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여행의 기억은, 고독이 아닌 엄마와 주고받는 고성이었다.
“죽고 싶어 환장했어?”
복부에서부터 차오른 소리가 후커밸리에 울려 퍼졌다. 메아리 대신 다른 고성이 들려왔다.
“조용히 하고 가만히 있어!”
우리 모녀는 이국만리 뉴질랜드 남섬 후커밸리 풀숲을 사이에 두고 서로 듣지 않는 고성을 내뱉고 있었다. 모처럼 고독을 즐기고 싶어 떠난 여행에서 고독 대신 고성을 내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남섬 여행 4일 차,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 후커밸리 트래킹 초입, 5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엄마는 빈약한 흔들 다리 위에서 나를 찍어주다가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쳤다. 사람들의 발걸음에 맞추어 흔들거리던 다리에 걸렸을 법도 하건만 야속한 갤럭시는 흔들 다리 사이를 날쌔게 지나 저 아래 빙하 급류로 자취를 감추었다.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갤럭시를 바라보듯, 엄마는 발을 동동 굴렀다. 엄마는 그 발을 그대로 동동 굴리며 빙하가 흐르는 물가로 갔다. 내가 대신 가겠다고 만류했지만, 겁 없는 한국 아줌마는 큰 바위와 수풀을 헤치고, 딸년의 손까지 뿌리치며 말 그대로 급하게 굴러갔다.
나라면 1%의 가능성이 있더라도 갤럭시가 내 손을 떠났을 때, ‘이미 내 것이 아니다.’ 하고 말았을 거다. 더군다나 후커밸리는 마운트 쿡의 만년설에서 내려오는 급류 빙하수가 흐르는 계곡이다. 블랙홀과 색만 다를 뿐, 연어도 그 속도를 못 이기고 얼어 죽을 듯한 에메랄드빛 물속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고운 물빛이라도 헤집을 생각 따윈 그때도, 지금도 나지 않는다. 물론 급류 빙하수가 아니었더라도 난 포기가 빨랐을 테지만 말이다.
엄마는 나와 달리 자기 물건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이다. 기어코 급류 바로 앞 바위에 쪼그리고 앉아 서슬 퍼런 에메랄드빛 물을 손으로 크게 저어, 물살을 가르며 물건을 찾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휘휘 젓는 손을 따라 화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오르락내리락.
난 분을 이기지 못해 다시 길길이 소리를 지르고 날뛰었다. 후커밸리 트랙에서 아시안 걸의 지랄발광이 시작되었다.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손쓸 겨를도 없이 급류에 휘말린다, 죽으려고 환장했냐, 올라오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대체 그 낡고 낡은 휴대전화가 자기 목숨을 담보할 만한 ‘절대 반지’나 ‘인피니티 스톤’ 쯤의 가치가 있단 말인가. 그만하고 올라올 때도 되었는데 집착에 사로잡힌 한국 아줌마는 조용히 하고 가만있으라고 도리어 윽박지른다. 나는 먼 타국 땅 두메산골에서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싶어 외치는, 딸년의 근심일랑 나 몰라라 하고 한결같이 블랙홀에 빠진 갤럭시에 몰두하는 엄마에게 질렸다.
우리는 그렇게 후커밸리 트랙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 20여 분이 지나서야 내 곁으로 돌아와 시뻘게진 팔을 보이는 엄마에게 나는 다시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잠깐이라도 엄마와 떨어져 있어야 숨을 쉴 것 같았다.
“죽고 싶어 환장했어? 당장 차에 들어가 있어!”
이렇게 내지르고 차 열쇠를 던져준 채로 나는 씩씩대며 트래킹을 이어갔다. 보통 10~20분이면 화가 식는데 전환점까지 가도록 분이 풀리지 않는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하소연하며 간식으로 싸간 사과를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그리고 다시 분노의 발길로 후커밸리 트랙을 완주하여 차로 돌아왔다.
내가 땀을 흘리며 차로 돌아오자, 엄마도 어쩐 일인지 땀을 흘리며 자랑스레 말했다. 기어코 미련을 버리지 못한 엄마는 휴대전화를 떨어뜨린 곳에 다시 갔다 왔다고 했다. 거기서 키 큰 덴마크 여자가 엄마가 서성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손수 팔을 걷어붙이고 찾아주려 하더라고 기쁘게 말했다. 비록 갤럭시는 찾지 못했지만 덴마크 여자의 도움이 엄마에게 기쁨이 되었던 걸까.
나는 안 될 일에 왜 저럴까 싶어 엄마가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론 이역만리타국에서 소통의 통로를 잃은 것이 얼마나 갑갑할까 싶어서 안 됐다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내 분노가 쉬이 사그라지지는 않았다.
앞으로 절대 엄마와 단둘이 해외여행은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같이 여행하는 사람의 염려를 모르는 엄마와의 둘만의 해외여행은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후커밸리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운 뒤에도, 내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여행 내내, 그리고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나는 엄마를 알게 모르게 학대했다. 그 감정들이 섞여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이 더 싫어졌고, 독립의 기회만 엿보게 되었다.
후커밸리 트랙에서의 사건은 그동안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쌓인 감정들의 도화선이었다. 독립을 외치기 시작한 것은 단순히 그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켜켜이 부모님으로부터 받아 묵힌 감정과 말들이 나를 자주 독립군(?)으로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치하지만, 그때는 한마디 한마디가 고깝고 나를 분노하게 했던 말들이다. 이 말들은 나로 하여금 그저 독립이 아닌 고독한 독립이 되길 갈망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