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 상실

냄새 없는 세계에 갇히다.

by한빛나

냄새가 사라졌다. 바쁜 일상에 치여 살다 보니, 일상에서 향기가 지워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후각에 이상이 생겼음을 확신한 건 아이와 산바카라을 나섰을 때였다.

같은 동에 사는 예순 남짓한 남자가 담배를 피우며 곁을 지나갔다. 평소라면 코를 찌르는 매캐한 연기에 인상을 찌푸렸을 텐데, 아무런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곁에 있던 아이가 코를 잡으며 외쳤다.

“윽, 냄새! 저 아저씨 진짜 나쁘다!”

아이의 목소리는 생생한데, 내 코끝은 적막했다.

'어떻게 된 거지? 코가 막혔나? 환절기라 비염 때문인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집안 곳곳을 킁킁거리며 냄새를 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무향의 세상이다. 다급한 마음에 코 세척을 하고 약까지 뿌려보았다.

조금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기도 한 모호한 상태로 하룻밤이 지났다.


다음 날 점심, 남편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쌀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평소라면 가게 문을 열자마자 밀려오는 진한 육수 향에 기분이 들떴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고수를 아무리 듬뿍 넣어도 향이 느껴지지 않았고, 음식은 종이를 씹는 듯 밋밋했다.

“여기 주인이 바뀌었나? 왜 이렇게 맛이 없어졌지?”

단골집의 배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서늘한 예감이 스쳤다. 이건 식당의 문제가 아니라, 내 몸에 생긴 '보통이 아닌 문제'라는 확신이 들었다.

당장 병원에 달려갔어야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사태의 심각성을 온전히 깨닫지 못했다. 요리를 할 때 냄새는 나지 않아도 맛은 어느 정도 느껴졌기에, 그저 불편한 정도라 여기며 며칠을 더 흘려보냈다. 나의 감각이 하나둘 전원을 끄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로 말이다.


주말이 되어서야 무거운 발걸음으로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접수처에서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고 말하자, 늘 사무적이던 간호사의 표정이 일순간 심각해졌다. 증상의 시작 시점과 정도를 묻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드디어 내 차례.

"비염도 문제지만, 후각에 이상이 생기는 건 아주 심각한 신호입니다."

우선 막힌 통로를 열고 후각과 미각 검사를 정밀하게 진행해 보자고 하셨다. 평소 겁이 많아 코 깊숙이 기구가 들어가는 검사라면 질색하던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사태의 위중함을 직감하고 입술을 꽉 깨물며 견뎌냈다.

기다란 거즈가 코끝을 지나 뇌 근처까지 닿는 듯한 생소하고도 예리한 통증이 밀려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이어진 검사에서 내 감각의 성적표는 처참했다. 후각 검사지에 코를 가까이 대 보아도, 그 어떤 냄새의 흔적조차 잡아낼 수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미각은 반응하고 있었다.

추가로 알레르기 검사까지 마치고 복도 의자에 앉아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정적 사이로 걷잡을 수 없는 불안이 스며들었다.

'정말 영영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다시 불려 들어간 진료실. 의사 선생님이 던진 첫마디는 차가운 선고와도 같았다.

"후각이 아예 나가버렸네요."


그날 이후, 내 일상에는 새로운 루틴이 자리 잡았다. 아침저녁으로 후각 키트 점수를 기록하고, 잠들기 전 비강 스프레이를 사용하는 일. 감각을 되찾기 위한 가장 절박한 시간이 되었다. 향기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설명하기 어려운 답답함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 안에 갇힌 것처럼, 세상과 한 겹 떨어져 있는 기분이었다.


후각이 사라진 세상은 단순히 '냄새를 못 맡는 것' 이상의 문제였다. 향기가 빠져나간 일상은 입체감을 잃고 평면적으로 변해버렸다.

가장 먼저 찾아온 공포는 '위험'에 대한 감각이 무뎌졌다는 사실이었다. 주방에서 가스 불을 켜거나 요리를 할 때, 혹시라도 음식이 타지는 않는지 혹은 가스가 새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기 위해 수시로 코를 들이밀어야 했다. 평소라면 무의식중에 감지했을 위험 신호들을 눈으로만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슬프게 한 건, 사랑하는 이들의 온기를 온전히 느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잠든 아이의 정수리에서 나던 그 꼬순내, 퇴근한 남편의 옷깃에 묻어온 바깥바람의 냄새, 비 오기 직전 창문을 통해 흘러들어오던 눅눅한 흙 내음까지.


숨 쉬듯 당연하게 맡아온 냄새들이 사실은 내 일상을 지켜주던 소중한 것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향기는 잊고 지낸 추억을 데려오고 마음 한구석의 설렘을 깨워주곤 한다. 내가 이 세상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나만의 다정한 비밀 통로였다.




처방받은 약을 빠짐없이 복용하고, 지루한 재활 훈련을 하루하루 이어가 본다.

언젠가 다시, 계절의 냄새가 내 삶 속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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