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에겐 '굳이', 나에게는 '낭만'
불룩 튀어나온 배를 아무 거리낌 없이 꺼내고, 총천연색의 컬러를 아무렇게나 배합하는 패션 센스. 좋게 말하면, 누가 뭘 입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나라.
나는 20대의 반을 중국에서 보냈다. 거기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화장하고, 입고 싶은 대로 입고 다녔다.
1년에 한 번 방학 때마다 한 달씩 한국에 왔는데, 난 여전히 중국에서의 그 모습이었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탔는데 모두가 회색, 검은색의 옷을 입고 있었고, 나 혼자 눈에 튀는 빨간색 옷을 입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다 한 번씩 나를 쳐다보고 지나갔다.
지하철 안이 미술 팔레트처럼 느껴졌다.
모두가 회색 물감이고, 나만 빨간 물감이었다.
왜? 내가 빨간색인 게 뭐 어때서?
친구들에게 당당하게 얘기했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물감을 섞기엔 충분히.
개강으로 다시 중국에 돌아온 첫날, 좋아하던 화려한 색의 옷이 아닌 무채색의 코트를 집어 드는 순간, 스스로에게 놀랐다.
어? 나 왜 회색이 되어버렸지?
너무 익숙한 나의 손이 다른 사람 손처럼 느껴졌다. 회색 코트를 다시 옷걸이에 걸고, 바로 옆의 빨간 코트를 꺼냈다.
사람들은 내게 자주 묻는다. 왜 '굳이' 그런 선택을 하냐고.
중국으로 대학을 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한국도 중국도 아닌 중동에서 승무원이 되겠다고 했을 때,
대뜸 개발자를 하겠다고 했을 때,
다들 부러워하던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운동은 일절 안 하던 사람이 풀코스를 뛰겠다고 했을 때에도,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었다.
처음엔 나도 열심히 설명했다. 어쩌다 내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됐는지, 나에겐 왜 '굳이'가 아닌지.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그래도…'였다.
누군가의 눈엔 '굳이'일지 몰라도, 내게는 '낭만'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계산하지 않았다. 이 선택이 커리어에 도움이 될지, 5년 후의 내 모습이 어떨지를 그리는 것보다 오늘 하루가 더 소중했다.
'오늘 행복하면 그만이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내 '굳이'의 순간들에 답하는 걸 멈추고, 그냥 보여주기로 했다.
곧 마흔, 먹은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