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이라는 말은 참 편하다. 그냥 일어나고, 그냥 출근하고, 그냥 밥을 먹고, 그냥 잠든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게 흘러가고, 흘러가는 대로 두면 하루가 알아서 끝나 있다. 나는 이 말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데에는 '그냥'의 힘이 필요할 때가 많다.
다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그냥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손에 잡히는 것이 없는 게 아닐까. 선생님 말씀대로 초는 소리 없이 녹는다. 소리가 없으니 녹는 줄도 모르고, 모르는 채로 하루가 간다.
옛날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는 감옥에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은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이라고. 플라톤의 『크리톤』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천오백 년도 더 된 말인데 지금 들어도 낯설지 않다. 사람은 그만큼 오래전부터 같은 것을 고민해 왔다.
그런데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쉽게 말할 수 없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런 것은 남의 눈으로 재는 자이고, 그 자로는 내 불이 어떻게 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잘 산다는 것은 훨씬 조용하다. 내가 지금 불을 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사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날마다 잘해 낸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날은 그냥 살아도 된다. 아니, 그냥 살아 내는 것만으로도 벅찬 날이 있다. 그런 날에도 내가 불을 들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그것도 잘 사는 쪽에 속한다. 잘 사는 것과 그냥 사는 것은 서로 반대편에 있지 않다. 같은 하루를 알고 지나느냐, 모르고 지나느냐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을 먼저 떠난 사람들의 하루가 어떻게 타고 있었는지 나는 다 알지 못한다. 내 양말을 잡아당기던 할아버지도 그렇다. 다만 그분에게도 저마다의 불이 있었다는 것은 안다. 그러니 오늘 내 불을 알고 사는 것이 그분들의 시간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오늘도 하루가 지나면 하루만큼 줄어들 것이다. 그래도 오늘 내가 이 불을 들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것으로 오늘은 그냥 사는 날이 아니라, 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