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벽돌 건물들이 하나둘씩 부서지고 그 자리에 새 빌라들이 들어섰다. 그 틈새에 오래된 3층짜리 빌라가 홀로 남았다. 빨간 얼굴로 작은 땅에 홀쭉하니 끼어 살아남았다. 빌라에 사는 사람들은 낡은 차를 벽 쪽으로 바짝 붙여 세우고, 길가로 차 머리를 삐죽이 빼놓은 채 계단을 오르내렸다.
초록색 철망이 낡은 빌라와 정비된 도로를 갈랐다. 철망을 끼고 좌회전을 해 걷다 보면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그 길을 지날 때면 철망 틈새로 고개를 내민 채소들이 먼저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아침이 되면 철망 안쪽 평상에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상추, 깻잎을 다듬은 후 커다란 고무대야에서 물을 바가지로 퍼 텃밭에 뿌렸다.
빌라 입구에는 뼈대만 남은 유모차 두 대가 늘 주차되어 있다. 아기 볼처럼 말캉거리던 시트가 벗겨지고 골격만 남은 채. 등이 굽고 자그마한 두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유모차를 붙들었다. 유모차는 아기들이 자란 뒤 뼈대만 남아 두 할머니의 지팡이가 되었다.
어르신들은 좁은 골목골목을 다니며 재활용봉투를 뜯고 그 안에서 병을 꺼낸다. 유모차 아래 바구니에 병을 담고, 옆에 놓여있는 박스는 잘 접어 유모차 위로 쌓는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빌라로 돌아오면 빨간 토마토, 초록색 호박, 깻잎이 바람에 몸을 흔들며 할머니들을 맞이하곤 했다. 그들은 유모차에 모아온 재활용을 낑낑거리며 빌라 귀퉁이에 쌓아놓는다. 모서리에 쌓인 각종 잡동사니는 오래된 빌라를 감싸 더욱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작년 겨울 텃밭 식물들은 차가워진 공기와 눈을 맞은 뒤 서서히 앙상해졌다. 힘없이 바닥으로 고개를 떨구자, 할머니들은 그 위에 파란 천막을 씌우고 다양한 크기의 고무대야를 덮어 놓았다. 텃밭과 어르신들은 그렇게 겨울을 났다. 살점 없는 유모차만 덩그러니 서서 추위에 떨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다시 유모차를 끌고 강아지 산바카라을 시키려면 이 겨울이 어서 끝나야 할 텐데.'
빌라에서 나오질 않는 할머니들을 생각하며 초록철망을 지나가곤 했다.
따뜻한 봄이 찾아왔을 때 욕지거리를 하며 싸우고 있는 할머니들이 보였다. 깜짝 놀라 잠시 멈춰 상황을 파악하니, 텃밭 영역 침범이 싸움의 이유였다. 왜 남의 땅에 모종을 심느냐며 가위를 휘젓고 있었다. 그렇게 살벌하게 싸웠던 할머니들은 다음날 평상에 옹기종기 앉아 구황작물을 나눠 먹었다.
어느 날, 시댁에 다녀온 남편이 말했다.
"어머니 빌라도 재개발 구역에 포함됐대."
"재개발되면 좋은 거 아니야?"
내 물음에 남편이 고개를 저었다.
"돈이 있을 때나 좋지. 보상금을 받아도 지금 집보다 훨씬 작은 집 밖에 못 사."
그 말에 어린 시절 흙장난이 떠올랐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손등 위에 흙을 덮고 조심조심 다져, 손을 빼내면 작은 집이 생겼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다. 금세 무너져 흩어지는 모래알이었다. 헌 집을 내주어도 새 집은 생기지 않았다.
낡은 빌라가 자꾸 눈에 밟혔다.
빨간 벽돌집들이 모두 새 건물로 바뀌면, 그 집에 살던 두꺼비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아침 출근길, 작은 텃밭의 토마토는 더 붉게 익어가고 있었다. 애정 섞인 욕지거리를 주고받으며 할머니들은 평상에 둘러앉아 고구마를 나눠 먹고 있었다.
'이곳은 좁아서 재개발 못 하겠지.'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기며 빨간 벽돌집과 할머니를 흘긋거렸다. 두 대의 유모차가 묵묵히 할머니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