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그렇게 재밌어요?"
4부. 남들의 네 번째 질문. 근데 거길 왜 나왔어?
"개발 말고 운영은 어때요?"
입사한 지 단 6개월 만이었다. 쟁쟁한 인재들이 줄 서는 그 회사의 개발자에서, 운영 담당으로 좌천된 것은.
나는 갈피를 잃었다. 돌려 말했지만, 개발을 못 한다는 얘기는 처음이었다.
잘하던 승무원을 그만두고 생뚱맞게 개발자로 전향한 게 고작 3년 전이었다. 늦은 나이에 신입으로 시작한 나는 3년 동안 나름 잘 해내왔다고 생각했다. 늦게 시작했어도 연차 대비 이해력도 습득력도 빠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곳의 개발자들과 실력 차이가 나더라도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다른 일을 해보다 보면 더 재능 있는 분야가 있지 않겠냐는 말이, 다른 직무를 제안하는 그 말이, 내 어깨를 꾹 짓누르는 것 같았다.
뭘 보고, 뭘 안다고…?
아무리 예쁘게 포장해도, 칼은 여전히 날카롭다. 개발 못 한다는 말에, 이거라도 할 거 아니면 나가라는 뉘앙스에, 살점이 낱낱이 썰려 나가는 기분이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무릎을 굽히고 싶진 않았다.
지고 싶지 않았다. 상대도 없는 게임이었지만.
하고 싶었던 개발을 하지 못하는 속상함과, 그동안 받아온 멸시를 보란 듯이 아니라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개발자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그 회사의 타이틀. 그 속에서 흔들리고 또 흔들렸다.
그렇게 계열사의 명판을 내건 다섯 번째 사무실에서, 운영 담당으로 6개월을 더 일했다.
아니, 버텼다.
IT 운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지만, 사실상 잡부였다. 그중 내가 가장 크게 해낸 일이자 가장 의미 있었던 일은, 직원들이 서비스를 관리하는 내부용 화면인 어드민 페이지를 본사 방식으로 개편한 것이었다. 기존 어드민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새로 기획하고, 디자인까지 직접 짰다.
나는 당신의 생각만큼 무능력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렇게 무시당할 사람이 아니라고, 뭐라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운영에서라도 대체할 수 없는 인력이 되고 싶은 마음과, 열정도 동기부여도 다 사라진 쭉정이 같은 마음이 공존했다.
매일이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였다. 그렇게 버틴 끝에, 개편한 어드민을 두고 결국 이 말을 들었다.
"이건 지혜 님밖에 못 하겠네요."
생각보다 크게 기쁘진 않았다. 내가 원하는 업무도 아니었고, 결과물도 내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동안 들인 노력과 정신적 고통에 비해, 그 인정은 큰 위로나 보상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본사 디자인팀은, 디자이너도 아닌 내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점을 높게 사주었다.
지지 않으려 애쓰고 버텼지만, 그건 이미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다.
지하철이 끊긴 뒤에야 퇴근하는 날이 이어졌다. 그날도 늦게까지 일하다 택시를 탔다. 올림픽대로는 뻥 뚫려 있었고, 택시는 기분 좋은 속도를 냈다. 차창 밖으로는 늦게까지 불 켜진 한강 건너편 건물들이 보였다. 택시 안에서 보는 한강 야경이 너무 예뻐서 한참을 멍때렸다.
곧이어 울리는 메신저 알림에 정신을 차리고, 턱 끝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을 부여잡으며 택시 안에서도 노트북을 켰다.
그런 나를 보며 기사님이 물었다.
"일이 그렇게 재밌어요?"
갑자기 숨이 막혔다.
재미?
분명 전 회사까지는 아무리 힘들어도 재미있었다. 연봉이 높지 않아도 내가 만들어 내는 화면을 보는 것이 즐거웠고, 대표에게 욕을 먹어도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는 스스로가 뿌듯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 회사에서 재밌다고 느꼈던 적이 있었나? 이게 그렇게 하고 싶었던 일이었나? 일하면서 뿌듯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
이곳에서 보낸 지난날을 돌아볼수록 생각은 한곳으로 흘렀다.
나는 뭘 위해 이렇게 버티고 있지?
내가 그렇게까지 붙잡고 내려놓지 못한 건 그 회사의 타이틀이었다. 그리고 내 자존심이었다. 그걸 지키기 위해 버텼다.
애니 듀크의 『큇』에는 이런 두 가지 질문이 나온다.
"지금부터 1년 후에도 현재 하는 일을 계속한다면, 행복하지 않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지금부터 1년 후에 새로운 온라인 게임에서 일하고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내 대답은 100%, 그리고 50 대 50이었다.
'전긍정'은 내 별명 중 하나였다. '오늘 행복하면 그만이지'라는 말도 자주 했었다. 이곳에서의 1년 동안, 나는 그것들을 잃어버렸다.
어차피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면,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그래서 사직서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