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성지
1.순교의 넋이 머무는 땅 – 고난의 밀사
어농 성지는 1987년 고(故) 김남수 안젤로 주교님에 의해 성지 축복식이 거행되며 성역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축복식이 거행되던 날 어농 성지의 대표 순교복자인 윤유일 바오로의 동상이 순교자 묘역에 제막되기도 하였습니다. 묘역에는 을묘박해 순교자 3위, 신유박해 순교자 14위, 총 17위의 순교자를 모셨는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하느님의 종이었던 17분을 모두 시복하셨습니다.
윤유일 바오로는 한국천주교회 최초의 사제인 주문모 신부님을 우리땅에 모셔 온 가장 극적이고 감동적인 역사의 주인공입니다. 당시 한국교회는 미사를 집전해 줄 사제가 필요했습니다. 윤유일 바오로는 당시 조선에서 제일 가까운 곳인 북경교구에 알리고, 교구장이었던 구베아 주교님께 사제파견을 요청하였습니다.
당시 구베아 주교님은 조선에 자발적인 신앙공동체가 존재함을 보고받고 놀라셨다고 합니다. 윤유일 바오로는 북경에 머무는 동안 세례를 받았으며, 조선인 신자로서는 최초로 견진성사를 받는 은총을 누렸습니다. 이 특별한 만남은 구베아 주교님이 한국천주교회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첫 만남 이후 3차례나 북경을 오가며 험난한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윤유일 바오로 일행은, 1794년 마침내 그토록 고대하던 조선 땅의 첫 목자인 주문모 신부님을 모셔왔습니다. 그해 12월 입국한 주문모 신부님이 1795년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집전하던 그 순간, 사제와 신자들이 느꼈을 벅찬 감격이 어떠했을지 가늠조차 어렵습니다. 그 오랜 기다림 끝에 마주한 성스러운 미사 앞에서,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찼을 신자들의 얼굴을 상상해 봅니다.
현재 어농 성지의 순교자 묘역에는 주문모 신부님의 가묘가 마련되어 있고, 그 앞에는 신부님의 동상이 우뚝 서 있습니다. 그 자리에 서면 당시 신자들이 느꼈을 벅찬 감격이 되살아나는 듯하며, 척박한 이 땅에 부어주신 하느님의 크나큰 은총을 다시금 마음 깊이 되새기게 합니다. 또한 사제가 없어 미사가 간절했던 시절, 눈물로 하느님을 찬양했던 선조들을 떠올려봅니다. 언제 어디서나 성찬의 전례에 함께할 수 있는 지금, 우리의 오늘이 얼마나 커다란 은총인지 새삼 어농성지를 순례하면서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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