도 잃었고, 반항적인 태도에 무슨 논리도, 차근차근 이유를 설명해 줄 이성도 더 이상 남아있질 않았다.
그저 내 욕심이었나도 싶고, 저 맘 때쯤 나도 낯선 나라, 낯선 환경에서 두 달을 살면 당연히 저런 불만과 불안을 갖게 되는 걸까, 아이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애썼다. 그래도 이모와 이모네 식구들도 저렇게 다들 애쓰며 우리를 위해 배려해 주고 양보해 주는데 늘 삐딱선을 타고 반항하는걸 마냥 우쭈쭈 봐줘야 하는 걸까.
하 ···
혼도 내고 버릇없을 땐 혼내고, 살살 달래서 데리고 나가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한탄하고 뭐, 그런 시간을 보냈다. 나갈 때마다 아주 속이 부글부글 하기도 했다. 뭔가 달리 뾰족한 수도 생각나지 않았고 낯선 외국에서 시간 가는 게 아까웠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냥 나라도 행복하자, 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더니 좀 더 편안해졌다. 나는 언니랑 같이 외출하거나 혼자 미술관과 박물관에 돌아다니고 런던 투어를 했다.
너는 그럼, 너 좋을걸 해라.
거기서도 둘째는 둘째대로 매일 언니네 집 앞 놀이터와 코너샵에 들러야 했고 큰 아이는 자기를 외국인으로 보는 눈 자체가 싫다고 후드만 잔뜩 뒤집어쓰고 다녔다.
(*나중에 이야기해 보니, 자기랑 우리 가족들을 중국인으로 오해할까 봐 한국말 금지령, 자기 이름 금지령을 내렸다는데, 우리가 이미 아시아인이라는 것과 차별을 받기도 전에 먼저 스스로 편견을 갖고 인종을 차별하는 태도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런던은 뮤지컬이 정말 유명한데, 한국에서 상상도 못 할 가격으로 티켓이 나왔을 때도(반값 좌석 할인!) 두 아이는 서로 별거도 아닌 걸로 좌석에서 발차기까지 하며 투닥거렸다. 부글부글 했지만 뮤지컬을 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민폐를 끼칠 순 없으니 양쪽을 진정시키고 계속 혼잣말과 대화를 이어가는 둘째를 따로 불러내서 주의를 줬다. 다행히 아이들 옆 좌석에 사람들이 앉지 않아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둘째가 계속 말을 걸어서 그게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는 과정에서 첫째가 화를 내고 동생 머리를 한 대 쥐어박은 데서 서로 발차기가 시작됐다. 뮤지컬이 제발 좀 빨리 끝나길, 이렇게나 간절히 바랐던 적이 없다.
밤 중에 우리가 리빙룸 전체를 차지하고 거실 소파를 침대처럼 만들고 위에서 내리는 침대도 하나 꺼내서 거기선 첫째가, 소파침대에선 나랑 둘째가 잤는데 거실엔 중간 문도 있어서 거기가 마치 커다란 원룸 우리 셋만 쓰는 호텔방 같았다. 그곳에서 그래도 하루가 갈 때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다. 낯설기도 했고 미우나 고우나 얼굴도 마주하고 같은 공간에서 잠들고 눈을 떠야 했으니까. 이미 3학년 때부터 자기 방을 쓴 첫째 아이와 함께 잠들기 전까지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새롭고 특별했다. 아이들이 각자 독립해서 큰다면 아마도 이 시간을 그리워하겠구나, 다른 게 좋은 게 아니라 우리가 여기 와서 함께 자고 매일 붙어있고 지겹도록 얼굴을 마주했던 이 시간이 나중에 먼 훗날 생각날 것 같았다.
질풍노도의 시기, 감정이 오락가락 한 아이는 자기가 왜 그렇게 까칠하게 굴었는지, 낯선 나라에서 무엇이 무서웠는지 묻지 않아도 먼저 술술 이야기했고 어쩔 땐 미안하다는 사과도, 자기반성도 이어졌다. 가만히 두면 스스로 깨닫고 사과도, 자기 이야기도 제법 잘했다. 아이의 태도는 누그러졌고, 새로운 결심들도 이어졌다.
그리고 두 아이 모두 바로 옆에 있는 엄마는 보이지도 않는지 한국에 있는 아빠가 너무 외롭겠다며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잠자고 있을 아빠를, 온라인 게임에서 한참 바삐 일하고 있을 아빠를 그리워했다. 어느 날은 두 시간 동안 아빠가 그립다고 울어서 졸지에 뻘쭘해진 나는, 그냥 한국에 있는 아이들의 아빠가 부러워지기도 했다.
지나가는 시기, 사춘기라도 해서 모른 척도 때론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모든 행동들에 무심한 듯 반응은 회피이지, 양육이 아니다. 자기의 사춘기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권리는 없다. 이유 없이 눈물 나고 화도 난다면 어떻게 하면 그걸 좀 줄일 수 있을지 이야기하고 서로 터놓고 꺼내보는 시간을 한 번씩 가져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물론 아이의 공간과 시간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엇나간 행동에 대해 무심해선 안된다는 이야기다.
아이들과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그냥 뚜렷한 목적 없이 꼭 바깥 산바카라을 가는데 어느 날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뛰다만 와도, 땀을 뻘뻘 흘리고 우리 넷이 잡기 놀이만 하고 와도, 달밤에 체조만 하고 와도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이의 모든 것을 몰라도, 그냥 기다리고 아이가 숨통이 트이고 세상으로 좀 더 긍정적으로 밝게 이어지고 나오길 바라고 소망하고 기도할 뿐이다.
부족한 엄마지만 엄마도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것 같아도 늘 네 옆에 있다고, 네가 먹고 싶어 하는 거, 좋아하는 거, 놓치지 않고 같이 챙겨주고 싶다고 다가가주고 싶다.
-이 시기 남자아이들은 간식으로 먹고 싶은 거, 맛있는 걸 챙겨주는 건 다 제일 좋았다고 답했기에,
^^ 먹을 걸로 꼬시게 될지도 몰랐지만 뭐 그걸 해줬다고 꼬셔지지도 않지만 네가 잘 먹고 즐겁게 웃었다면 나는 그저 기쁘다.
나도 사춘기를 꽤나 아프게, 심하게 앓았다. 엄마가 선물해 준 꽤 비싼 가죽 지갑이 있었는데 어느 날은 거기에 화가 나서 엄마 욕을 잔뜩 써놓고 침대 아래 꽁꽁 숨겨둔 적이 있다. 엄마가 방 청소 하다가 그걸 발견하고 화도 내지 않으시고 그냥 어이없다는 듯이 웃고 넘어가셨는데, 평상시 우리 엄마라면 나를 미워하고 화를 내야 하는데, 거기에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온갖 욕을 썼는데 왜 그러지? 엄마 반응이 이상해서, 우리 엄마가 맞나 한참을 쳐다본 적도 있다. 늘 짜증과 화가 많았던 엄마의 반응이 낯설어서 내가 흠칫하고 오히려 한참을 엄마에 대해 생각했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엄마는 사실, 나를 이기려고, 억누르려고 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아마도 그때 깨우쳤던 것 같다. 내 행동이 부끄럽고 후회돼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화가 나서 못 참을 정도로 복수하고 싶어서 펜을 들었던 건데 엄마 마음에 상처를 남긴 것 같아서 죄송했다. 엄마가 사준 소중한 선물에 지워지지 않는 펜으로 긋고 욕하는 행동이, 내가 결코 이긴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엄마를 이겨서 뭐 할 건데? 결국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아세톤과 기름을 이용해서 그 욕을 지워서라도 다시 깨끗한 지갑을 내밀어주었던 엄마 마음을 내가 배웠던 것 같다.
비싼 건데, 엄마가 큰맘 먹고 사준 건데, 지갑을 닦으며 건넨 엄마의 말이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아이의 사춘기도 성급한 나의 잔소리 폭격이 아니라, 때론 조용한 기다림과 건강한 가치관, 그리고 누구보다 널 사랑하고 응원한다는 그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