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냄새, 우동

아버지와의 추억

by고추장와플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짬뽕을 드셨다. 땀이 많은 할머니를 닮아 아버지는 땀이 많았고, 나는 또 우리 아버지를 닮아 땀이 많다. 게다가 아버지는 매운 것을 잘 드시지 못하는데 드시면 그렇지 않아도 줄줄 흘리는 땀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나도 그런 아버지를 닮아 맵찔이이다.


아버지는 사실 짬뽕을 좋아하시지 않는다. 매운맛은 어느샌가 트렌드가 되었고, 더 맵고 자극적인 것이 더 인기가 있었다. 중국집에서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던 메뉴는 우동이었다. 담백하고 자극적이지 않으며 해물이 들어가 시원한 중국집 우동은 메뉴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아버지는 해물, 국물, 면의 조합을 포기할 수가 없었고 우동대신 짬뽕을 드시기 시작했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땀과 함께. 맵찔이 딸이 보기에 아찔해 보이는 벌건 국물을 아버지는 크으 시원하다 라며 들이키셨지만 나는 아버지가 왠지 안쓰러웠다. 세상의 유행은 아버지의 선택권을 빼앗아 갔다.


부산 한 달 살기를 하며 찾은 남천동의 모 거리, 아침도 먹지 않은 나는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오후 두 시가 되어서야 어느 중국집에 들어갔다. 골목을 걷다 얻어걸린 중국집이었다.


메뉴를 읽어 내려가다 보니 보이는 반가운 메뉴.

우동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우동을 시켰다. 우동을 먹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20년은 된 것 같다. 주문을 하고 앉으니 사장님은 조리를 시작하신다. 우동국물 냄새는 나를 1995년으로 다시 데려다 놓았다. 당시에는 토요일에도 학교를 갔다. 오전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늘 레니게이드가 켜져 있었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가죽재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주인공을 보며 어린 나이에도 저 아저씨 참 덥겠다라고 생각을 했다. 검은 머리의 인디언 아저씨도 늘 인디언의 지혜를 통해 흥미진진하게 사건을 해결했다. 레니게이드를 보며 아버지는 우동을, 나는 짜장면을 먹는 것이 주말의 시작이었다.

지금처럼 음식점에서 제공하는 1회용 용기가 아니라 상호가 적인 중국집 그릇이었고 뚜껑은 따로 없어 플라스틱 랩으로 여러 번 새지 않게 포장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나무젓가락으로 가장자리를 긁어내 랩을 벗겨냈다. 그러면 짭조름한 바다의 향기가 섞인 해산물 냄새와 야채육수 향이 올라왔다. 사실 짜장면의 냄새보다 나는 우동의 냄새가 더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는 그때 그렇게 땀을 많이 흘리시진 않으셨다. 아빠의 우동냄새는 나에게는 토요일의 냄새로 기억된다. 짬뽕처럼 칼칼하고 자극적인 향이 아닌 뭉근하고 은은하면서도 짭조름한 향, 그리고 석양을 등지고 흩날리는 장발의 미국 아저씨.


우동이 나오자마자 나는 그때로 돌아갔다. 우리의 주말의 시작을 알리는 그 우동 냄새.

늘 아버지의 우동도 탐났던 내게 아버지가 밥공기에 덜어 주었던 우동, 짜장면은 포기할 수 없지만 우동도 먹고 싶었던 나는 아버지의 우동을 늘 얄밉게 뺏어 먹었다.


아버지가 덜어 주던 그 우동 맛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했다. 아버지가 더 이상 메뉴판에 없는 우동을 먹을 수 없어서 인지, 지금은 백발로 가득하지만 혈기왕성했던 나 보다 어렸던 아버지의 세월이 야속해서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남천동에서 우연히 들어간 중국집에서 나는 토요일의 냄새를 맡았다. 아버지와 나의 토요일 냄새를.

이번 주말에는 아버지와 함께 우동이 있는 중국집에 가 봐야겠다.


짬뽕만 있는 곳 말고 우동도 있는 중국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