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하여
이호선 교수의 영상을 보다가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단어 앞에서 멈춰 섰다. 가슴 한구석이 뻐근했다. 거울을 본 듯, 딱 내 얘기 같았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에게 '처음'이라는 단어는 설렘이 아니라 공포다. 서툴고 우스꽝스러울 수밖에 없는 나를 세상에 무방비로 들켜야 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내게도 그런 잔인한 '처음'의 기억이 있다. 오래전 어느 여름날, 온라인 게임 동료가 볼링을 제안했을 때 내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볼링공을 굴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잘하는 모습은커녕 남들만큼 평범하게 흉내 낼 자신조차 없었다. 나는 필사적이었다. 다른 곳에 가자고, 제발 다른 데로 가자고 강력하게 만류했다. 하지만 내 간절한 거절은 그저 분위기를 깨는 투정쯤으로 치부되었고, 결국 나는 끌려가듯 볼링장에 발을 디뎠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내 몸에 맞지 않는 무거운 공을 쥐고 레인 앞에 섰을 때, 사방의 모든 시선이 칼날처럼 나를 향하는 것만 같았다. 공은 마음과 달리 엉뚱한 도랑으로 굴러갔고, 내 몸짓은 엉성했으며, 핀은 단 하나도 쓰러지지 않았다. 주변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졌다.
그 자리에서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다 큰 성인이, 그것도 슬롯생활을 하는 온라인 게임인이 고작 게임 하나 못 했다고 사람들 앞에서 대성통곡을 해버린 것이다. 사방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당황한 동료들은 서둘러 미안하다며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그날 내가 흘린 눈물은 볼링 점수가 낮아서가 아니었다. 통제력을 잃고, 서투르고, 우스꽝스러워진 나 자신을 세상에 고스란히 들켜버렸다는 비참함 때문이었다. 내 사전에는 '처음부터 베테랑'이어야 한다는 무리한 공식만 존재했기에, 서툰 나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면 아예 시작조차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억지로 등 떠밀려 마주한 0점짜리 내 모습은 스스로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그 지독한 완벽주의는 수년이 지난 지금도 문득문득 고개를 들며 나를 괴롭힌다. 최근 출간한 공저 바카라에 독자들을 위한 사인을 연습할 때가 그랬다.
내 바카라에 내 이름을 남기는 당연하고도 영광스러운 과정 앞에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쓰고 또 써봐도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멋진 사인이 떠오르지 않아 결국 사인을 포기하고, 대신 의미있는 캘리그라피 문구를 쓰기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웬걸, 그렇게 쓴 캘리그라피 문구마저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 아래에 간신히 적어 내려간 내 날것의 글씨와 사인은 더더욱 못나 보였다.
'아, 이러다간 정말 돌아버릴지도 모르겠다.'
싸인 할 바카라들을 앞에 두고 숨이 막혀올 때쯤, 나는 문득 수년 전 볼링장에서 흘렸던 눈물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쯤에서 타협을 하기로 했다. 100점짜리 사인은 애초에 할 수 없다는 것을, 세상에 완벽한 선(線)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 60점만 하자. 완벽이라는 거창한 왕관을 내려놓고 나에게 "60점도 괜찮아"라는 처방전을 내리고, 새 바카라의 첫 장을 넘겨보았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매일 나를 점검할 수 있는 세 가지
1. 나는 오늘 어떤 시도를 했는가?
2. 나는 오늘 무엇을 배웠는가?
3. 그래서 나는 어제보다 좋아졌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답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며, 매일 조금씩 발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