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수·금 강습반 수영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지각을 했을지언정 결석 없이 개근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건 어렵지 않았으나 제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는 일은 참으로 어려웠다. 준비체조 시간을 훌쩍 넘긴 9시 10분에서 15분 사이에 수영장에 입장하는 날이 많았다. 집에서 수영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이미 준비체조를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인지, 준비체조에 대한 절실함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내게 가장 좋은 타이밍은 준비체조가 끝나고 사람들이 킥판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호흡의 안정성과 발차기를 조절하는 감각을 익힐 수 있으니 킥판 발차기는 놓치고 싶지 않다. 나는 킥판을 잡고 발차기하는 건 제법 잘하는 편이다. 문제는 평영이다. 발차기를 할 때는 앞번호에 있다가 평영만 시작하면 슬금슬금 뒷자리로 밀려난다. 발목의 유연성과 가동성이 좋지 않아 개구리처럼 다리를 접고 물을 밀어내는 동작이 영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방법을 바꾸는 것보다 지금은 내 몸의 가동 범위를 조금씩 넓히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내 몸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연습하고, 그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는 수밖에 없다.
한 달이 지나자 수영장의 사정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월·수·금 10시와 11시 강습이 폐강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초등학교 수영장이다 보니 아이들이 수영장을 이용해야 해서 생긴 변화가 아닐까 짐작했다. 내가 수강 중인 초급반 선생님은 대학에 다니며 강사를 병행하고 있었다. 월·수·금 9시 초급반과 10시 기초반을 담당했는데, 한 타임이 사라지면서 이번 달까지만 수업을 맡게 되었다고 했다. 이번 달에는 월요일마다 나오지 못해 대체 강사도 온다고 한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다음 달 중급반으로 올라갈 생각이었다. 선생님이 교체된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새로 오는 선생님이 어떤 방식으로 가르치는지 살펴본 뒤 중급반으로 바로 넘어갈지, 초급반에서 한 달 더 머물지 결정하려 한다. 수영장의 시간표도, 강습반의 존폐도,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도 내가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환경에서 어느 반을 선택하고 어떻게 배울 것인가 정도다.
주 4회 정도 수영을 하며 한 달을 보내자 몸에도 변화가 생겼다. 가장 먼저 얻은 것은 꾸준함이었다. 체지방은 줄고 골격근량은 늘었다. 등 근육도 전보다 단단해졌다. 숫자보다 반가웠던 건 거울 속 몸의 형태였다. 전체적인 선이 조금씩 정돈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애초에 나는 골격근량이 있는 편이라 깡마른 몸이 되기도 어렵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174cm에 56.8kg이면 충분히 마른 체중이다. 더 가벼워지는 것보다 지금의 몸이 가진 힘을 유지하면서 단단해지는 편이 좋다. 한 달이라는 시간을 생각하면 제법 만족스러운 변화다.
같은 수영장을 다니는 사람들과 수영이 끝난 뒤 커피를 마시면 자연스럽게 수영 이야기만 한참 하게 된다. 주 6일 정도 수영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고 주 5일은 거의 기본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주 3일로는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는 것을 체감하고 곧바로 주 5일을 등록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 역시 어느 순간 이들의 ‘주 5일 수영 가스라이팅’에 넘어가 9월부터 월·수·금 강습, 화·목 자유수영 시스템으로 바꾸었다. 장점은 확실하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게 되고, 다음 날 수영을 위해 저녁이면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몸은 자연스럽게 건강한 생활의 시간표를 따라간다. 단점도 분명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날씨가 좋지 않아도 일단 나가서 발차기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루를 빼먹으면 루틴 전체가 흐트러진 듯한 묘한 스트레스도 생긴다. 그럼에도 수영은 나와 꽤 잘 맞는 운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함께할 사람이 있으면 더 재미있고, 혼자여도 물속에서 생각을 비우며 몸을 돌볼 수 있다.
몇 달쯤 수영을 하다 보면 이른바 ‘수태기’가 찾아온다고 한다. 자세가 마음대로 되지 않고 실력이 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온다는 것이다. 그럴 때 사용하는 방법이 재미있다. 새로운 수영 아이템을 하나 사는 것이다. 새로 산 물건을 써보고 싶은 마음에 일단 수영장에 나가게 된다고 했다. 꽤 훌륭한 꿀팁이다. 남대문시장에는 ‘남도사’라는 수영용품 천국도 있다고 한다. 집에서도 가까우니 중급반에 올라가기 전 아이템 하나쯤 사러 가볼 생각이다. 사람은 때때로 거창한 의지보다 작은 재미 하나로 더 멀리 가기도 한다.
수영을 하면서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다.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일이다.
물에 들어가면 이 구분은 꽤 명확해진다. 물의 성질을 바꿀 수는 없다. 내 몸이 가진 골격과 관절의 가동 범위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도 없다. 옆 레인의 사람이 얼마나 빠르게 가는지, 오늘 선생님이 어떤 수업을 준비했는지, 수영장의 시간표가 어떻게 바뀌는지도 내 영역 밖의 일이다. 물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물 안에서 호흡을 고르고, 팔을 뻗고, 발을 차고, 내 몸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익히는 일뿐이다.
생각해 보면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변하는 환경과 타인의 마음, 관계의 방향을 내가 결정할 수는 없다. 누군가의 선택을 붙잡고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바꿀 수도 없다. 그럼에도 사람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꽤 많은 에너지를 쓴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했는지, 왜 상황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지, 왜 세상은 내가 예상한 방향에서 자꾸 벗어나는지를 생각한다. 답을 얻지 못하면서도 오래 붙잡는다.
정작 내가 온전히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오늘 수영장에 갈 것인지 말 것인지, 물속에서 한 번 더 팔을 뻗을 것인지, 잘되지 않는 평영을 포기할 것인지 조금 더 연습할 것인지. 타인의 마음은 움직일 수 없어도 내 마음을 어디에 둘진 선택할 수 있다. 환경을 멈출 수 없어도 변화한 환경 속에서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는 정할 수 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내려놓는다는 건 체념과는 조금 다르다. 오히려 내게 주어진 힘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일에 가깝다.
수영은 그 사실을 몸으로 반복해서 가르쳐준다. 물을 이기려고 힘을 주면 몸은 더 가라앉는다. 물의 성질을 받아들이고 내 호흡과 자세를 조절해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간다. 인생도 어쩌면 비슷하지 않을까. 바꿀 수 없는 것을 붙잡고 힘을 소진하기보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작은 범위에 집중하는 것. 그렇게 하루의 호흡을 고르고, 한 번씩 팔을 뻗다 보면 어느 순간 처음보다 꽤 멀리 와 있는 것.
내가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그 단순한 사실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몸으로 깨닫는 것은 꽤 다른 일이었다. 내게 수영은 그 차이를 알아차리게 하는 운동인 듯하다.
오늘도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은 그대로 두고,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몸 하나를 데리고 아침 수영을 다녀왔다.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갔다.
오늘도 행수, 행복한 수영을 했다.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