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같은 주말이 지나고 수영을 하고 돌아왔다. 서울무용창작센터에서 진행한 ‘수어 단어의 질감을 찾아가는 과정’ 워크숍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성공적이었다는 말을 붙이는 데에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는지, 얼마나 근사하게 진행됐는지보다 워크숍이 끝난 뒤 참여자들이 “수어를 배워보고 싶어 졌다”라고 말해주었다는 것이 가장 컸다. 수어를 가르치는 자리는 아니었다. 하나의 수어 단어가 가진 움직임과 모양, 질감을 들여다보고 몸으로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언어를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내가 만든 작업이 사람을 움직여 그다음의 호기심까지 데려갔다는 사실이 기뻤다.
뜻밖의 손님도 있었다. 지후트리를 직접 보고 인사하고 싶어 일부러 워크숍을 찾아온 분이었다. 장애예술을 연구하는 단체의 대표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내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며 언젠가 함께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건넸다. 조만간 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눠볼 것 같다. 이럴 때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공연을 하는 동안, 어디선가 그것을 보고 기억해 두는 사람들이 있다. 평소에는 존재를 알 수 없다가 어느 날 불쑥 현실에 나타나 말을 걸어온다. “계속 보고 있었어요.” 그 한마디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숨은 곳에서 지후트리를 응원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조력자로 나타나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꾸준히 한다는 것의 의미도 조금 달라졌다. 당장 반응이 없다고 해서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은 거창하지 않다. 계속하는 것이다.
수영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초급반에서 함께 수영하던 회원 여러 명이 다음 달 중급반으로 올라간다고 했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올라오면 가르치는 선생님도 편하다는 이야기를 듣자 나도 함께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해서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일단 할 줄 아니까 올라가는 바이브로 가는 거다. 완벽하게 준비된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다고 생각하면 언제까지나 같은 자리에 머물 수도 있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일단 나를 다음 단계에 던져놓고, 그곳에서 굴려지면서 배우는 편이 나에게는 잘 맞는다. 안 되는 것은 자유수영 때 연습하면 된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작업을 해온 방식도 그랬던 것 같다.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세상 밖으로 나간 적은 별로 없다. 일단 해보고, 부족한 것을 발견하고, 다시 돌아와 채웠다. 그렇게 조금씩 다음 칸으로 넘어왔다.
밖으로 나가 워크숍을 하거나 공연을 하고 돌아오면 반드시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숨은 곳에서 지후트리를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반대편에도 사람들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을 아니꼽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고, 굳이 찾아보고 굳이 말을 얹으며 나를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는 그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애썼던 것 같다. 왜 나를 싫어할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왜 굳이 저런 말을 할까. 지금은 모든 마음의 이유를 내가 알아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마음도 그 사람의 것이고, 미워하는 마음도 그 사람의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와 이타심을 생각하다 보면 타인의 마음을 내 뜻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마음을 베풀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나를 좋아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세상이 그만큼의 호의를 돌려줘야 하는 것도 아니다. 타인의 마음까지 내 뜻대로 움직이려는 순간 괴로움이 시작된다. 그러니 나를 응원하는 마음은 감사히 받는다. 그 마음 덕분에 한 걸음 더 간다. 반대로 나를 미워하는 마음은 굳이 빼앗아 고쳐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는 나를 좋아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 그것까지 인정하고 나면 오히려 내가 가벼워진다. 나에게 좋은 마음을 보내는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까지 굳이 심판하지 않고 제자리에 놓아두는 것, 그 사람이 던진 감정 때문에 나까지 미움 속에 오래 머물지 않는 것,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일을 계속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이타심은 어쩌면 그런 것에 조금 더 가깝다. 그렇다고 완전히 무관심해지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는 ‘헤이터도 팬이다’라는 말을 참 편애한다. 생각해 보면 꽤 재미있는 말이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찾아본다. 그런데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나를 찾아본다. 때로는 팬보다 더 열심히 본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찾아보고,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고, 지나간 일까지 끄집어내며 나를 연구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들여다보다 보면 어느 순간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지후트리 안티 전문가’가 탄생하기도 한다. 얼마나 성실한 관심인가.
요즘은 호의와 미움을 모두 내 앞에 오래 붙잡아두지 않으려고 한다. 호의는 감사히 받고, 미움도 잠시 바라보고 흘려보낸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공연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결국 남는 것은 내가 무엇을 계속했느냐일 테니까. 숨은 곳에서 나를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내가 계속 걸어갈 이유가 되어주지만, 나를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내가 멈춰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 정도의 그릇을 가지고 오래 작업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니 지후트리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은 계속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다. 혹여 열심히 싫어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까지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무관심 무관용의 원칙을 고수하는 대신, 나를 낱낱이 파헤쳐 지후트리 안티 전문가가 되어주신다는데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다만 너무 오래 나를 들여다보지는 마시길.
그러다 나랑 미운 ‘정’이라도 들어서 헤어 나오지 못할 수 있으니까.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